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남편이 달라졌어요!

by 이한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집안 살림 관심 없음.

미적 감각도 없어 인테리어 관심 없음.

적응력은 탁월해 집에 뭐가 고장 나도 그냥 그러려니 받아들임.


그렇게 7년 동안 적응한 것 중에 하나가 문 앞에 들어서자마자 켜지는 센서등이었다.

7년 전 이 집에 이사 올 때부터 켜지지 않던 센서등에 적응한 나는 어두울 때면 재빨리 집으로 들어가 화장실과 신발장 불부터 켜기 바빴다. 우리 집은 원래 그런가 보다 했다.

뭐하나 고장 나도 남편 역시 나와 함께 적응을 해버리니... 우리 집은 그렇게 고장 난 곳이 서서히 늘어갔다.


태풍이 온 날 문틀 하나가 뽑혔지만 그러려니 테이프로 쓱쓱 붙였고, 주방 수전이 자꾸 통째로 뽑혔지만 그때마다 꾹꾹 눌러썼다.

그런 어느 날 남편의 입에서 절대 나오지 않을 법한 말들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내가 센서등 한 번 고쳐볼까?"

매번 "오빠 이거 고장 났나 봐"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사람 부르던가"로 화답해주는 남편이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분걸까? 이 남자 마트에서 센서등을 사와서는 집에 있는 모든 등 스위치를 내리고 한참을 왔다 갔다 하더니 정말 센서등을 달아주었다(이제 한밤중에도 나는 당당하게 현관을 나설 수 있게 되었다).


정확히 그때부터였다.

"뭐 고칠 거 없어?"

"오빠 센서등도 단 남자야. 해보니까 별거 아니더라고. 어떻게 마루랑 주방등도 좀 바꿔줘??"

"사기만 해. 오빠가 다 고쳐줄게."

"주방 수전 고장 났다며, 오빠가 고쳐줄까?"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주방 수전을 사서 진짜 고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주방수전교체에도 성공을 거둔 남편은 주방을 지날 때마다 "우와 내가 이걸 했다니!"라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흐뭇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 이후로 남편은 거실과 부엌이 어둡다며 온통 LED 등으로 교체하기까지 이르렀다.


아... 남편의 행동이 바로 어디선가 들어봤던 '작은 성공(small success)'인 건가??

이때부터 나는 검색창에 '작은 성공'을 치고 검색하기 시작했다.

미국 미시간대 칼 와익(Karl Weick) 교수는 작은 성공이 큰 성공의 밑거름이 된다는 작은승리전략(Small Wins Strategy)을 주창하며 산을 오르는 게 겁날 때 이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작은 언덕부터 넘는 것이라고 하였다. 실제로 사람들은 극복하기 불가능할 것으로 인식되는 큰 문제 앞에서 불안감과 무력감을 느끼게 되며 아무것도 해보지 않은 채 파국을 맞기도 한다. 하지만 이를 작게 쪼개 작은 문제부터 해결하게 되면 상당한 성취감을 맛봄으로 더 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신감과 도전정신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진짜였다. '망쳐봤자 센서등 값 15000원'이라는 편안한 마음으로 작은 것에 대해 도전했던 남편은 자신이 직접 만들어 낸 작은 성공 경험을 통해 성취감이라는 엄청난 에너지를 받았는지 수전, LED 등 교체를 넘어 이젠 주방 도배까지 검색하고 있다.


성취감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지난 학기 아동 교육론 수업 중에 제출된 한 학생의 과제물이 떠올랐다. 나는 학생들에게 수업을 듣고 기억하고 싶은 부분을 미래의 아내 혹은 남편, 혹은 꼭 전달하고 싶은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과제를 주곤 하는데... 한 학생이 '게임 중독'에 대한 수업을 마치고 미래의 아내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쓴 것이다.


"사람들이 게임을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그것으로부터 얻는 성취감이라고 생각해. 사람들에게 성취감을 얻는 것은 아주 중요한데 나는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취감을 얻기에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고 느껴. 특히 아이들의 경우 더욱 그렇다고 봐. 학교를 마치고 대부분 사교육으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은 도대체 어디서 성취감을 얻을 수 있을까? 물론 공부를 통한 좋은 성적으로 성취감을 얻을 수는 있어. 하지만 성적으로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학생들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10%도 안 될 거야. 그럼 나머지 학생들은 어디서 성취감을 얻어야 할까?(중략) 게임중독에 관해서는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다 다르겠지만 ‘게임은 무조건 나쁜 거다’라고 게임에 초점을 맞추기보단 ‘아이들이 왜 게임에서 성취감을 찾을 수밖에 없었나’를 생각하면서 우리 아이들이 다양한 곳에서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 우리도 살아오면서 성취감의 중요성을 경험해 본 당사자로서 우리 아이가 성취감을 얻을 수 있도록 서로 고민하고 노력해 보는 게 좋을 거 같아. 나도 열심히 노력해 볼게."


'아~~ 이 학생... 멋진 아빠가 될 거 같은데'라는 감탄과 함께 나 또한 많은 생각을 했다.

현재 고등학생인 딸아이는 성적표와 자신을 일치시키며 괴로워하고, 때때로 자신은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무능력한 사람으로 치부할 때가 종종 있었다.

이런 딸아이에게 부모인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딸아이가 무엇을 통해 '작은 성공'을 맛볼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것일까?


한참 글 쓰던 손가락이 멈춘 채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엊그제 아이가 한 말이 떠올랐다.

"엄마는 맨날 내가 안 한 것만 이야기해. 깜빡한 거, 안 한 거, 못한 거 그런 것만 찾아서 뭐라고 하고... 내가 잘한 거, 내가 해낸 거는 잘했다고 말해주지도 않고 맨날 뭐라고만 해. 그래서 난 엄마랑 말하기 싫어."

그 말을 들을 당시에는 '대체 잘한 게 뭐가 있다고 저러나?' 싶었는데... 지금은 미안한 마음이 한가득이다.


특별히 하고 싶은 것이 없는 딸아이가 진취적으로 뭔가를 찾아서 도전하고 성공을 맛보기 기대하기보다... 지금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하게, 성실하게 견뎌내고 있는 그 모습 그대로에 '잘 해내고 있다,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라고 말해주고 싶은 엄마가 되고 싶은데... 나는 늘 아이에게 평가자의 엄마였던 것이다.


어쩌면 아이 나름대로의 성취감을 내가 짓밟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게 뭐라고... 그 정도는 누구나 다 하는 거 아니야?"라는 말로 말이다.


아이의 시선으로 아이의 '작은 성공'에 격하게 반응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

"많이 애썼겠다."

"인강 보느라 고생하네."

"끝까지 도전하는 모습 멋진데!"

"야식 끊은 의지 칭찬해!!!"라는 여러가지 말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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