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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대학교병원 Aug 16. 2022

오늘의 데이트 코스는 '해부 관람'?

서울대학교병원 피지영

신작이 나왔다는데오늘은 영화보러 갈까?”


무수히 많은 놀거리가 있다지만 여전히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에서 빠질 수 없는 극장다정히 손을 잡고 재미있는 영상에 몰입하다 보면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난다그러면 지금 같은 미디어가 없던 옛날 연인들에게는 어떤 유흥이 있었을까?


중세부터 근대까지는 교회가 이를 대신했다교회에서 연애질이라니아니다당시 교회는 온갖 화려하고 진귀한 구경거리였다신과 성인들의 그림과 조각천상의 소리라고 하는 파이프 오르간 연주특히 고딕 성당을 대표하는 스테인드 글라스는 햇빛이 구름 사이를 들락날락 하면서 빚어내는 무수한 총천연색 빛의 향연으로 오늘날 영화관 못지 않았다교회는 연인들뿐만 아니라 그 지역 주민들에게 안식처이자 엔터테인먼트 복합공간이었다르네상스 시대 그림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최후의 심판]과 천장화로 유명한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안에는 무려 1,000명 가까운 인물들이 그려져 있다언제와도 그곳에 그려진 인물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희노애락에 흠뻑 빠질 수 있다.


물론 오늘날과 같은 극장도 있었다그리스 시대부터 이어 온 연극 공연장은 물론 바로크 시대부터 시작한 오페라 극장도 무수히 많았다그러나 절대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극장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해부학 극장이다용어부터 섬뜩하다. 극장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관람한다는 이야기인데, 의대에서만 하는 해부학이라니...?


[그로스 박사의 클리닉] 토마스 에킨스, 1875.


그랬다. 17,8세기 네덜란드에서는 해부 시연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했다객석이 있고 입장료도 받았다저녁 식사를 마친 가족들과 데이트하는 연인들이 재미를 위해 해부학 실습을 관람했다지금의 공연장처럼이름도 ‘Anatomy theatre’, 즉 해부학 극장이다.


[해부학극장] 바르톨로뮈스 돌렌도, 1609.


인류 역사상 최초의 시민 사회를 이룩했던 네덜란드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실용적이다신과 종교보다는 과학과 이성적 사고가 그들에게는 훨씬 더 가치있는 일이었다해부학 관람은 네덜란드 시민들에게 교양을 쌓는 즐거운’ 이벤트였다.


물론 이것 때문만은 아니다그들에게는 길드(Guild)’란 조합이 있었다궁수, 선원경찰 등등 전문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를 구성했다잘 조직된 단체는 으레 그들의 부와 명예를 과시하고 싶었을 터오늘날 큰 회사와 단체의 건물 로비에 대형 사진을 걸어두는 것과 같이 그들의 모습이 담긴 그림을 큼지막하게 전시했다. 아래가 단체초상화다단체초상화는 16세기 르네상스 때부터 특히 북유럽에서 유행했다.


[빌렘 반데르 미어 박사의 해부학수업] 미키엘 얀즈 반 미레벨트, 1617.


해부학 그림 속 사람들 역시 길드의 소속 회원들이다외과의사일 수도 있고당시 외과 수술을 했던 이발사들의 단체초상화이기도 하다여러 길드들은 자신들의 단체 초상화를 유명한 화가에게 의뢰했고, 이는 화가들의 주요 돈벌이였다이때 그림의 주요 원칙 중 하나는 길드 구성원들의 얼굴을 잘 알아볼 수 있도록 해야 했다누구라도 하나 빠질 수 없고 소홀히 할 수 없었다그림들이 다소 부자연스러운 이유는 그림의 포커스가 해부학 행위가 아닌 회원들의 얼굴이기 때문이다르네상스 때부터 바로크 초창기까지 약 100년 간 이런 구성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떠오르는 화가 렘브란트는 이런 단체사진같은 밋밋한 그림은 성에 차지 않았다죽어있는 그림이라고 생각했다뭔가 역동적이고 살아 움직이며지금 눈 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해부학 수업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나타내고 싶었다. 1632년에 완성한 단체초상화 [퇼프 교수의 해부학 강의]는 렘브란트를 네덜란드 최고의 화가라는 명성을 안겨주었다.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교실] 렘브란트, 1632.


