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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Aug 23. 2023

[6] 언어도 분산투자.(3)

영어가 외쳤다. 무시하지 말고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라고. 

[6] 언어도 분산투자.(1)

대학원 생활이라는 건 나에게 있어 끼어들 수 없는 세계에 애매하게 스며보려 노력하는 어설픈 매일의 연속이었다. 


많은 미국인 학생들은 졸업 후에 연구직, 교수직 혹은 창업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모두 체류 신분 문제를 해결하는 데엔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상당한 수준의 영어 실력을 필요로 한다. 언감생심. 내가 감히 꾸면 안 되는 꿈이라 느꼈다. 


나는 꿔보지 못할 꿈을 꾸며 프로젝트에 열중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아름다운 소설을 읽는 것과 비슷한 두근거림이 있었다. 내가 마주한 것과는 다른 솜사탕 같은 세계에의 동경. 소극적으로나마 그 주변을 맴돌아 보았지만 나의 삶도 목표도 그들과 달랐다. 


유학생들은 서로 비슷할 것 같지만 또 그렇지도 않았다. 각자의 형편과 사정, 목표가 무척이나 제각각이었다. 오히려 모두 다르기 때문에 다양성을 서로 이해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나와 달리 대부분 대학원이 미국생활의 시작이었던 것에서 오는 정서적/경험적 차이가 생각보다 컸다. 


외국에서 미국 대학으로 편입하여 학위를 받고, 일을 하다가 취업 비자 무작위 추첨에 떨어진 후 대학원에 진학한 사람은 동기 중 나 하나였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릴 적부터 큰 무리에 잘 끼지를 못했다. 그렇지만 한국에 있었더라면 적어도 한국에서 초중고대학을 나오고 일을 하다가 대학원에 가는 사람이 나 하나는 아니었을 텐데, 조금 더 독특한 길을 걷게 되면서 의도치 않게 점점 더 혼자가 되었다. 


나만 그렇다고 하는 건 아니다. 요즘 세상에 어디나 그렇지만, 특히 뉴욕에는 홀로 자신만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 나의 서사는 명함도 못 내밀어볼 영화 같은 인생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참 의문이다. 가상의 중간 세계에 집착하는 이유가 어째서 그때도 보이지 않았을까. 어디에서도 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어서 그렇다는 사실을 왜 깨닫지 못했을까. 


괜히 불쌍해 보이거나 약해 보이는 소리 하는 걸 싫어한다. 스스로에게, '그렇지 않아, 나는 내가 있는 이곳에 내 모습 그대로 온전히 소속되어 있어. 멋지게, 아무 일 없이, 잘 살아가고 있어.' 라며 고집 있는 현실부정을 했던 걸까? 


지금은 과거의 무엇이든 그냥 이야기해도 자존심이 상하거나 상대의 반응이 예측이 되지 않아 불안하거나 하지 않지만, 그때는, 아니 심지어 작년까지만 해도, 괜찮은 척 자신도 속이는 것이 최선이었겠지 싶기도 하다. 어떤 상황에도 고개 똑바로 들고 기죽지 않던 나에게 수고했다고 어깨라도 두드려 주고 싶고.   




전공 수업에서 느낀 패배감, 소외감의 원인은 돌이켜 볼수록 명백하다. 학교와 다른 방향성을 가진 채 시작부터 잘못 끼운 단추,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 곳에서 자신을 모르고 있던 나, 나와 다른 세계의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내야 하는 대학원 수업을 소화하기엔 여전히 역부족이었던 소통 능력. 


시각적 언어를 무기라며 들이대었지만, 그것에도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대학원이 정말 원하는 것은 나의 현란한 디자인 실력 같은 것이 아니었고, 그 실력이라는 것도 결국 디자인이 본진이 아닌 동기들에 비해 뛰어나 보일 뿐이었다. 아무리 칼이라며 꺼내어 휘둘러봐야 사회 초년생 디자이너의 장난감 칼이었으니 말이다. 


결국 시각적 언어만을 주 무기로 삼아 전진하는 것이 한계점에 다다른 것이다. 창작 능력을 더 갈고닦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고, 그에 더해 말과 글의 힘을 보다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대학 내내 아무리 슬슬 피해 다녀봐도 나를 괴롭히던 영어가 이곳에서 아주 제대로 외쳤다. 무시하지 말고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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