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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초딩 Feb 13. 2020

채식이라니, 내가 채식이라니.

쪼렙 마케터의 쪼렙일지

서점에서 일할 땐 내가 좋아하는 책 위주로 매대에 잘 보이는 곳에 꾸미고 진열하여 서점에 찾아온 독자에게 좀 더 잘 보이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서점을 떠나 출판사를 다니고 나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와 책을 내는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나오는 책이 다 좋을 순 없었다. 그렇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에 비해 애정이 조금 떨어질지 몰라도 나는 잘 팔아야 했다. 나는 그 책의 마케터니까.

하지만, 올해 담당하게 된 브랜드에서 나온 첫 책은 당황스러웠다. 채식이라니. 내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채식이라니. ‘인생은 고기 앞에 고기’ ‘저기압일 땐 고기 앞으로 가라’ 등 고기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나에게 채식이라니. 결국엔 내가 채식이라니.
물론 그렇다고 내가 채소를 아예 먹지 않는 건 아니다. 고기를 먹을 땐(역시 고기) 상추와 깻잎 그리고 파무침과 마늘, 고추 등을 아낌없이 쌈을 싸고, 명이나물을 주는 고깃집에서는 몇 번의 명이나물을 다시 달라는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야말로 명이나물 홀릭. 하지만, 그것은 고기 앞에서의 채소일 뿐. 고기가 없이 상추와 깻잎 그리고 마늘과 고추는 무슨 소용일까.

하지만, 어쩌겠나. 올해 담당하게 된 브랜드의 첫 책이다. 나는 처음이라는 것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잘 팔아야 한다. 아..아니 많은 사람에게 이 책의 좋은 점을 알려야 한다. 그러면 어쩌겠나. 일단 읽어야지. 원고를 펼쳐서 읽는데, 살면서 처음 보는 채소들도 있었고, 단순히 모든 음식의 부재료라고 알고 있던 채소에 대한 환상들이 많이 바뀌었다. 이것이 채소구나. 채소로 할 수 있는 요리가 이렇게나 많구나. 조금의 과장을 보태면, 마치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할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도 생각했다. 왠지 자신감이 생겼다. 이 책을 잘 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또 예전부터 건강에 대해서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았나. 특히 요즘은 비건도 유행이니까.

브랜드 대표님과 부서장님과 얘기를 나누며 많은 아이디어를 주고받았다. 사실 부서장님도 고기 좋아하는 거 아는데. 얼마 전에 회식 때 젓가락 쉬지 않는 거 다 봤는데. 이것이 마케터인가 싶기도 했다. 나라는 사람은 하나지만, 책은 여러 권이니까. 그 책에 맞게 나를 변화하는 것.

그 책은 조금씩 입소문을 타고, 독자들의 손에 읽히고 있고, 세일즈포인트라고 일컫는 책의 판매지수가 매일 조금씩 오르고 있다. 앞으로도 이 책이 많은 독자에게 읽혀 사람들이 채식의 좋은 점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 육회를 시켜 젓가락질하며,

이 글을 마무리했다.

이천이십년 이월 십삼일
마케터 최초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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