완연한 가을이다. 아빠와 엄마는 알밤 줍는 재미에 푹 빠졌는지 등에 배낭을 메고 산으로 향한다.
발길이 드문 곳을 발견한 것인지 그 어느 때보다 크고 통통한 알밤들을 건넨다.
아빠는 손녀가 날밤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는 우리가 가기 전날부터 밤의 껍질을 까서 준비해두신다. 그리고는 활짝 웃는 얼굴로 손녀의 손에 날밤을 건네며 "이거 할아버지가 우리 다민이 줄려고 깐 거야~"로 애정을 전한다. 옆에 있던 엄마는 "다민아~ 할머니가 하나 먹으려고 해도 할아버지가 못 먹게 했다니까~"라며 할아버지의 사랑을 한 번 더 알려준다.
다음날 딸아이가 먹고 남겨둔 알밤들을 나도 입에 넣어본다.
단단한 알밤을 가장 넓적한 어금니로 쾅! 찍어 두동강이를 내고, 반복되는 턱운동으로 잘게 부수며 달콤한 날밤을 즐겨본다. 몇 개나 먹었을까... 저녁 시간을 앞두고 배가 불러오기까지 했다. 노르스름한 알밤을 집어 들고는 가만히 바라보니... 구부정하게 앉아 밤을 깠을 아빠의 모습이 그려지고 "우리 아빠 힘들었겠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손에 잡힌 알밤을 입에 넣고 우걱우걱 씹기엔 아까운 마음이 들었던 나는 한참을 손에 알밤을 쥐고 있다 송곳니로 조금씩 조금씩 잘라먹었다.
감동이 내 마음을 서서히 장악하는 순간...
"아악~~~~~~~~~~~"
'이게 무엇인고??? 애벌레???'
'움직이네... 살아있다고????'
아까 먹은 밤에도 애벌레가 있었겠지?
살아있는 애벌레를 내가 씹어 먹었다고?
육회도, 회도... 날 거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내가 애벌레까지 맛있게 씹어 먹었을 생각을 하니... 그때부터 속이 미식거리기 시작했다.
"안 봤어야 돼... 괜히 본 거야..."
멍한 표정으로 한참을 꿈틀거리는 애벌레를 바라보던 중에 얼마 전 시간이 떠올랐다.
누군가는 내가 하지 않은 말들로 나를 모함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나를 위해 그 음성을 녹취했고, 내게 전해주었다. '들을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모든 정보를 취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알고 싶었다. 하나도 놓치지 않고 알고 싶었던 마음이 분명했다. 내게 음성파일을 건네는 사람은 힘들 거 같으면 듣지 말라고 했으나 스스로를 꽤나 단단한 인간으로 착각한 것인지 괜찮다고 호언장담하며 파일을 다운로드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냥 듣지 말걸 그랬어. 내 귀에 안 들린 소리는 가져오지 말걸 그랬어... 어차피 듣고 아는 척을 할 것도 아닌데... 모르고 살걸 그랬어.'라는 마음뿐이다.
알밤의 애벌레도 안 봤더라면...
누군가의 이야기도 듣지 않았더라면...
무엇이 옳은 것인지 때와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알밤 속에 자리 잡은 애벌레를 보며 모든 것을 다 알려고 했던 내 마음이 참 어리석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남편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여보... 딸내미 핸드폰 얼마나 쓰는지 알려고 하지 마. 공부 안 하고 웹툰 4시간 넘게 본 거 알면 속만 쓰리지... 그냥 그 어플 지워... 우리끼리 행복하게 살자! 인스타 1시간, 웹툰 4시간 42분 보면 혈압 상승, 분노 상승 결국 목소리 커지고, 싸움 나고... 근데 다음 날이면 또 웹툰 보잖아~~~ 우리만 늙어~~~~ 우리가 볼 수 있는 것까지만 도와주고... 더는 알려고 하지 말자... 그러니까 이제 그 어플 지워... "
웹툰만 4시간 42분...
일찍이 어플을 지웠던 나는 남편보다 더 행복한 거 같다. 다 알려고 하지 말자!! 내 마음에 더 많은 쉼과 여유를 주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