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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May 02. 2023

시간을 뒤트는 부드러운 날갯짓.

아름다운 비행은 내 눈앞에 영원히 머물러야 한다.

화창한 오후, 맨해튼 전경이 보이는 강변을 산책하던 중이었다. 수십 마리의 새들이 V자 대형으로 줄을 맞추어 유려하게 하늘을 나는 것을 발견하여 지켜보았다. 그 우아하고 진취적인 모습은 멀리 떨어져 감상하는 오케스트라의 합주를 연상케 했다. 오케스트라는 지휘에 맞추어 일제히 또는 각각의 악기 섹션이 연주를 시작하거나 멈추기도 하고, 연주의 강약 및 속도를 조절하기도 한다. 무대 전체를 조망할 때 시각적으로 다가오는 그 진지하고 질서 정연한 모습은 마치 맑은 물결이 바람 따라 부드럽게 넘실대는 작은 드라마 같달까. 아름다움을 넘어, 고귀하다. 눈으로 좇는 운율, 한없이 시적인 합주.


오감을 자유롭게 자극하면서도 그 안에 먼지 한 톨까지 조화로운 것을 경험할 때 인간은 감동한다. 감동하기 위해 추구하는 것이 예술 아니었던가. 자연은 태초부터 예술의 원형을 모두 품고 있기에, 인간은 신비한 자연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 사랑하다 못해 경외시한다. 도시를 배경으로 한 하늘의 정령들의 무심한 비행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일상 속의 예술 작품이다. 순수한 푸른빛의 무대, 기분 좋은 날갯짓으로 시작되는 소리 없는 왈츠에 그렇게 감탄하며 빠져들 무렵, 시간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시간은 계속해서 일정한 속도로 흐르는 것이어야 한다. 멈추거나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렇게 믿는가?


새들의 공연은 멈추지 않았고, 비행은 매끄러웠다. 나는 그 속에서 시간의 흐름을 읽을 수 없었다. 자유로운 곡선을 그리며 날개로는 계속 공기를 저어 가르고 있었지만, 어딘가를 향해 날아가고 있다기 보단 제 자리에 멈춘 채 춤을 추고 있는 듯 보였다. 내가 옳았으면 했다. 멈춰버렸으면 했다. 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기에 부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름다운 비행은 내 눈앞에 영원히 머물러야 한다.


이 모든 건 고정된 무대에서 상연되는 거대한 인형극일지도 모른다고 상상해 보자. 모든 새들의 몸통과 날개에 고정된 수많은 가늘고 투명한 와이어들이 구름을 뚫고 하늘 저 너머의 천사들에게 연결되어 있을것이다. 재주많은 천사들이 숙련된 솜씨로 그것들을 움직여 비행을 구현하는 것, 그럴듯하지 않은가. 훌륭한 작품이다. 천사가 와이어 같은 번거로운 장치가 굳이 필요하겠느냐 내게 따져 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풍요로운 집단은, 예외 없이 오래되고 불편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나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풍경을 살펴보니 새들은 믿기지 않게 빠른 속도로 나아가고 있는 게 확실해 보였다. 맨해튼 남쪽 끝에서 미드타운을 넘어 북쪽 끝까지, 너무나도 순식간에. 내가 걷는 속도보다 느린 듯 보이는데 어찌 저리 빠른 건지, 뻔뻔하게도 억울했다. 새들은 제 자리에 머물러 있는데 그 뒤에 자리한 맨해튼이 남쪽으로 떠내려가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도시는 어느 순간 내 눈앞에서 사라지겠지만, 나를 기쁘게 하는 새들의 비행은 머무르는 것이다. 그러나 그 뒤에는 분명 적막하고 슬픈, 낯선 풍경이 대신 자리할 터인데, 나는 그 작품 역시 사랑하게 될까 아니면 떠내려간 섬을 그리워하며 울먹이게 될까.


시간은 언제나 같은 속도로 쉼 없이 흐른다고 한다. 정녕 그렇게 믿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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