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한나 Oct 02. 2022

1955년생, 22학번 신입생이 되다


"너희 집 오는 지하철에서 글을 하나 썼어. 엄마는 컴퓨터 타자가 느려서 그런지 손으로 쓰는 게 좋더라. 글을 쓰면서 얼마나 너한테 미안하던지..."

또 뭐가 미안하다는 걸까. 물론 우리 엄마가 TV에 나오는 고두심, 김혜숙 님이 연기하는 전형적인 엄마와는 많이 다르긴 하지만 그건 드라마려니 생각하며 받아들였는데... 엄마가 요즘 이상하다. 본래 캐릭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들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며칠 전 캐나다에 있는 언니는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야!~ 엄마 요즘 왜 그러냐? 나한테 전화해서 울먹이면서 미안하다고 그러더라. 너무 엄마로서 부족했다면서... 갑자기 그러니까 당황스럽더라고~"

나는 알고 있었다. 엄마의 말이 무엇을 말하는지...

엄마는 유난히 둘째 언니에게 날이 설 때가 많았다. "쟤는 왜 이렇게 나를 닮았나 몰라. 보고 있으면 화가 난다니까!"라는 말을 하며 자신을 가장 많이 닮은 둘째 언니를 향해 화를 내기도 했었다. 이따금 마음이 평온해질 때면 "아휴... 날 닮아서 마음이 더 약한 우리 딸인데... 내가 더 잘해줘야 되는데... 난 왜 이러나..."라는 말로 자신의 모습에 물음표를 던졌던 엄마...


올해 68세로 국어국문학과 신입생이 된 우리 엄마는 물음표를 던졌던 자신의 삶의 순간순간을 다시 꺼내어 살펴보고 있다. 특히나 교양과목으로 '심리학' 수업을 들으며 과거 자신의 모습을 다양한 이론과 관점으로 재정의하며 자신을 분석한다. 그러던 중 심리학 수업의 과제로 Bowen의 가족 이론을 요약하고, 자신의 생각을 적어와서는 내게 타자로 쳐줄 것을 부탁했는데 그 일부를 이곳에 공개하려 한다.


(전략) 지금까지 Bowen의 가족치료 이론의 핵심 개념을 살펴보았다.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 여러 번 강의를 듣고, 교재의 내용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나의 어린 시절부터 결혼을 하고 세 아이를 키우기까지 살아온 삶을 돌아볼 수 있었다. 지금껏 나는 삶에 대한 성찰을 가져보지 못하고, 먹고사는 문제로 내 삶에 처해있는 많은 문제를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가족 이론을 공부하며 ‘투사’에 대한 내용이 내 마음에 머물렀다. 나에게 있어 투사 대상은 둘째 아이였다. 둘째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용기 내 내게 말했지만, 나는 아이의 말에 귀 기울여 주지 못했다. 특히 둘째는 나와 같은 성정을 가진 아이였기에 더 잘 챙겨줬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모습 속에서 나를 발견할 때마다 오히려 아이에게 화를 내며 따뜻하게 다가서지 못했던 엄마였다. (중략) 둘째는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세우지 못하는 모습에 가슴이 저려왔다. 하지만 그런 둘째의 모습에 더 잘해줘야지라는 다짐을 했지만 나는 마음처럼 행동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둘째는 ‘섭섭하다.’ ‘상처가 되었다.’라는 말을 내게 전하며 엄마인 나에게 다가왔지만, 상처 투성이가 된 둘째를 보는 것이 마치 나를 들여다보는 거 같아 둘째를 안아주지 못했다.

  공부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70이 다 되어 나는 참으로 감사하다. 나는 이 과제를 하며 먼 곳에 있는 딸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용기를 내 아이에게 말했다.

“미안하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너에게 미안한 것뿐이다. 나를 닮은 너를 보며 더 안아줬어야 하는데... 엄마가 미안하다.”

