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 대박사건!!!!"
딸아이는 외출 후 집에 들어오자마자 소리 지르며 나에게 달려왔다.
요리하다 놀란 나는 딸아이를 쳐다보며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손부터 닦고 와서 얘기해."라고 말했지만 딸아이는 멈추지 않았다.
"엄마! 아빠! 내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놀라지 말고 들어~~~ 내가 친구랑 헤어지고 버스 타러 가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나한테 걸어오더니 저기요 이러는 거야!!"
남편은 깜빡이도 켜지 않고 아이의 말에 끼어들었다.
"도를 아십니까 아니야?"
딸아이는 거만한 표정으로 "아니거든~~!!!! 아~ 진짜 좀 들어봐~ 그 남자가 날 부르더니 자기 핸드폰을 보여주는 거야! 근데 그 핸드폰에 뭐라고 쓰여있는지 알아? 아까부터 나를 보고 있었대. 자기 이상형이라는 거야. 남자 친구 있냐고~~ 없으면 연락처 알려줄 수 있냐고 쓰여있더라고!!!!"
우리 부부는 눈이 똥그래졌고, 마치 약속한 듯 함께 외쳤다.
"그래서?"
"저 미성년자인데요 그랬지. 그랬더니 그 오빠가 몇 살이냐고 묻더라. 내가 16살이요라고 대답하자마자 몇 번이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러면서 미친 듯이 도망가더라고... 딱 잘생긴 삘이었는데..."
아이는 아쉬움을 드러낸 듯하면서도 들끓는 흥분을 쉽게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 당시 내 맘속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생각이 지나갔다.
'애기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많이 컸네.'부터 '우리 딸도 시집갈 수 있겠구나'라는 희망의 씨앗까지...
나는 마치 내가 고백받은 듯 기분이 너무 좋았다.
'우리 딸이 이상형이라니?!!!!'
그런데... 이처럼 행복한 순간에 내 입에선 요상한 말이 흘러나왔다.
"니가 바로 코로나 수혜자다!!! 마스크 미녀??? 그 남자가 마스크 벗은 걸 못 봤구먼?!!! 솔직히 말해봐~~~ 마스크 쓰고 있어서 그런 거 아니야?"
남편도 신이 난 표정으로 "오~ 이다민~~ 이제부터 마스크 계속 쓰고 다녀야겠네~~"라며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그때 아이는 심각한 표정으로 "진짜 짜증 나거든!!! 그리고 그 남자 내가 스타벅스에서 차 마실 때도 봤다고 했어. 그니까 마스크 잠깐 내린 것도 본 거라고!!! 아 진짜 짜증나!"라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러다 갑자기 딸은 핸드폰을 꺼내 셀카를 찍기 시작했다.
"이 화장법이 먹히는 거야. 과하지 않으면서 내 미모를 돋보이게 하나 봐. 다음에도 이렇게 해야지!"
남편과 나는 '쯧쯧' 혀를 차며 다시 부엌일에 집중했다.
그렇게 일상을 살아가다 내가 아이를 향해 놀렸던 '마스크 미녀', '코로나 수혜자'라는 말이 번뜩 떠오르는 일이 있었다. 바로 내가 브런치에 써온 글들을 천천히 읽던 중에 말이다.
그 글에는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쓴 글이었다.
사실 내 주변에 사람과의 관계에서 삐그덕 거리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이렇다.
"내가 꼭 받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야. 근데 사람이 너무 하지 않냐? 그 정도 도와줬으면 고맙다고는 해야지. 어쩜 그런가 몰라~ 내가 도와주는 게 당연한 거야? 받아야 맛은 아닌데... 좀 그래. 다시는 그 사람이랑 엮이고 싶지 않아!'
관계= 마음 x 표현
아무리 상대를 향한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어도 표현하지 않는다면, 표현은 '0'이 되고, 결국 관계도 '0'이 된다는 이야기.
극단적인 공식이긴 하지만... 고마울 때 고맙다고 말하고, 미안할 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우리의 관계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는 누구나 알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한 가지 놓치고 있었다.
바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표현에는 묵언의 'O'만 있는 것이 아니라 '플러스 표현'도 있었고 '마이너스 표현'도 있었다.
유난히 마이너스 표현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
아이가 만든 작품을 보면서 "열심히 하더니 결국 완성했네. 멋지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이고~ 몇 시간을 잡고 있더니 하긴 했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힘들게 준비한 식탁 앞에서 "음식을 많이 만드느라 힘들었겠어. 너무 고마워."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냥 대충 한 끼 먹는 거 가지고 왜 이렇게 오버했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오래전 신입사원과의 면담에서 한 사원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처음으로 성과를 내서 회식을 하는데... 모두 다 제게 잘했다 축하한다고 하던데 옆에 있던 과장님은 제게 웃으며 뭐라고 한 줄 아세요? <첫 끗발이 개 끗발인 거 알지? 하하하... 내 말은 나중에 뭐가 잘 안 돼도 너무 낙심하지 말란 이야기야! 회사일이 마음처럼 안되거든> 이러시더라고요. 마음은 알겠는데 말을 꼭 그렇게 밖에 못 하는지... 진짜 너무 싫어요."
많은 기억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중 태어나 처음으로 대시받은 딸아이에게 찬물을 확 끼얹던 내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나도 마이너스 표현을 자주 썼구나.... 우리 딸이 누군가의 이상형이라는 말에 나 역시 설레고 기분 좋았는데... 마스크 미녀네~ 코로나 수혜자네~이런 말이나 하고...'
물론 나의 장난기가 가족들을 즐겁게 만들어 줄 때도 많다.
다만 '예쁜 마음은 예쁘게, 감사한 마음은 감사함이 느껴지게, 미안한 마음은 미안함이 느껴지게' 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빈정거리는 것도 습관이지 않을까?
어느 곳에 가든 꼭 있는 밉상이 내가 되지 않도록
나의 마이너스 표현을 의식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