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한나 Oct 16. 2020

나는 팬클럽이 있는 여자

나는 팬클럽이 있는 여자다.

팬클럽 회장님은 나에 대한 열정으로 2년 전 출간한 나의 망작을 책상에 두고 반복해서 읽는다.

심지어 내 책에 후기를 하나하나 찾아 읽어보다 안 좋은 말이 쓰여있기라도 하면 속상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나의 글을 사랑해주는 팬클럽 회장님은(회장과 회원의 역할을 겸임하고 있음)

다시 태어나면 연애하고 싶을 만큼 귀엽고 유머감각이 있는 남자다.


그 남자는 바로...

형님(남편의 누나)의 아들이다.

중2병은 찾아볼 수 없이 티 없이 맑고 귀여운 아이 '희웅이'


명절날 희웅이는 나에게 말했다.

희웅: 외숙모... 브런치 잘 보고 있어요... 근데 제 이야기도 써주시면 안 돼요?

나: 아.... 그래....


나는 당황스러웠다. 아무리 나의 찐팬이라 할지라도... 내가 이 아이에 대해 뭘 쓴단 말인가??!!!!

사실 나는 2년 전 출간한 책에서 희웅이에 대해 짧게 언급한 내용이 있었다. 가족 식사 모임에서 비싼 장어를 너무 많이 먹는 모습에 아주 얄미웠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너무 미안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나왔다고 좋아하며 그 챕터만 열 번이나 읽었다는 아이의 부탁을 나는 감히 거절할 수 없었다. 나는 무조건 써야 했기에 희웅이를 향해 질문을 쏟아냈다.


"희웅아... 외숙모가 뭐를 쓸까???? 뭐를 써야 되지?? 뭐 특별한 일이 있었던 적 있어?

잊히지 않을 만큼 인상적이었던 경험 말이야... 그런 거 있으면 이야기해 봐~ "


15살 소년 아이가 여태껏 살면서 기억에 남았던 일...

희웅이가 어떤 이야기를 꺼낼까?

희웅이 마음속에 어떤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

한참을 눈을 껌뻑이며 생각에 잠겼던 희웅이는.... 입을 떼기 시작했다.

"외숙모, 억울한 일을 말해도 괜찮은 거예요?"

"그럼 당연하지~ 말해봐!"


내게 여전히 꼬마 같은 희웅이가 꽤 두꺼우면서도 저음의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제가 어릴 때였어요. 몇 살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어렸던 거 같아요.

할아버지가 만원을 주시면서 "누나랑 반씩 나눠 가져"하고 주셨거든요.

근데 제가 그때 누나랑 반씩 나눠가져야 된다는 생각에 만원을 반으로 자른 거예요.

좀 바보 같긴 한데 너무 어렸으니까... 근데 그때 할아버지한테 엄청 혼났어요.

진짜 어려서 몰랐던 건데... 누나랑 나눠 가지려고 잘랐던 건데...

너무 억울했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나요.

결국 할아버지가 돈을 테이프로 붙이긴 했는데...

이런 이야기도 되는 거예요??"


키득키득 웃다가도 슬금슬금 할아버지를 쳐다보던 희웅이가 귀여웠다.


나 역시 어린 시절 도대체 내가 왜 혼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일이 있었다.


날이 화창했던 어느 날 엄마, 아빠는 마당에 장판을 깔아주셨다.

나무 그늘이 있는 마당에서 함께 과일도 먹고 피크닉 타임을 보내고 싶었던 마음이었을까?

평소처럼 포도나무 아래서 강아지 방글이, 방실이, 방돌이와 놀았으면 되었을 텐데... 그 날은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아빠의 관심을 받고 싶었다.

나는 아빠 옆에 앉아서 종일 말을 걸어댔다.

그러나 32년 전 아빠는 시원한 마당 장판에 앉아 열심히 신문을 읽으며 나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일곱 살의 개구쟁이였던 나는 아빠에게 관심을 끌 요량으로 이상한 행동을 계획했다.

