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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대학교병원 Jul 08. 2022

대한민국 소아신경외과학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다

왕규창 대한민국의학한림원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writer. 최주연  photo. 황필주(Studio79)


정년퇴임 후에도 끝나지 않은 여정

1973년 3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해 2020년 2월 정년퇴임을 하기까지, 왕규창 교수는 50년이 가까이 서울대학교병원과 함께했다. 그 사이 그는 SCI급 학술지에 350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한 연구자, 환자와 보호자에게 사랑받는 임상의사, 지식과 애정을 아낌없이 베푸는 스승 등 교육・연구・진료 전반에 걸친 역할 충실히 해냈다. 그의 성취는 서울대학교병원의 발전과 우리나라 소아신경외과학의 국제화로 이어졌다. 이 정도면 마라톤에 빗대도 풀코스를 완주하고 남은 것 같은데, 정년퇴임 후에도 그의 발걸음은 여전히 분주하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의 제8대 원장, 국립암센터 초빙의사, KIST 뇌과학연구소 자문 등 새로운 임무가 주어진 탓이다.

  *의학 및 의학 관련 학문 분야의 국내 석학들이 모인 단체로 2004년 창립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중에는 ‘코로나19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한편, 정부 방역정책 수립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자리에 비해 능력이 부족해 걱정일 뿐 대한민국의학한림원장을 맡게 된 것은 큰 영광입니다. 올바로 중심을 잡는 것과 국민과의 소통에 초점을 맞춰 일하려고 합니다. 국립암센터에서는 국가 암 진료 가이드라인 사업*  단장을 맡고 있는데, 국민 삶을 위한 일이라 더 애착이 갑니다. KIST 뇌과학연구소는 신경과학, 뇌공학, 치매 등에 관련된 연구를 하는 곳으로, 재작년부터 자문을 맡아 올해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신경과학팀과 3개의 공동과제를 진행 중입니다. 이렇게 걸쳐 있는 일이 많지만 현역 시절에 비해서는 한결 편해졌습니다. 가족과 지내는 시간은 물론 개인 시간도 생겼으니까요. 무엇보다 환자 진료 부담이 줄어들어 마음이 가벼워진 것 같습니다. 시급한 환자들을 진료하는 소아신경외과의 특성상 부담이 컸기 때문입니다.”

  *표준화된 암 진료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정확한 정보에 기반한 근거 중심 진료를 돕고 지역·계층 간 진료 불평등 해소하기 위한 사업. 2025년 완료를 목표로 국가암중앙기관인 국립암센터에서 추진한다.


2008년 EBS에서 방영한 [명의3.0]편에는 임상의사로서의 치열했던 삶이 그대로 드러난다. 특히 프로그램의 타이틀이었던 ‘늦지 않게, 하루라도 늦지 않게’는 “수술 시기를 하루 놓치면 아이들의 일생을 놓칠 수 있다”라는 왕규창 교수의 지론을 함축한다. 수술 전날 밤이면 더 나은 계획을 세우기 위해 잠자리에 누워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한다는 것이나 “아이들은 25년째 저를 긴장하게 만드는 존재입니다. 수술장에 들어갈 때마다 아이의 50년, 60년 후를 떠올리게 되니까요”라는 고백은 깊고 무거웠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며 밝힌 “마라톤과 투병 과정은 통하는 데가 있는 것 같아요. 포기하지 않고 완주한 경험을 들려주며 아픈 아이들을 격려하려고 해요”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선천성 기형 환자 진료 체계의 변화를 이끌다

왕규창 교수는 학창 시절 수학과 물리를 유독 좋아해 물리학과나 전자공학과 진학을 고려했다가 마지막 순간 의과대학 진학을 결정했다. ‘보람’ 쪽으로 마음이 기운 것이다. 입학 후에는 공부에 더해 오케스트라, 연극반 등에서 활약하며 창의성을 발휘했다. 창의성 혹은 창의적 사고에 대한 왕규창 교수의 애정은 전공 선택 시에도 영향을 끼쳤다.


“소아과와 신경외과를 두고 고민하다가 신경외과를 택했습니다. 새롭게 각광받는 분야이니 창의적인 사고를 펼칠 수 있을 것 같았죠. 하지만 소아신경외과까지 생각이 미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레지던트 시절 ‘아이들을 좋아한다’고 했던 제 말을 기억한 선배들과 교수님들이 강력하게 권유하시더군요. 저 역시 존경하는 조병규 선생님과 일하는 것이 좋아서 받아들였습니다.”


소아신경외과로 방향을 정한 왕규창 교수는 선천성 기형 분야에 투신했다. 아니, 치료의 사각지대에 놓인 선천성 기형 환자의 특성상 ‘투신’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었다. 왕규창 교수는 “기형 환자들은 어느 병원에서도 따뜻한 치료를 받기 힘들어요. 치료도 쉽지 않을뿐더러 그 효과도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설명한다.


“선천성 기형 질환의 분류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을 정도로 낯선 분야였습니다. 처음에는 피하고 싶었죠. 그런데 장기 해외 연수 후 시각이 달라졌어요. 힘들어하는 환자에게 도움이 되자는, 나아가 우리 병원과 대한민국 소아신경외과학의 수준을 세계 5위까지 높여 보자는 목표가 생긴 것입니다.”


