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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크라노스 May 18. 2020

이설아의 첫 번째 앨범/ "네가 곁에 있었으면 해"


이설아의 첫 번째 앨범
/ " 네가 곁에 있었으면 해 "



"저는 후회하지 않아요. 후회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하고 싶은 걸 꾸준히 해야겠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무모하게 살아봐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싶고, 후회하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고 얘기했다. 입에 붙은 확신이라는 단어가 참 단단해 보였다. 지금의 단단한 마음에 시작이 되었던 시간들, 2016년 7월 발매된 '이설아'의 첫 번째 앨범 [네가 곁에 있었으면 해]의 이야기다.




Q. [성숙한 마음으로 무모하게] 최근 독특한 제목의 곡을 발매하셨어요.


해마다 그 해를 살고 싶은 문장 하나를 두려고 해요. 지난해엔 “자신을 사랑할 수 없으면 누구도 사랑할 수 없어”로 지냈고, 올해는 “성숙한 마음으로 무모하게” 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이 문장으로 메일링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그게 너무 좋았어요. 무모하게 살아봐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꼭 올해의 첫 곡으로, 이 마음을 노래하고 싶었어요.


Q. 동명의 메일링 서비스를 8개월간에 걸쳐 진행하셨죠, 어땠어요?


답답하고 묵혀뒀던 말들을 하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앨범을 발매하고 나면 공허한 기분이 휘어잡을 때가 있어요. 그 시기들을 메일링 덕분에 많이 채웠어요. 처음엔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걱정됐는데, 재구독해주시는 분들도 많고 좋은 말을 남겨주시는 분들도 많아서 신기했어요. 무모하게 시작해도 값진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느꼈어요. 위로를 많이 받았고, 다음의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을 얻었어요.


Q. 평소에 글을 많이 남기시나 봐요.


그렇지는 않아요. 원래 지내던 환경에서 벗어나, 시간을 냈을 때 글이 많이 나오는 편이에요. 그런 시간이 생기면 작정하고 글을 써놓아요. 그래서 어딘가로 떠나있는 시기가 항상 필요한 것 같아요.


Q. 그럴 땐 주로 어떤 글을 쓰세요?


그냥 제가 보고 겪은 것에서 파생되는 주제들이요. ‘샤워’라는 글을 쓴 적이 있어요. 샤워 후 알몸으로 있는데 그 순간이 너무 안전하게 느껴졌어요. 그런 생각을 글로 남기기도 하고, 가사를 쓰기도 하고요. [성숙한 마음으로 무모하게]도 제주도에서 썼어요. 그렇게 마음의 여유를 만들고, 다른 환경에 놓여 있을 때 무언가를 많이 써요.




Q. 처음 발매한 EP [네가 곁에 있었으면 해]는 어떤 앨범이에요?


성인이 되고 3년 동안 썼던 곡들을 추린 앨범이에요. 처음이라 그런지, 풋풋하고 앳된 기분이 들고 얼마 안 지났는데도 되게 예전처럼 느껴져요. 혼자 우뚝 서 있는데도 외로울 때가 있고, 사람이 보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비단 연인의 관계뿐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요. 어떤 식으로든 ‘결핍’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Q. 예를 들면요?


‘시간의 끈’이란 곡은 늙어서 다시 들으려고, 가장 어릴 때에 남겨놓고 싶었던 곡이에요. 이번에 다시 들었을 때도 예전의 결핍과 지금의 결핍이 다른 게 느껴지더라고요. 노년일 때는 또 어떤 결핍이 있을까 궁금했어요. ‘별이 내리는 길목에서’는 잘 지내고 있지만 왠지 그리운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들을 다시 만나고 싶은 이상을 담았어요.




Q. 음악 경연대회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처음 음악을 들려줬어요. 왜 대회에 참가하고 싶었어요?


그 나이대에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고 싶었어요. 그때는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 대학생만 참가할 수 있었어요. 워낙 동경하던 대회라, “대학 가면 꼭 참가해야지!” 했었어요. 방에서 혼자 곡을 쓴다고 쓰는데, 이걸 어디 들려줄 수 있는 곳이 없잖아요. 처음부터 그런 기회를 만들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기회가 생기면 다 부딪혀보고 싶은 도전정신이 있었던 것 같아요.



2016 헬로루키



Q. 대회 출전으로 붙은 수식어들이 있잖아요. ‘엄마로 산다는 것은’ ‘최연소 금상 수상’ 등등의, 그런 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느껴요?


우선 되게 감사해요. 저를 기억하는 무언가가 있는 거잖아요. 체감상 크게 다른 건 없는데, 참가했다는 그 몇 문장만으로도 인정받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뭔가 해냈다”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만은 않았구나” 하는 위안에도 도움이 되고요.



K팝스타 4



Q. 그리고 2년여 후에 첫 앨범을 발매했어요. 그 사이엔 어떻게 지냈어요?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졸업 후 꼭 서울에서 살고 싶었어요. OST 작업도 하고, 공연도 하고, 여러 작업을 병행하면서 자취를 준비했어요. 결국 서울 옥탑방에 자리 잡고 앨범 작업을 시작했어요. 음악 만들고, 텀블벅 구상하고, 피지컬 CD 제작하고, 혼자서 다 했어요.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저돌적이었던 것 같아요.




