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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Nov 04. 2020

나는 발냄새가 있는 여자였다...

난 한 여름에도 맨발로 운동화를 신을 수 있는 발을 갖고 있다.

내 발은 좀처럼 땀이 안 나기에 발 냄새가 난 적이 없다.

내 발에 대해 자부심이 있었던 걸까?


한참 연애하던 풋풋한 시절.

지금의 남편은 나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스킨십을 시도했다.

"손 이리 줘봐."

나는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남편의 손에 내 맨발을 얹어줬다.

남편은 웃으며 "장난치지 말고... 손 줘봐~"라고 속삭여댔고, 나 또한 그의 귀에 "그럼 눈감고 손 내밀어봐."라고 응수했다.

눈을 감은 채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고 내 손을 기다리는 남편의 손.

그 수줍은 손에 나는 또 발을 얹었다.

"아~ 진짜 장난 좀 그만하고~ 또 그래 봐!!!"

남편은 간절하게 손을 달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알았어~ 알았어~ 진짜 손 내밀게."라고 말하던 나는 살포시... 손 모양처럼 발가락을 세워 남편에게 내밀었다. (난 세 번 정도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내 글을 읽던 남편은 다섯 번도 넘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나도 이해가 안 간다. 

'나는 대체 왜 그랬을까?' 예나 지금이나 나는 장난꾸러기다.


마냥 순둥순둥 하기만 했던 20살의 남자 친구는 벌떡 일어났고, 내가 불러도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집에 가버렸다.

"여보... 미안해!!!"


내 발을 미워하며 떠나갔던 남자 친구였지만, 지금의 남편은 소파에 앉아 내 발을 자주 매만진다. 

그 당시 뿌리치고 간 것에 대한 미안함인가? 영화를 볼 때도 내 발을 만지며 보는 남편.

부끄럽기도 하지만 땀이 안나는 발이란 생각에 남편에게 발을 건넨다.

특히나 겨울이 되면 꽁꽁 언 발을 남편의 허벅지 사이에 넣어 온도를 올릴 때면 참 행복하다.


늘 발이 차가워 힘들어하는 나를 생각해 남편은 마트에서 장을 보던 중 털실내화를 샀다.

"여보 이거 봐 봐~~ 엄청 따뜻하게 생겼다. 여보 푸우 좋아하니까 이거 하나 사. 다민이는 돼지니까 피글렛 주고..."


'이토록 귀여운 실내화라니!' 


"오빠 너무 따뜻해~ 발이 진짜 따뜻해. 이렇게 따뜻하게 있다가 침대 가니까 발 시려운 것도 없어. 금방 잠들 거 같아!!!"


발이 따뜻하면서... 아주 오랜만에 이상한 느낌이 왔다.

'발이 덥다.'

'뭔가 촉촉하다.'

내 발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좋았다. 건강해지는 느낌이었다.

문득 땀이 나면 내 발에서도 냄새가 날까 궁금해졌다.

나는 곰돌이 실내화에서 발을 꺼내 코에 대고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뭔가 확 쏘지는 않지만, 시큼하지도 않지만...

강아지 발바닥의 1/6 정도의 콤콤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난 너무 신기해 계속 발바닥을 코에 갖다 대며 킁킁킁킁 거리다가 "여보 대박이야. 나도 발 냄새가 나. 맡아봐."라며 발을 내밀었다.

남편은 내 발을 끌어당겨 자신의 코에서 벌름벌름 대더니 "난다. 야 너도 난다."라며 엄지척을 내밀었다.


뭐 저런 더러운 부부가 있겠냐고 하겠냐마는.... 그저 신기해 둘 다 코를 갖다 대기 바빴다.


나도 발에 땀이 나고, 발 냄새가 있는 사람이었다.

내 발은 특별한 발이 아니었다.

푸우 실내화 때문이라고 궁시렁 거리기도 했지만...  그 순간 지금껏 믿어왔던 발에 대한 서운함이 밀려왔다.


'이런 서운함을 전에도 경험한 적이 있었는데....'

5살에 스스로 글을 읽는 내 아이가 천재인 줄 알았다.

한번 보면 기억하고 입체퍼즐을 그대로 완성해 놓는 아이를 보며 영재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서운했지만... 아니었다.


이 뿐일까? 

나는 딸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내기로 결정하며 '나는 돈을 잘 벌게 틀림없으니 이 정도는 보낼 수 있어.'라고 믿었다. 서운하게도... 아니었다. 등골이 휘고 있다.


다행히 나만 이런 과대망상을 하는 것이 아니었는지 심리학 책에서 '워비곤 호수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이는 자신이 평균보다 낫다고 믿는 믿음이다. 예를 들면 자신의 자녀가 평균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다른 이들보다 돈을 더 많이 벌고, 당뇨병에 걸릴 확률이 더 낮으며, 떨어지는 유성에 맞거나 이혼할 확률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내 입장을 추가한다면 나의 체취는 남들보다 현저히 낮다고 생각하는 것까지 말할 수 있겠다.


푸우 실내화를 신으며 발견한 내 발의 땀과 냄새를 통해 나는 많은 생각을 하였다.

'나는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나는 나를 얼마나 특별한 존재라고 믿고 있었을까?'

나는 남보다 훨씬 좋은 사람이고, 괜찮은 사람이고, 도덕적인 사람이고, 착한 사람이고, 스윗한 사람이라고 믿어왔다... (가끔 자책하는 타임을 제외하고는....)


그러다 보니... 나만큼 특별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타인을 향해 지적을 하고, 비난을 하고, 판단을 하고, 손가락질하기 바빴다.


즉... 뽀송뽀송 특별한 발을 가진 내가 땀을 많이 흘리는 아이를 나무라듯....

"넌 누굴 닮아 그렇게 땀이 많니?? 으~ 땀냄새!!!"


그러나 털실내화 안에서는 너도 나도 똑같이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그저 더위의 임계점이 조금 달랐을 뿐이다.


나는 오늘도 푸우 실내화에 고마워한다.

나 역시 특별한 사람이 아님을...

발 냄새나는 사람임을 알려준 것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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