  딸아이가 수강신청을 도와준 덕분에 나는 너무나 소중한 수업을 듣고 있다. 그저 나를 닮은 아이라 내 감정을 쏟아내고, 함부로 대했던 나의 지난날을 회개할 수 있었고, 용서를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투사’라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는 나의 행동에 신중을 기할 수 있을 거라 예상된다. 나에게 시간이 얼마나 주어진 지는 알 수 없지만, 남아있는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공부하며 나를 돌아보고,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성숙한 모습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렇게 엄마는 달라지고 있었나 보다. 근데 오늘은 왜 나한테 미안하다는 건가?

또 무슨 공부를 했길래...??

엄마는 내 마음을 알았는지 떨리는 그리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낸다.

"너 어릴 때 엄마가 새 바지 사줬는데 다음 날 롤러 타다 옷 찢어서 들어왔잖아. 그때 너무 화가 나서 너를 때린 게 엄마 평생에 마음에 걸려... 왜 고개 숙인 너의 얼굴은 보지 못하고 옷만 보았나 몰라. 그게 두고두고 너무 미안하더라. 아무리 먹고사는 게 힘들었다고 하지만...(한참을 머뭇거리다) 미안해 우리 딸!"

코끝이 찡해지고, 눈물이 차올랐지만 나는 씩씩하게 말했다.

"엄마 진짜!!! 무식했어!"

하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말하고 있었다.

"엄마도 어렸지... 근데 엄마는 변하고 있었어. 다음 해 엄마가 나에게 아주 비싼 코트를 사줬던 거 기억나? 카멜색의 떡볶이 코트였어. 그 코트를 내가 다음 날 또 기역자 모양으로 크게 찢어서 왔잖아... 나도 참 사고뭉치였지...  엄마가 많이 화낼 거란 생각에 얼마나 걱정했나 몰라. 근데... 엄마 그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괜찮다고 했어. 그리고 그 옷을 꿰매 줬던 거 생각나?? 엄마... 이제 알겠어... 엄마는 달라져 있던 거야. 엄마가 평생 마음에 담고 있었던 그 마음을 나에게 털어놨을 때... 나는 코트를 떠올리며 달라진 엄마를 기억하고 있었어. 그리고 엄마는 지금도 달라지고 있나 봐. 엄마~ 리포트 도와주느라 솔직히 어떤 날은 너무 힘들지만 공부하며 달라지는 엄마가 너무 아름다워. 엄마를 응원해..."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 새로운 렌즈를 가지고 똑같은 하루를 다시 바라본다는 것은 우리에게 기적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별에서 빛난다>의 저자 이광형은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는 최선의 방법은 공부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부모, 배우자, 졸업한 학교는 이미 결정된 것으로 바꿀 수 없지만 우리의 가치관, 삶의 방식, 직업 등은 공부를 통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일본 메이지대학 사이토 다카시 교수는 <내가 공부하는 이유>에서 무언가를 배우는 것을 '깊은 호흡'에 비유했다. 몸이 신선한 산소를 받아들이며 새로운 활력을 심장에 불어넣듯이 '호흡이 깊은 공부'는 새로운 지식으로 마음의 세포를 재생시켜, 지친 마음을 치유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자신을 불어넣어 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별에서 빛난다, 이광형, 재인용>


그렇게 엄마는 어제와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공부라면 고개를 내젓던 내가 오늘따라 '공부'라는 단어가 새삼 따스하게 다가온다. 물론 공부라는 것이 학문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사람을 통해서, 사건을 바라보며,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서도 배움을 얻을 수 있는 존재이니까. 무언가 얻어 가려는 열린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우리의 삶은 모두 배움의 현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새로운 내가 되기 위해 나는 어떻게, 나는 무엇을 공부하고 있을까?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저는 글을 쓰면서 참 많이 고민합니다. 이렇게 살아도 될까... 이것이 옳은 것일까?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 때때로 힘든 시간이긴 하지만 제게 큰 배움을 주는 순간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당신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을 새롭게 만들어주고, 당신을 변화시키는 당신의 공부는 무엇인가요?'



매거진의 이전글 '저 잘 살고 있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