Q. 곁에 도움을 구할 사람들은 없었어요?


원하면 도움을 구할 수 있었는데, 왠지 모를 오기가 있었어요. 처음 다수의 사람에게 알려진 음악이 차분한 발라드다 보니, 그 이미지가 되게 강했거든요. “나는 이것도 저것도 하고 싶은데 아 답답해” 어린 마음에 오기가 생겼던 것 같아요. 그래서 모든 걸 혼자 해보고,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결정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Q. 그래서 결국 혼자 내린 결정은 어떤 거였어요?


되게 많이 고민했어요. 예전부터 작업해둔 음악들을 꺼내고 싶은데, 뜬금없게 들리면 어쩌나 걱정됐어요. 아마 많은 분들이 기대했던 음악과 다름을 느꼈을 거예요. 하지만 후회하지 않았어요. 제가 정말 좋아서 한 선택이었으니까요. 후회하는 것 자체를 안 좋아하기도 하고요. 그때 그 곡들을 빼내지 않았으면 많이 답답하고 곪았을 거예요.



Q. 그렇게 발라드와 낯선 사운드의 앨범을 내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뭐예요?


멜로디나 편곡적으로 꼭 오리엔탈 요소를 넣고 싶었어요.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실제로 저도 그런 부분에서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에, 제 노래에는 늘 동양적 요소가 들어가요. 우리 음악에 한국적 색이 들어가 있다면, 한국인에게도 외국인에게도 가장 납득이 가는 음악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Q. 앨범 준비하면서는 어떤 부분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어쨌든 제가 하고 싶은 걸 했으니까, 그 선택으로 해방감을 얻는 게 가장 우선이었어요. “먹고 살 직업으로 성공해야겠다” 하고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 마음이 편했으면 좋겠다” 하는 게 더 컸어요. 그래서 제가 원하는 소리를 꼭 담아내고 싶었어요. 실제 악기 연주를 담고 싶으면 휘슬을 사서 연습하고, 피들 연주자분을 대구에서 모셔오기도 하고요. 또 미디 꿈나무로서, 투박하지만 좋아하는 비트들을 직접 찍어 넣었어요. 원하는 사운드를 내는 데에 특히 노력한 앨범이에요.



Q. 앨범이 발매되고, 직후엔 기분이 어땠어요?


오디션 프로그램 덕분에 많은 분들이 제 소식을 받아보고 있었는데, 그거에 대비 앨범 반응 수가 적었어요. “그렇지 원래 이런 거였지” 하면서도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킨 대가가 이런 거구나” 알게 돼서 재미있었어요. 어느 정도 예상했기 때문에 마냥 허탈하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하고 싶은 걸 꾸준히 해야겠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Q. 발매 후에 스스로 달라짐을 느낀 부분이 있었어요?


그때는 되게 저돌적으로 곡을 썼어요. 노래를 들어보니 저만 생각했더라고요. 그렇게만 음악을 해도 괜찮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앨범을 들어주고, 기다려주고, 나오면 또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음악을 오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재미있게, 지치지 않게, 오래오래 하려면 누군가 들어줘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물론 저는 여전히 재즈도 하고 싶고, 록도 하고 싶고, 월드 뮤직도 하고 싶지만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잘 녹여내면서도 청자를 더 생각하게 됐어요. 그 중간지점을 찾기 위해 계속 고민하고 배워가도록 하는 데 불을 지펴준 앨범이에요.



Q. [네가 곁에 있었으면 해]가 어떤 앨범으로 남길 바라요?


앨범을 발매하고 1, 2년쯤 후에 “괜히 냈나?” 하는 시기가 있었어요. 그때는 되게 불안하고 모호했어요. 이걸 어떻게 풀어내야 앞으로 걸어갈 수 있을까, 너무 대책 없이 냈나 싶었어요. 지나고 보니 제가 저를 사랑하지 못해서 그 기록들마저도 부정했더라고요. 지금은 제가 저를 더 아끼게 되면서, 그 시기의 기록들도 모두 품을 수 있게 됐어요.

들으시는 분들도 그걸 느껴주시면 좋겠어요. “이 뮤지션이 어떤 심경의 변화를 겪으면서 걸어왔고 그래서 내가 이 노래까지 듣게 되었구나” 알아주시면 좋겠어요. 이 앨범을 듣고 그 다음 앨범을 들어보는, 거기까지 갈 수 있는 시도만 되어도 정말 값지다고 생각해요.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제 첫 기록물로 앨범이 남아 있으면 좋겠어요.


Q. 앞으로는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저는 곡을 만들고 일정 시기가 지나면 그걸 내보이기가 너무 힘들어요. 지금의 마음과 그때의 마음이 달라서 힘든 것 같아요. 그래서 최근 든 기분들을 너무 멀어지기 전에 내고 싶어요. 이번엔 좀 더 희망적인 곡들이 모일 것 같아요. 부를 때마다 힘이 나고, 좋은 것들을 생각하고 싶은 노래들이요. 제 성향상 어쩔 수 없이 묻어나는 무거움이 있을 테지만, 이번엔 그 구렁이에 깊이 빠지지 않고 힘이 되는 음악들을 꾸려보고 싶어요. 그런 계획을 하고 있어요.



글 : 이지영
사진 제공 : 이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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