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한나 Oct 21. 2020

서울 사는 혜란이 남편은 '밤의 황제'

서울 사는 지영이 남편은 연하남

"난 진짜 일을 못하는 거 같아. 진짜 잘하는 게 없어."

남편의 고정 멘트이다.

물론 '나 없으면 회사 마비돼. 내 능력 알잖아.'라고 털어대는 남편보다는 낫겠으려니 하는 마음으로 위안을 삼는다.

그렇게 스스로를 자책하기 바쁜 남편이 어제오늘 자신감이 넘친다.


"오빠는 말이야. 연봉이 oo인 사람이야. 이번에  상위 고과 받아서 연봉 오르는 거 알지?"


이런 멘트는 아주 아주 아주 어쩌다 들을 수 있고, 남편의 자신감 뿜뿜도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오랜만에 볼 수 있기에 이 순간을 놓칠 수 없었다.

나는 남편의 팔짱을 더욱 세게 끼고 남편을 바라보며 말했다.


"와... 나 시집 진짜 잘 갔네~ 이렇게 잘 나가는 남편이랑 살다니... 아마 내가 제일 시집 잘 갔을걸~ 나보다 시집 잘 간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남편의 어깨에 뽕을 잔뜩 넣어주고 싶은 아내의 아리따운 마음을 알기나 할까?

개뿔 알리가 없는 남편은 축 처진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남편: 혜란이는 서울에 좋은 아파트도 있고, 지영이는 시아버지 사업도 물려받고... 그게 더 잘 간 거 아냐???? 딱 봐도 네가 젤 못 간 거 같은데...

나: 그런가? 음.... 그래도 오빠는 착하잖아. 엄청 착하잖아. 암 착하고 말고~ 우리 신랑이 최고지!

남편: 솔직히 착한 건 혜란이 남편이지. 그 형님 화 한 번 안내는 걸로 유명하잖아. 진짜 성격 좋고... 

나: 음.... 그러게~~~ 혜란이 남편 진짜 성품이 좋은 거 같아~  음.... 그래도 여보는 젊잖아. 젊음이 최고지!!!

남편: 야! 지영이는 연하랑 결혼했잖아.

나: 아 그러네.... 음...


나는 반전의 분위기를 만들고 싶은데... 자꾸 남편한테 말려들어가는 거 같았다. 안 되겠다 싶었던 나는 '19금'을 떠올리며 눈을 크게 뜨고 이상야릇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보는 밤의 황제잖아!!!!!!!"


남편은 내가 어깨에 넣어주는 뽕을 죄다 빼버리기로 결심한 것이 확실했다.


남편: 황제는 무슨... 혜란이네는 혜란이가 도망 다닐정도라매... 난 그 형만큼은 아니야...

나: 아.... 그러게...


나는 신기하게 남편 말에 빠르게 설득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고개는 끊임없이 끄덕 끄덕였고 내 입에서는 '그러게'가 연발했다.

나를 설득시킬 때는 언제고 남편은 갑자기 내 목 뒷덜미를 손으로 잡고 알 수 없는 말을 뱉어댔다.

"야~ 반박해야지. 왜 반박이 없어~ 왜 자꾸 그러게 그러게 하는 건데? 빨리 반박해!!!!!~ 반박하라고..."


목이 너무 간지러웠던 나는 빨리 반박할 거리를 생각해봤다.

하지만 도무지 생각이 안 났다. 머리를 쥐어짜도 딱히 도드라지게 우수한 부분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무 말 대잔치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여본 잘생겼어. 잘생겼잖아. 여보가 제일 멋있어. 키도 크고... 여보가 짱이지~"


남편은 허탈한 표정으로 가던 길을 걸어갔다.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남편을 만족시킬 만한 답변은 존재했을까?

내가 무엇을 이야기해도 누군가와 비교해버리는 순간 어떤 것도 그의 마음에 다다를 수 없었다.

매번 행복을 논하는 책에서 '비교하지 말라'라고 하더니...

결국... 좋은 고과를 받고도 행복을 누릴 시간까지 뺏겨버렸다.


나는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다시 속삭여주고 싶었다.

"여보... 내가 여보 사랑하잖아. 가장 사랑하잖아... 그럼 된 거 아냐? 뭐가 더 필요해?"

나의 진심이 통했을까??


역시 통할 리가 없었다.

남편 새끼는 "다른 마누라들도 남편 사랑하지. 너만 남편 사랑하냐??"라는 말로 내 복장을 터지게 했다.


한 번을 안지는 남편 하고는 더 이상 싸울 힘이 없었다.

불행을 찾아먹는 인간 같으니라고!!!!!


"다른 사람이랑 이것저것 비교해보고 너를 사랑한 거 아니잖아~ 그냥 나는 네가 좋다고. 같이 있으면 즐겁고. 네가 웃으면 내가 기분이 좋고. 랑 먹을 때 뭐든 맛있고. 그냥 그렇다고~ "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내가 택한 사람인데... 사랑하지 않으면 너무 괴롭잖아.

그래서 더 많이 아껴주고 싶어... 더 잘해주고 싶어.

그게 다야! 제발 좀 따지지 말고!

넌 나의 왕자님이니까 집에서 만큼이라도 어깨에 뽕 잔뜩 넣고 다녀!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팬클럽이 있는 여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