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영화를 좋아하냐고요?
음... 낮에는 '범죄 스릴러', 밤에는 '멜로'요.
나는 무서운 영화를 보면 집에서 화장실도 혼자 못 간다.
"여보, 한 번만 같이 가주면 안 돼? 제발... 나 진짜 무서워. 여보 여기 소파에서 움직이지 말고 거기서 있어야 돼!"
남편은 피곤해질 것을 알기에 무섭고 잔인한 영화는 반드시 혼자 본다.
하지만 짬짬이 남편 옆에서 힐끔힐끔 영화를 보며 심장이 강해졌는지 무서운 영화를 보는 법을 터득했다.
바로 '해가 있을 때' 즉 낮에 보면 덜 무섭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큰 깨달음을 얻은 나는 낮시간에 스릴러 장르에서 오래전 영화 '의뢰인'을 시청하였다.
네이버 영화 '의뢰인' 포스터영화 시작부터 피범벅...
어떠한 흔적도 없이 아내가 살해되었고, 시체는 사라졌다.
아내의 살해 용의자로 남편 '장혁'이 지목되었다.
영화에서 장혁은 매우 순진무구했고, 아내를 미치도록 사랑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런 남편이 용의자라니???!!!!!!
그렇게 영화는 시작되었고, 변호사 역을 맡은 하정우는 억울한 누명을 쓴 남편을 변호하게 된다.
하지만 그날 따라 너무 바빴던 나는 끝까지 영화를 보지 못했기에 내일 낮에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해는 기울어갔고 저녁 시간이 되어 퇴근한 남편은 오늘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 내게 물어본다.
"우리 색시 오늘 뭐했대?"
"오빠 나 오늘 낮에 무서운 영화 봤어. 의뢰인이라는 영화인데... 하정우랑 장혁 나오는 거야. 오빠 본 적 있어? 꽤 오래된 영화더라고..."
영화광 남편은 갑자기 생각이 나는지
아!!!! 하정우 뒤통수 맞은 거?
순간 짜증이 밀려오면서 "아 그걸 왜 얘기하는데? 나 아직 다 안 봤는데. 정말 짜증 나!!!! 뭐야 진짜!!!!!!!!"
"아... 다 안 본거야? 미안해... 크크크크크크 미안해~~~~~ 니가 다 본 것처럼 말했잖아!!!"
그랬다. 남편은 그렇게 내게 결말을 알려줬다.
다음 날 그래도 영화를 마무리하겠다는 마음으로 다시 재생을 한다.
평소 뭐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영화를 보던 나였는데... 많이 달라졌다.
빨래를 개면서 보고, 설거지도 하면서 보고, 카톡도 하면서 보고... 뭐하나 놓쳐도 아쉬운 마음이 없었다.
어차피 '하정우 뒤통수 맞는 거'라는 것을 알아버렸기에...
그저 어떤 식으로 뒤통수를 맞는지 슬쩍슬쩍 집중할 뿐이었다.
평소 아무리 감동이 없는 킬링타임용 영화를 본다 할지라도
배우들 사이에서의 대화를 살피며 강의할 때 적용할 것들을 생각해보기도 하고... 저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라는 생각으로 내 삶에 가져갈 것들을 찾아내던 나였다.
하지만 그놈의 '하정우 뒤통수'라는 결말을 알아버린 나는 두 시간을 아무런 의미도 없이... 내어주고 말았다.
이게 다 결말을 알려준 남편 때문이라는 탓을 하던 그 순간 내 가슴에 차갑게 와닿는 진실이 있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결말을 말해주는 사람은 아니었을까?'
"그거 배워서 뭐 할 건데? 솔직히 그런 건 써먹을 때가 없어."
"참... 쓸데없는 것만 하고 있네."
"결국은 힘들게 만들어도 다 쓰레기 되는 거야. 엄마가 다 치워야 되는 거 몰라?"
"그냥 일 만들지 마! 골치 아파!"
"그런 식으로 하면 결국 뒤에 일은 하나도 할 수 없잖아!"
"두고 봐 봐. 어떻게 되나~ 어이구!!!!"
내가 딸보다 23년을 더 살아왔기에 많은 것을 경험했고, 그 경험의 과정과 결과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어서일까?
아이의 관심과 눈길이 있는 그곳을 향해 엄마도 이미 비슷한 길을 가봤다며, 이미 느껴봤고 일찌감치 경험해봤다며 '하정우 뒤통수 맞는 거?'와 같은 말처럼 결말을 자주 말하는 엄마였다.
(물론 아이의 안전과 위협에서의 보호를 위해 결말을 말해주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아이가 할 수 있는 경험에 대한 질과 양을 조절하고 싶었던 엄마였던 것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아이는 꿋꿋이 그 길을 갈 때가 있었고, '엄마 말이 맞네'라며 그 길에 주저앉거나 뒤돌아설 때도 있었다.
혹시나 아이는 내가 영화 볼 때처럼 그 과정을 즐기지 못한 채 '엄마 말이 맞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23년을 더 살았던 엄마의 말대로 끝날 수밖에 없는 결말이라 할지라도... 아이는 그 길을 가며 배워야 하는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아이가 '실패가 무엇인지, 과정에서의 노력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기회조차 통째로 빼앗아 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심지어 나와 모든 것이 다른 아이는 색다른 결말을 만들어 낼 수도 있는데 말이다.
남편이 말해 준 '하정우 뒤통수 맞은 거?' 한 마디는... 내 안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남의 뒤통수치지 말고... 그냥 좀 내버려 둬요."라는 마음의 속삭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