왕규창 교수는 차근차근 환경을 만들어 나갔다. 고(故) 지제근 교수의 도움을 받아 발생학 등 기초연구를 하면서 임상연구도 병행했다. 비뇨기과, 정형외과, 영상의학과 등과 다학제클리닉을 열어 진단과 치료에 섬세하게 접근했다. “우리 가족만 벌 받은 것 같다”라는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혼자가 아니다’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의사와 환자가 함께하는 캠프, 보호자 대상 강좌도 열었다. 이런 프로그램들이 쌓이면서 선천성 기형 환자 진료 체계에 변화가 생겼고, 국내 소아신경외과학의 수준은 세계 상위권에 도달했다. 왕규창 교수의 세계소아신경외과학회장 선출, 세계신경외과학회 학술대회 국내 개최 등이 이를 증명한다.



훌륭한 의학자들을 길러낸 스승

척박한 소아신경외과 분야를 개척하는 동안 왕규창 교수는 서울대학교병원 교육연구부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장 등을 역임하며 인재 양성에도 힘썼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교수의 첫째 사명은 후학 양성이라 여기는 덕분이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교수는 그 자체로 엄청난 기회입니다. 대한민국 의학의 내일을 열어갈 인재들과 함께 교육·연구·진료를 할 수 있으니까요. 제 경우 교수에 임용되면서 훌륭한 제자 5명만 잘 키운 후 은퇴를 하자고 다짐했습니다. 소아신경외과가 워낙 작은 분야라 목표도 작게 잡았는데 다행히 달성한 것 같아요. 제 노력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나름대로는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왕규창 교수에 대해 제자들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가르쳐 주려고 노력하시는 선생님”이라고 말한다. 강의를 맡으면 각 분야의 교수들을 초빙해 지식의 폭을 넓혀주었고, 함께 회진을 돌 때면 환자 상태와 관련한 질문을 던져 제자들이 답을 찾아보게 만들었다.


그러나 스승으로서 왕규창 교수가 가르친 것은 의학 지식만은 아니다. 그가 그리는 ‘좋은’ 혹은 ‘뛰어난’ 의사의 상에는 학문적 성취 이상의 것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의과대학 학장 시절 그는 “전체 정원 중 10~20%만 우수한 학생으로 채워져도 족하다. 그 외 학생들은 다른 분야로 균형 있게 진출해야 한다”라는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대부분의 의과대학 졸업생이 환자를 진료하는 ‘보통’의 임상의사가 되는 현실에서는 인성과 소양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이런 부분들은 삶의 태도와 맞닿아 있기에 막연할 수 있다. 하지만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환자와 보호자 입장에서 진료에 접근하는 스승 곁에 있는 것만으로 왕규창 교수의 제자들은 ‘좋은’ 의사에 가까이 다가섰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후배들과 제자들은 왕규창 교수 은퇴 후에도 서울대학교어린이병원 소아신경외과를 지키는 힘이 됐다.


스스로 즐기며 타인을 배려하는 의사가 되길

‘은퇴’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폭넓게 활동하고 있는 이유를 묻자 왕규창 교수는 “다 계획이 있다”라며 짓궂게 웃었다.


“만 70세는 돼야 ‘진짜 은퇴’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몇 가지 있어요. 올해는 지난 2년간 열심히 썼던 논문 두 편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제 경험을 글로 남기는 작업도 조금씩 하고 있습니다. 상당 부분 공적인 영역에서 살았으니 정리해서 후배들에게 남겨야죠. 그나마 의학한림원장 임기와 국립암센터 업무가 종료되는 2025년부터는 좀 자유로워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때부터는 운동이나 악기연주, 여행과 같이 좋아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싶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학시절부터 왕규창 교수는 대중음악과 클래식을 아우르는 악기 연주, 연극반 활동 등을 즐겼다. 소아신경외과 전문의가 된 후 우연히 시작한 마라톤은 좋은 취미가 됐다. 그래봐야 평생의 우선순위는 ‘환자’와 ‘학생’과 ‘병원’이었으니, 의학 이외의 영역을 기꺼이 희생한 것은 아닌지 문득 궁금해졌다. 어설픈 궁금증을 풀어놓자, 왕규창 교수는 “의학 자체가 좋았고, 이루고 싶은 꿈도 있었으니 개인적인 삶을 희생했다고는 할 수 없지요”라고 답했다. 대답 속에 담긴 의미를 깨달은 것은 후배들에게 전하는 당부를 듣고 난 후였다.


“의학이라는 분야는 워낙 넓고 의사의 형태도 다양합니다. 또한 의사는 다른 직업에 비해 안정적이고 갈등 요소도 적습니다. 보람도 크고요. 그러니 직업의 장점을 잘 살려 살리고 삶의 방향을 정해서 스스로 즐겁고 타인에게도 도움을 주는 좋은 의사가 되었으면 합니다.”





왕규창 대한민국의학한림원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2020년 2월까지 서울대학교어린이병원 소아신경외과 교수로 재직하며 ‘환자와 보호자 입장에서 진료하는 의사’로 사랑받았다. 평생 선천성 기형, 뇌종양, 수두증과 낭종 등에 대한 임상연구와 신경발생학에 대한 기초연구를 수행하며 SCI급 학술지에 350편 이상의 논문을 게재했으며, 세계소아신경외과학회장, 한국뇌신경과학회장 등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소아신경외과학 발전과 국제화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서울대학교병원 교육연구부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장 등을 지내며 의학교육 발전에도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2022년 2월 1일, 제8대 대한민국의학한림원장으로 취임했으며 국립암센터 신경외과 초빙의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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