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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대학교병원 Aug 23. 2022

국민건강의 초석을 놓다

박재갑(한국세포주연구재단 이사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서울대학교병원의 역사 담아 개발한 한글재민체

2020년 10월 9일 공개한 한글재민체에 이어 2021년 11월 1일, 국한문혼용 글꼴 '한글재민체 2.0*'을 공개했다. 이 글꼴은 대한의원개원칙서*에 사용된 글자를 기반으로 개발되었다는 점에 더해, 국민대학교 김민 교수와 함께 박재갑 교수가 주도했다는 점에서 서울대학교병원과 인연이 각별하다.


*한글재민체2.0 : 대한의원개원칙서에 쓰인 한글로부터 개발된 재민체에 표준한자 4,888자를 추가해 만든 글꼴. 박재갑 교수 이름의 '재'와 김민 교수 이름의 '민'을 따서 재민체라 지으며,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主權在民, 주권재민)'라는 의미도 담았다. '공유마당' 누리집(gongu.copyright.or.kr)에서 무료로 내려받아 사용할 수 있다.

*대한의원개원칙서 : 국가등록문화재 제449호로,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1908년 근대식 국립병원인 대한의원(서울대학교병원의 전신)의 개원일에 맞춰 의료진의 역할, 병원 건립의 의미를 담아 내린 칙서다.


“은퇴 후 서예 공부를 시작하고 나니 시계탑 건물(대한의원)에 전시되어 있던 칙서 속의 한글 글꼴이 매우 고귀하고 단아하게 보였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글꼴을 복원할 수 없을까'하는 아쉬움에 칙서를 스캔해서 여러 차례 붓글씨로 썼더니, 2000년부터 교류해온 국민대학교 김민 교수님께서 공동 개발을 제안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2020년 한글재민체에 이어 2021년 4888KS 표준 한자가 탑재된 한글재민체 2.0을 개발했고, 현재 대법원인명한자 8,279자를 모두 탑재하는 한글재민체 3.0을 개발하는 중입니다.”


한글 글꼴 권위자로 '신영복 글꼴', '윤동주 글꼴' 등을 개발한 김민 교수가 아름다운 글꼴에 끌린 것은 그리 어색하지 않지만, 박재갑 교수의 참여는 의외다. 박재갑 교수는 7천여 건 이상의 대장암 수술을 집도한 임상의사이자, 서울대학교 암연구소장, 국립암센터와 국립중앙의료원 초대 원장 등을 역임한 '국내 암 치료의 선구자'다. 국민 보건 향상과 관련해서도 그의 이름은 빠짐없이 등장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는 '천생 의학자'다.


하지만 박재갑 교수는 '의학'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테두리를 넓혔다. 2009년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해 12월에는 여러 종교들의 경전을 연구하고 토론하는 한국종교발전포럼을 시작했다. 홍익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유화와 민화, 펜화 등을 배운 후에는 전시회도 여러 차례 열었다. 한글재민체 개발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박재갑 교수는 이 모든 활동의 원동력이 '부족함 때문'이라고 말한다. 스스로 부족하다는 생각으로 주변의 권유나 상황에 그때그때 순응해온 결과라는 것이다.




낮은 자세로 꾸준히 걸어온 의사의 길

"왜 의사가 되었냐는 질문은 늘 피하고 싶습니다. '의학은 세상이 바뀌어도 배곯지 않을 기술'이라는 아버님의 뜻에 따라 의과대학에 진학했고, 졸업 후에는 한의사들과 경쟁 안 하는 일반외과(현재 외과)를 하라고 하셔서 외과에 들어왔습니다. 외과에서는 지도 교수님께서 대장암 분야를 권하시기에 대장항문외과 전문의가 되었고요. 중요한 선택의 순간, 주위의 권고를 그냥 따랐을 뿐이라서 참 겸연쩍습니다."


