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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Oct 09. 2022

한 판 뜰래?


"오늘 택배 왔으니까 한 판 뜨는 거야!!!"

그렇게 늦은 밤 시작한 보드게임 '루미 큐브'

휴가지에서 5천 원을 주고 빌려 온 보드게임이 너무 재밌어 집에 돌아오자마자 주문을 하고 물건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8월 16일부터 대략 3주 가까이 집에서 게임판을 벌여댔다. 보통 시작하면 1시간 30분은 기본. 회사에 가야 하는 남편, 강의하러 지방에 가야 하는 나, 고3 입시생 이렇게 셋은 자신의 본분을 잊은 채 "깔끔하게 한 판 더? 진짜 막판이다!"라는 말을 하며 밤 12시를 넘기고 있다.

그래도 고3이라고 딸은 2판의 게임 뒤 깔끔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그리고는 말한다. "아휴... 게임중독자들... 내가 괜히 가르쳐줬다니까"


우리 가족은 명절을 쇠기 위해 짐을 챙길 때도 가방 속에 루미큐브를 챙겨 시골을 향했다.

그렇게 명절날 조카들과 시작된 루미큐브.

저 멀리서 핸드폰으로 고스톱을 치는 시어머니가 한 마디씩 툭툭 뱉는다.

"그게 뭐 하는 거니?"

"아이고 머리 아파 보인다. 나는 안 하련다."

"재밌니?"

"어떻게 하는 거라니? 에이~ 나는 안 하련다."

"그렇게 재밌니?"

"에이~ 고스톱만 쳐도 되지"

힐끔힐끔 우리는 쳐다보는 시어머니... 분명하고 싶은 게 확실했다.

"어머니 오셔~ 금방 배워~ 우리가 알려드릴게~ 여기 앉으셔~"

그렇게 시작된 어머니와의 루미큐브.

보통 두 판(한판에 30분)하면 '재밌네~ 다음에 또 하자!'하고 끝날 판인데 우리 어머니... 남달랐다.

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얘들아!!! 섞어!!"라는 말로 다음 판을 이어갔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손자 손녀들은 지쳐서 어깨가 축 늘어져 있고... "이제 그만해요"라는 말을 쏟아냈으나 "그런 게 어딨니? 힘들면 잠깐 쉬고~ 누구 할래?"라는 말로 사람들을 바꿔가며 잠들기 전까지 게임을 이어가던 시어머니였다. 남편의 누나 말에 의하면 다음날에도 눈을 뜨자마자 게임을 했다고 한다.


다행히... 명절날 하루 내내 게임을 한 덕분일까. 아니면 이제 할 만큼 해서일까?

나는 이제 게임이 많이 하고 싶지 않다.

그저 저녁 먹고 가볍게 한 판 정도?

큐브 왕이 되겠다며 퇴근만 하면 태블릿으로 몇 시간씩 게임만 해대던 남편도 언제 그랬냐는 듯 서서히 멀어져 갔다.

세계 챔피온이 되겠다던 남편

"요즘 게임 안 해?"라는 내 질문 앞에서는 "공부해야지. 할 만큼 했어. 시간 아깝고..."라는 말을 하며 갑자기 책을 꺼내 든다.

어머!!! 그렇게 눈만 마주치면 "한판 뜨자"던 우리는 각자 자신의 자리로 찾아가고 있었다.


'그래... 누가 하라고, 하지 말라고 하는 말이 뭐가 의미 있는가... 그저 내가 필요로 느끼고, 해야 된다는 것을 알 때 움직일 수 있는 것이지...'

지금까지 그래 왔다.

공부하라고 할 때 한 번도 공부한 적 없었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할 때 움직이지 않았다.

특히 반항적 기질이 넘치는 나는 누가 뭐라고 하면 눈부터 부릅뜨고 "왜? 네가 뭔데?"를 (속으로 가끔 밖으로) 외치는 사람이었으니 더욱 그랬을 것이라...

나의 삶 속에서 뼛속까지 경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고 3 엄마인 나는 지금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때때로 힘이 든다. 

뒤늦게 미술을 하기로 결정한 딸은 12월 중순까지 18개의 작품을 완성해야 한다.

그러나 두 달 남짓 남은 상황에서 완성된 작품은 하나... 고작 하나...

눈을 비벼가며 속도를 내도 시원찮을 판국에 뭐가 그리 편안한 건지 밤마다 줄넘기를 하러 나가고, 소파에 누워 웹툰을 본다.

"너 12월 중순까지 포트폴리오 끝낼 수 있겠니?"라는 나의 질문에 한결같은 답변 "아마도??"

어느 날은 너무 화가 나서 "너 나중에 작품 수 모자라서 대학 못 쓴다고 울지 마라... 엄마는 다 해줬다."라는 진정성 100%의 협박을 해보지만... 태생이 베짱이인지 또 노래를 부르고 있다. 가끔 남편도 화가 나는지 종종 큰소리로 이야기라도 하면 딸아이는 잠시 고개를 숙이며 걱정하는 듯해 보이지만... 이내 3분도 안돼서 노래를 부른다.

대체 왜 이렇게 밝은 것인가?!!! 혼나도 3분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엄마~내일 뭐 먹을 거야?"라며 메뉴를 묻기까지 하는 너는!!!! 도대체 어느 별에서 왔니? 요즘 나는 친구들에게 "너무 밝아도 꼴 보기 싫다..."라는 말을 자주 하고 있다.


그러나... 루미큐브를 보며 딸아이를 생각한다.

"엄마 발등에만 불이 떨어졌나 보다. 너는 아직인데... 누가 너를 끌어당길 수 있겠니? 일어나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모두 너의 몫인데... 그저 남들 공부할 때 안 했던 엄마는 뒤늦게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어서 너는 그러지 말라고, 너는 나보다 좀 더 편하라고 엄마 생각을 많이 강요했나 보다. 엄마가 생각하는 '열심의 정도', 엄마가 생각하는 '간절함의 기준', 엄마가 생각하는 '수험생의 자세'는 너와 다른 것을 알기에 매번 강요하지 말자 하면서도 참 어렵다. 그래도 너의 인생을 대신 살 수 없다는 것을 매일 기억하려 노력하고 있단다. 혹여 원하는 대로 되지 못하고 이번 계획이 실패한다 해도 그것을 통해 너도 분명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믿기에 모든 힘을 다해 참고 있다. 스스로 선택한 것에 대한 결과도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그저 엄마가 할 일은

1. 너에게 맛있는 밥을 (사)주며 응원하는 것.

2. 지하철 역까지 너를 태워주는 것.

3. 너의 재잘재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것.

4. 엄마의 잣대로 평가하지 않고, 너를 믿어주는 것.

5. 언제든지 엄마 품은 따뜻한 곳이라고 알려주는 것  그리고 너를 위해 기도하는 것.


온 우주의 기운이 내게 쏟아져 2달만 침묵할 수 있는 힘이 생기길 간절히 소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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