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는 개도 싫어한다.

by 이한나

총명한 강아지는 아니지만...

요 녀석 "밥 먹어"만큼은 귀신 같이 알아듣고 달려온다.


오늘은 내 밥도 차려먹기 싫을 만큼 귀찮은 날이라 개에게도 특식 제공은 없었다.

개는 "밥 먹어"라는 말에 무언가를 기대하며 달려와서 밥그릇을 확인했지만 딱딱한 오리지널 사료임을 보고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뭐냐? 그냥 사료라고 안 먹는 거야 뭐야?"

조금이라도 먹었으면 하는 마음에 나는 개를 데려와 사료 앞에 앉혀놓고 "밥 먹어!"를 연발한다.

"밥 먹어!", "밥 먹으라고!!", "밥 먹어!!!!"


몇 번이나 반복이 되었을까?

개는 "밥 먹어!"라는 말만 들으면 내게 이를 드러내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신기한 광경이라도 본 것처럼 딸아이는 내 앞에서 말한다.

"엄마! 대박!! 잔소리는 개도 싫은가 봐!"


나=엄마=잔소리 대마왕

언제부터 시작된 이야기인지는 명확하게 기억할 수 없지만... 아이는 언젠가부터 나의 말에 "아~ 잔소리~~~"라는 말로 응수했다.


대체 내가 하는 말이 왜 잔소리란 말인가?!!!!

"책상에 있는 그릇 싱크대에 가져다 놔."

"핸드폰 좀 그만하고 공부 좀 해라!"

"대학 갈 준비 안할거니?"

어찌 이 '바르고 바른말'들을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다는 '잔소리'로 표현되느냔 말이다.


친절한 것도 하루 이틀이지. 다음 날에도 한결 같이 빈둥대는 아이를 향해 어떻게 상냥하게 미소를 지으며 "시험 준비는 잘 돼가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대체 누구인가?


치열한 말 전투의 끝에 나는 내 안에 있는 독기를 가득 담아 아이에게 말한다.

"꼭 너랑 똑같은 애 낳아서 키워봐라. 꼭 너랑 똑같은 애로!"

정말 너도 한 번 당해봤으면 하는 마음으로...


아이 역시 지지 않고 마루에서 큰 목소리로 대답해 안방까지 메아리를 들려준다.

"난 엄청 잘 키울 수 있는데~ 나랑 똑같은 애면 너무 좋지~~!"


앗... 어떻게... 내가 어린 시절 내 어머니에게 했던 대답을 똑같이 한 단 말인가...

'너랑 똑같은 애 낳아 길러봐라!'라는 어머니의 오랜 바람이 '현실'이 된 것이 틀림없었다.

나와 똑 닮은 세상 걱정 없이 탱자탱자 놀기만 하는 한량이 나타났다.

시험 전날에도 10분이면 '공부 다했다!'는 아이.

시험 55문제 중 37개 풀고 실력이 늘었다며 좋아하는 아이.


아이는 알까?

엄마 아빠가 자주 말하는 '너의 삶은 네가 결정하는 것이라고...', '너의 길을 찾으라고', '멀리서 응원하겠노라고...', '내려놓겠노라고...'라는 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뱉어내고 있는 말들이라는 것을. 이 말들은 매우 심플하지만 내 자식이 아닌 남의 자식에게만 쓸 수 있을 법한 아름다운 말들이라는 것을.


아이가 그토록 원하는 '자유'를 선물하고자 '내려놓자'라고 수십 번 마음먹어도 신기하게 내 새끼만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아이를 향한 부모의 열정은 불타오른다.


그러나 이 불이 혹여라도 아이와 부모 사이를 갈라놓진 않을까 싶어 나는 다시 맹훈련에 도전한다.

'어린 시절 너에게 하나하나 알려주고 싶었던 그 마음을 내려놓고 입을 닫는 훈련'

함께 살아가기 위해 지켜야 할 기본적인 규칙을 제외하고는 말하지 않으려 오늘도 다짐한다.

그러나 나의 젊음의 에너지와 넘치는 건강은 훈련을 거스르기에 오늘도 나는 방에서 나가지 않고 글을 쓴다.

밤 시간이면 남편과 나는 아이의 삶에 끼어들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자 '마트 죽순이 죽돌이'가 되어 늘 집 밖을 서성거린다. (매일 14,000보는 기본이 된 남편)

아이 덕에 무릎 건강을 되찾고 있는 부부다.



하지만... 내 마음 한 구석에서는 조용히 속삭이는 목소리가 있다.

'아이야... 미안해... 엄마도 알고 있어. 나의 불안과 나의 욕심이 나를 그리고 너를 힘들게 한다는 것을... 엄마는 하루에도 수십 번 내려놓기를 다짐하지만... 엄마는 딱히 그런 능력은 없나 봐.

애라도 많이 낳을걸 그랬어. 너 밖에 없다는 이유로 모든 관심이 집중돼서 너를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미안하다...'


이 글을 쓰는 순간 아이가 평소 내게 했던 말들이 귀에 들리는 것만 같다.

-엄마 보기엔 한 없이 부족하지만 나도 내 인생을 고민하고 있다고...

-엄마 보기엔 한 없이 부족하지만 나도 나름대로 하고 있는 거라고...


그래그래...

우리 딸... 엄마 아빠가 믿어줘야지... 노력해 볼게...


근데 엄마 성격 알지? 하루면 변하는 거??

그래서 엄마는 에너지를 쏟을 다른 일을 시작해볼까 해.

우리 서로 좀만 버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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