5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박재갑 교수는 부모님과 형님들의 이야기에 언제나 '네, 알겠습니다!'라고 답할 만큼 신뢰가 깊었다. 의과대학 진학할 때도 그랬다. 부모님께서 "배곯지 않으려면"을 강조하셨기에, 그에게는 애초부터 위대한 사람이 되거나 뛰어난 성과를 내겠다는 욕심이 없었다. 8살 차이 나는 큰형님의 역할도 켰다. 앞서 의사가 된 큰형님은 "의사가 천재일 필요는 없다. 꾸준함이 중요하니까 너도 의사가 될 수 있다"라며 박재갑 교수를 북돋웠다. 첫 입시에 실패한 후 재수를 할 때 큰형님이 건넨 말은 삶의 자세로 자리잡았다.


"큰형님은 오히려 잘 됐다고 하셨습니다. 1년 늦는 건 나중에 보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경기고등학교를 다닌 걸로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지 말고 1년 동안 '인간 공부'를 하라고요. 그 말씀이 사는 내내 도움이 됐습니다. 교수로 임용됐을 때도, 이후 다양한 자리를 맡을 때도 스스로 잘난 사람이 아니기에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게 됐기 때문입니다."


의과대학 진학 후 박재갑 교수는 고향인 청주보다 더 작은 변두리에 병원을 열어 지역민들의 건강을 살피라는 큰형님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미국에서 의사를 하고 있던 큰형님은 의료도구를 챙겨 보내며 그를 지지했다. 그런데 개원 준비를 하려던 찰나, 지도 교수님으로부터 서울대학교병원 교수로 남으라는 연락이 왔다. 평소 성정 그대로 "네, 알겠습니다!"했지만 고민이 시작됐다. 당시에 대해 박재갑 교수는 "지도 교수님께서 능력도 없던 저를 교수로 만들어 주셨으니, '저런 친구가 무슨 교수냐?'라는 소리는 듣지 않게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라고 회상한다.



K-바이오산업을 뒷받침하는 힘, 한국세포주은행 설립

부담감 속에 '신임 교수 워크숍'에 참여한 박재갑 교수는 "이것저것 하지 말고 하나라도 제대로 하라"라는 의과대학 학장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겼다. 이후 눈과 귀를 열고 고심한 끝에, '세포주* 개발'이라는 연구 주제도 찾게 되었다.


*세포주 : 생체 밖에서 계속적으로 배양 가능한 세포집합. 세포주들은 다세포 생물의 분자생물학, 세포학, 생화학연구에 널리 사용되는 등 생명과학 관련 연구에 필수적이다.


"1982년 지도 교수님께서 암 환자의 면역력 관련 실험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실험에는 세포주가 필요했는데, 당시까지 한국에서 개발된 세포주가 하나도 없었어요. 수입에 의존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인에서 자주 발생하는 질환 연구를 위해 한국인유래 세포주를 개발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국내 최초 시도라 지도해 줄 사람이 없었던 탓에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습니다. 그래도 저처럼 부족한 사람이 교수가 됐으니 뭐든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매달렸죠.”


큰형님이 의사의 덕목으로 꼽았던 '꾸준함' 그대로, 박재갑 교수는 차근차근 한국인 유래 세포주 개발을 가시화했다. 그 결과 1984년 한국인 위암 세포주 SNU-1과 한국인 대장암 세포주 5종 수립에 성공했고, 2년 간의 해외 연수를 끝내고 귀국한 1987년부터는 SNU세포주 분양을 시작하며 한국세포주은행*의 정식 업무를 시작했다. 이어 1991년에는 공익재단인 한국세포주연구재단 법인설립 허가를 받았고, 1993년 8월 세계지적재산권기구상(WIPO)의 국제특허미생물기탁기관에 지정됐다.


