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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Oct 13. 2022

주름까지 사랑하겠어!

나는 도를 닦고 있는 고 3 엄마다.

고3 이는 며칠 전부터 "에버랜드~ 에버랜드~" 노래를 부른다.

세상 쿨한 남편은 "가자. 지금 3시니까 아빠 딱 10분만 안마받고 출발하자"며 안마의자에 앉았고, "아빠~ 추우니까 이불 덮어줄게. 푹 자고 재밌게 놀자"며 딸아이는 아빠 곁을 맴돈다.

딸아이의 초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딸은 시계를 보며 아빠의 일어날 시간을 확인하면서 그림을 그린다.

그런데!!! 이 남자 딥슬립이 시작되었다. 코를 곤다...

측은함을 느낀 나는 조금이라도 더 재우자고 딸을 설득하고는 창밖으로 날씨를 체크한다.

"비가 계속 오는데... 갈 수 있을까? 이 상태로 비가 온다면 가기는 힘들 거 같지 않니? 아빠 잠깐 잘 동안 우리도 좀만 자는 거 어때?"

그렇게 딸아이를 침대에 눕히고, 나도 아이 옆에 누워서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비야~ 멈추지 마... 계속 내려줘. 춥고 비도 오는데 에버랜드가 웬 말이니...'

기도는 통하지 않았지만 감사한 것은 나도, 딸도, 남편도 5시까지 깨지 않고 잠들었다는 것. 이미 일어난 들 에버랜드에 가는 것은 무리!!! 

그러나 기쁨도 잠시...

"왜 안 깨웠어"를 연발하며 속상해하는 딸을 진정시키는커녕 "옷 입어! 지금 가자! 간식 챙기자!"라며 서두르는 남편이 아닌가.


6시 넘어 도착한 에버랜드. 

나오는 사람은 있어도 들어가는 사람은 우리 밖에 없었던 어두컴컴하고, 주룩주룩 비가 내리던 그곳 에버랜드... 불꽃놀이, 퍼레이드는 취소되었고 웬만한 놀이기구도 운영이 종료된 상태였다.(다행히 야행성 호랑이는 만났음)

그저 할로윈 분장한 사람들을 구경하며 걷고, 걷고, 또 걸으니 결국 배만 고파졌다.

놀이동산에서는 많이 먹어도 살 안 찐다는 나의 뇌피셜에 의거해 실컷 먹은 우리는 운동이라도 하자며 열심히 걷는데~~ 어디선가 쿵쿵쿵쿵 리듬미컬한 소리가 들린다.

"저기 뭐 하나 봐. 공연하는 거 같은데 가보자!"

우산 쓴 사람들을 뚫고 앞으로 전진할수록 리듬의 진동이 내 가슴 안까지 치고 들어온다. 젊은 남성들의 댄스 무대가 끝나고, 딸내미 시대의 핫한 가수 '비비'가 나왔다. 몽환적인 목소리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쯤 사회자가 다음 가수를 말하는데...

"대박!!! 들었어? 타이거JK랑 윤미래가 나온대. 무조건 기다리자! 보고 가야지!"라며 실컷 들뜬 남편과 나였다. 고등학교 시절 얼마나 그들의 노래를 따라 불렀을까. 이렇게 세월이 흐르다니... 지금은 내가 18살이나 된 딸아이와 함께 그들을 보고 있었다.

가만 보니... 나만 늙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도 나와 같이 세월의 흔적들이 얼굴에 보였다.

노래에 집중하면 만들어지는 이마주름과 미간 주름, 20대와는 다른 팔자 주름...

주름이라면 고개를 빠르게 절레절레하는 나인데 웬일인지 그들의 주름이 그렇게 멋질 수가 없었다. 노래 한 소절 한 소절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고, 소리에 모든 것을 담아내려 하는 그들의 표정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오래전 맨발로 노래하던 가수 이은미의 콘서트장을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모든 얼굴 근육을 사용하며 노래를 부르던 그녀는 처음 무대에서 인사할 때와는 완전 다른 모습이 되어 버렸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상태로 그녀의 모습을 본다면 아마도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음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 앞에 있는 관객에게 최고의 것을 선사하겠다는 그녀의 의지를...

우리 부부는 그녀의 무대에 열광했고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사실 나는 요즘 늙어가는 내 모습이 보기가 싫었다. 밑으로 꺼져가는 다크서클, 무언가 집중하면 만들어지는 미간주름, 메기수염처럼 자리 잡은 팔자주름, 점차 처지는 얼굴선까지... 직업 특성상 무대에 서는 사람인데 스트레스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스크를 쓸 수 있다는 것!). 특히 입 다물고 있으면 그나마 무난한 얼굴이 강의만 했다 하면 얼굴로 강의를 하는 것인지 오만 인상을 다 쓴다.

강의 도중에 내 모습이 찍힌 사진은 단 한 컷도 멀쩡한 사진을 구할 수 없을 정도로 안습이다.

그나마 조명발로 상태 좋은거임...

나도 예뻐 보이고 싶고, 젊어 보이고 싶고, 심지어 말할 때도 우아한 얼굴로 남고 싶었지만 불가능이었다.

맘먹고 수술을 계획한  적이 있었으나 용기 미달로 다시 제자리이다.


하지만... 무대 위 가수들을 보며 문득 생각해본다.

-나도 온 힘을 다해 강의할 때 어쩌면 내 모습도 아름다워 보이지 않을까?

-내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는 열정을 학습자도 느끼게 되지 않을까?

'저 강사 진심이구나...'를 알게 되지 않을까?

이제 강의를 마치고 거울을 보며 "아주아주 강의만 하면 얼굴이 폭삭 늙겠네"라고 투덜거리는 나를 떠나보내려 한다. 이제는 강의를 마치고 거울을 보며 주름져 있는 내 얼굴에게  "최선을 다했구나"라고 말해주는 내가 되고 싶다.


그래도 내 얼굴 또한 소중하기에~~~ 집에 돌아와서는 팩이라도 붙이며 고생한 나를 도닥인다.

관리의 신, 나의 동료 강사가 알려준 대로 '일단 1일 1팩!!! 콜라겐 꾸준히 먹고!!!'를 실천해보며 다양한 상황에서 여러 모습으로 나를 사랑하고자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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