그 행동은...... 아빠가 보는 신문에 침을 뱉는 것이었다.(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아이고~우리 공주~~ 아빠랑 그렇게 놀고 싶었어?"라는 말을 하며 신문을 덮어버릴 아빠를 상상했던 것일까?

달콤한 상상과는 다른 아빠의 분노를 맞이했던 나는 그 당시 서러움을 견뎌내기 많이 힘들어했다.

그렇게 일곱 살의 나는 한동안 아빠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더 웃긴 것은 침을 뱉는 것이 상대에게 어떠한 모욕인지를 알 수 있을 법한 나이가 되었을 때에도 나는 7살 당시의 내가 왜 혼이 나야 하는지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내 자식이 그런 행동을 하면 나는 많이 혼내지는 않을 거야! 아이가 나와 함께 하고 싶었다는 걸 알아주고...  그리고 아이와 함께 놀아주면서 침을 뱉는 것이 잘못된 행동이었다는 걸 친절하게 알려줄 거야!'라는 굳은 결의를 품고 있었다.


이렇게 글을 쓰니 희웅이와 나의 공통점이 생겼다.

시간이 지나 만원의 가치를 알았음에도...

침 뱉는 것이 얼마나 불쾌한 일인지 알았음에도...

마음속에 보일 듯 말 듯 조용히 자리 잡고 있는 '억울함'이 있었다는 것.


감사하게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내 마음에 쌓여있던 많은 상처와 아픔들은 서서히 녹아내렸다.

누구라도 갖고 있는 부모로부터의 상처와 아픔들...(유아교육과 교수의 자녀들도 상처 투성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는데... )

내게 있어서 그런 아픔들을 녹아내리는 그 무언가가 있었는데... 그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세월'이었다.


10대의 나는 20살이 되면 어른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20살이 돼도 내게 현명함은 오지 않았고, 너그러움과 포용력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30이 되면 달라지겠지 생각했지만 별반 다르지 않았고, 40을 앞둬도 내 마음은 그대로인 것만 같다.


내가 생각했던 나이 듦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나.

그저 관절이 조금 더 아프다는 것, 몸이 쉽게 피곤하다는 것, 소화가 잘 안돼 그전보다는 많이 안 먹는다는 것, 머리의 풍성함이 사라지고 얼굴에 베개 자국이 오래 남는다는 것, 쉽게 건조해진다는 것....

나는 여전히 작은 일에 서운함을 느끼고, 화도 잘 내고, 뒤돌아서면 1818 욕도 잘하고, 잘생긴 남자에 환장을 한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몸만 늙었지 마음만큼은 피터팬처럼 그대로 남아있는 내 모습 속에서 미성숙한 자아를 보게 된다.

어른은 '나이'에 맞춰 완성된 제품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32년 전의 아빠도 얼마나 어렸을까?

엄마 또한 얼마나 어렸을까?


문득 오래전에 봤던 동화책 한 장면이 떠오른다.


김영진 작가의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해'


어쩌면 나의 엄마도... 나의 아빠도... 자신들이 그려왔던 어른의 모습이 되지 않은 스스로의 모습에 크게 실망하고 좌절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서투르고 부족한 모습에 상처 받았을 아이들을 생각하며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새로운 삶을 살겠노라 수도 없이 다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처럼... 아주 쉽게 그 다짐이 무너져 내린 것은 아닐까?


조카에게 하고 싶은 말로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희웅아~

생각했던 나이가 되면 뭔가 멋진 어른이 될 거 같았는데 쉽지가 않네.

어쩌면 너희들을 낳고 기르면서 배워가고 성숙해지는 거 같아.

우리의 모습이 다 이해되진 않겠지만... 그래도 좋은 어른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마음속에 응어리가 있다면... 서서히 풀어지길 바랄게.


너도 나중에 장가가서 아이가 돈을 쫙쫙 찢어놔야 할아버지 마음을 이해할지 몰라 ㅋㅋㅋㅋ







매거진의 이전글 천장을 뚫은 남편의 주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