*한국세포주은행 : 박재갑 교수 주도로 1982년 한국인유래 세포주 개발을 시작한 이후, 다양한 조직에서 기원한 800여 종류의 세포주들을 수립했다. 그중 한국인 위암 세포주, 대장암 세포주, 간암세포주 등 다수는 국외 학술지에 보고됨으로써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현재 전세계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2022년 현재 한국세포주은행은 세포주 자원 규모와 연구 업적 전체를 아울러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기관으로 우뚝 서며, 대한민국 바이오산업 발전을 든든히 뒷받침하고 있다.




의사로서 가장 행복한 일은 암 조기 발견과 치료 토대 만든것

암 정복연구사업, 전국민 대상 국가암검진 사업을 이끌게 된 배경도 스스로 말하는 '부족함'에 닿아 있다. 쉰 살이 채 되지 않은 1995년 서울대학교 암연구소장으로 발령을 받은 박재갑 교수는 암연구소에 도움이 될 만한 일부터 찾아 나섰다. 존경하는 분들이 역임했던 자리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먼저 그는 삼성그룹으로부터 300억 원(현재 3천억 원 추산)을 후원받아 서울대학교 암연구소 삼성암연구동을 건립했다. 다음으로, 국내 암 연구비의 전체 파이를 키워 암연구소 교수들의 연구비를 확보하겠다는 생각으로 '암정복 10개년 계획'을 보건복지부에 제안하고 입안하게 만들었다. 그 혜택은 연구진들은 물론 국민 전체에게 돌아갔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암 정복연구사업과 전국민 대상 국가암검진사업이 그 일환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의사로서는 저는 7천 여명의 대장암 수술을 한데 불과하지만, 2000년 이후 시작된 국가암검진은 수많은 분들이 암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제가 그것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합니다. 그러니, 이 이상 무슨 욕심이 나겠습니까?"


이외에 국립암센터 원장 재직 중 시작한 금연운동*, 국립중앙의료원장 시절 추진한 '운출생운(운동화 출근 생활 속 걷기 운동)'의 목표도 한결같다. '국민이 암과 여러 질병으로 돌아가시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렇듯 수많은 일들을 이뤄내고도 박재갑 교수는 "그때그때 환경이나 만나는 사람에 따라 정해지는 대로 왔을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후학들을 위한 당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금연운동 : 한국담배제조및매매금지추진운동본부 대표로, 지상파 방송 3사와 주요 12개 언론사 지면에서 흡연 장면을 퇴출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길이 있고, 어느 길이든 잘 걸어가면 다 좋은 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그동안 공부하며 만들어 놓은 용어들을 설명하며 끝낼까 합니다. 2009년 9월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에 입학하여 2017년 철학박사 학위를 받을 때 제출한 논문의 핵심 내용은 '하늘과 물질이 애초에 사이가 없이 하나다(天物無間, 천물무간)*'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 현재까지 정리한 저의 생각은 서울대병원 매거진 <V.O.M> 34호에 처음 발표하는 '하늘, 땅, 인간은 서로 살리는 것을 본질로 한다(天地人相生心, 천지인상생심)*'입니다."


*천물무간 : 『유학의 천인관天人觀에 관한 연구』, 박재갑, 성균관대학교, 2017

*천지인상생심 : 박재갑, 서울대학교병원 매거진 <V.O.M> 34호, 2022




박재갑(한국세포주연구재단 이사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2013년 2월까지 서울대학교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로 재직했고 서울대학교 암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2000년부터 2006년 초대 및 2대 국립암센터 원장을, 2010년부터 2011년까지 국립중앙의료원 원장 겸 이사회 의장을 맡았으며 1987년 한국세포주은행(KCLB, Korean Cell Line Bank)을 설립해 국내 생명과학 및 바이오산업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암정복 10개년 계획'을 보건복지부에 제안하고 입안해 현재의 '국가5대 암검진 프로그램' 도입을 주도했으며, 흡연의 폐해를 널리 알리는 활동을 활발히 펼쳐왔다. 2001년 황조근정훈장, 2005년 세계금연의 날 WHO 금연 공로상, 2018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을 수훈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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