렘브란트의 장기는 빛을 이용한 극명한 명암 구성이다이 그림에서도 해부학이 진행되고 있는 시신에 하이라이트를 주어 관람자의 시선을 한 번에 이끌고 있다다른 해부학 그림에서 대부분 복부를 절개한 것과 달리 해부학 원칙인 상지-하지-복부...’의 원칙에 따라 팔부터 해부하는 철저한 리얼리즘도 잘 살렸다.

그럼에도 단체초상화이니 집도의인 퇼프 박사뿐 아니라 회원들의 얼굴도 균일하게 넣어야 했다살아있는 그림이었건만 길드의 요구당시 관습은 무시할 수 없었다찬사를 받았지만 그에 만족할 렘브란트가 아니었다그로부터 10년 후 대()화가가 된 렘브란트는 단체초상화에 새로운 획을 긋는다.


[야간 순찰] 렘브란트, 1642.


서양미술 3대 명화라 일컬어지기도 하는 [야간 순찰]이다화승총 부대 길드의 단체초상화로 출동하기 직전의 모습이다렘브란트는 명암을 통해 생동감을 살려냈다대원들의 얼굴과 몸의 크기도 다르게 했다물론 포즈도 제각각이다덕분에 살아있는 그림이 됐다바로크 회화의 특징이 드디어 단체초상화에도 도입됐다기념사진이 아닌 제대로 된 예술작품이 된 것이다.


최고의 걸작을 만들어냈지만 그림을 주문한 길드의 반응은 싸늘했다는 얘기가 있다. “우리 똑같이 100길더씩 내지 않았어난 왜 작게 그렸지?”, “아니나는 반쪽밖에 나오지 않았는걸.”, “그래도 자네는 낫지난 코와 눈 하나만 겨우 보인다고.” 그들에게 그림의 구도와 주제활력은 관심사가 아니었다그림 속 자신의 크기가 중요했다이후 길드들이 단체초상화를 의뢰하지 않아 렘브란트가 몰락했다고 하지만 정확한 근거는 없다.


[사람 몸 구조에 관하여] 안드레아 베살리우스, 1543.


근대 해부학의 창시자는 네덜란드의 이웃나라인 벨기에에서 태어난 베살리우스다그는 파도바 대학 교수로 있던 28세에 [사람 몸 구조에 관하여]를 출간했다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랬던 것처럼 그는 뛰어난 그림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663페이지 분량의 이 책에는 베살리우스가 그린 300여 개의 인체가 묘사되어 있다. 5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지금도 여전히 의과대학에서는 베살리우스가 묘사한 그림을 보고 익히고 있다.

서울의대 해부학교실 최형진 교수는 의대생 시절 첫 해부학 실습에서, 시신과 1대1로 직면하며 시선을 마주했을 때의 떨림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해부학 실습은 의대생이 의사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첫 환자(first patient)'"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렇기 때문에 해부학 수업에 앞서 시신을 기증한 고인의 숭고한 뜻과 희생을 기린다. 어쩌면 렘브란트의 그림 속 해부학 교본이 된 범죄자는 자기 몸을 내주는 선택을 통해 그의 죄를 속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최 교수는 "해부학은 의대의 모든 학문의 근간이 되는 학문이다. 세부적인 분야에서 눈부시게 의학이 발전하고 있지만 그 본질은 해부학이 설명하는 '사람의 몸'이다. 고대의 히포크라테스부터 지금의 의사들에 이르기까지 해부학 연구가 끊임없이 이어졌던 이유다"라고 중요성을 설명했다. 




글: 서울대병원 피지영
우연히 서울미술 온라인 강의를 듣고 서양미술의 매력에 빠졌으며, 현재 서양미술 도슨트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유럽미술여행」, 「영달동 미술관」, 「B급 세계사 3: 서양 미술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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