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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Dec 02. 2022

팔자 좋은 내 소중한 친구


"한나야!!! 배도라지즙 다 먹었어?"


그녀는 여느 날처럼 자신의 엄마가 손수 농사지은 것으로 만든 배도라지즙이 나의 몸을 치료할 것이라며 반드시 먹어야 한다고 일렀다. 나만 보면 "아이고~ 우리 한나~ 힘들어서 어쩌냐??? 또 지방 간다냐?? 언제 수도권 진입하냐?"며 나의 인생을 걱정하는 소중한 친구...


반가운 그녀의 이름과 함께 핸드폰이 울린다.

그녀: 뭐하냐??

나: 이동하고 있지~

그녀: 오늘은 어디로 가냐??

나: 아침에 동탄에서 마치고, 수원에서 한번 더하고, 지금 서울로 이동한다~

그녀: 워매~~~ 이게 뭔 일 이래? 우리 한나 성공했다잉~~ 서울로 가고~~!!!!

나: 크크크크크 서울 가면 성공이야??? 나 끝나고 밤 10시에 속초로 이동해야 돼~~~ 그나저나 여행은 잘 갔다 왔냐?? 아휴~~~ 암튼 팔자 좋은 년~~~


그녀는 한참을 웃었다. 늘 나를 보며 고생한다고, 애쓴다고 나를 도닥이던 그녀. 전화할 때마다 산으로 들로 놀러 다니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것 만으로 나는 그녀의 삶이 부러웠나 보다.

그녀는 내게 할 말이 가득해 보였으나 "아니다~~ 내가 나중에 혼자 있을 때 이야기할게~"라는 말로 가족이 옆에 있음을 알렸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다시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조용한 곳으로 왔어. 나도 할 말이 많다~ 나 말이야... 요즘 괜찮았는데 갑자기 비행기에서 숨 쉬기가 힘들고 식은땀이 나고... 내가 이런 모습 보여주면 남편도 힘들어질 거 아니까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 정말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어. 여행 내내 즐기기는커녕 집에 돌아갈 비행기를 어떻게 타야 되나 싶었다니까!! 나 간신히 돌아왔어..."


늘 밝고, 늘 웃고, 늘 나를 먼저 챙겨주던 그녀는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든 그녀만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녀의 삶에 힘듦은 외면하고, 그녀를 향해 '괜찮은 사람, 잘 견뎌내는 사람'으로 정의해 버렸다. 그렇게 내 머릿속에서 무쇠 같았던 그녀가 수화기 너머로 말을 잇는다.

"한나야! 너 걱정하라고 하는 말 아니고!!! 힘내라고 하는 말이야~! 너만 힘든 거 같으면 우울해지잖아. 나 보면서 우울해하지 말라고. 팔자 좋아 보이는 나도 내 자리에서 많이 힘들다~~~ 그니까 좀만 버티고 만나서 맛있는 거 먹자! 알겠지??"


전화를 끊고 나는 먹먹해진 마음에 소리 내어 말했다.

"미안하다... 미안해. 힘든 것만 알아서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그 와중에 나를 챙겨주는 마음 너무 고맙다..."


문득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당신을 위로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위로하는 좋은 말들처럼 평탄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의 인생 역시 어려움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중략) 그렇지 않다면 그 좋은 말들을 찾아낼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친구야. 맨날 너에게 피곤한 스타일이라며 핀잔주던 나인데~~ 오늘따라 그 피곤함이 참 그립다~~

내 곁에서 나를 감싸주던 너의 마음 항상 기억할게.

그리고 나도 너처럼...  나의 아픔과 괴로움을 잠시 내려두고, 너를 위로하고 안아주는 친구가 될게.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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