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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대학교병원 Jan 30. 2023

보전하며 지키고 완전히 바꾸어 새롭게 하다

최홍윤 핵의학과 교수

writer. 최주연  photo. 황필주(Studio79)


2021년, MIT 테크놀로지 리뷰 선정 ‘35세 미만 최고 혁신가’에 13명의 한국인이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서울대학교병원 핵의학과 최홍윤 교수도 그중 한 사람이다. 질병 정복을 위해 도전해온 서울대학교병원의 역할을 생각하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최홍윤 교수는 의학자로서는 혁신하되 환자를 진료하는 임상의사로서는 관측과 측정에서 얻은 법칙을 따르기 위해 노력한다.


“핵의학은 의학 분야의 플랫폼 기술”

핵의학(Nuclear Medicine)은 방사성동위원소와 방사성의약품을 사용해 인체의 상태와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분야다. 1913년 두 사람의 헝가리 화학자*가 방사성 추적자를 이용한 실험법을 개발한 이래 방사약학, 핵물리학, 방사선생물학 등의 학문과 융합하며 급속도로 발전해 왔다. 현재는 세포 또는 유전자 수준의 정보를 파악해 개인별 맞춤형 치료를 완성하는 분자영상, 암세포의 특정 표적에 붙는 물질에 방사성동위원소를 붙여 선택적으로 암세포를 파괴하는 PRRT(Peptide Receptor Radionuclide Therapy, 펩타이드 수용체 방사성 핵종 치료) 등에 도달했다. 국내에서는 서울대학교병원이 1959년 갑상선기능항진증 치료를 위해 131I(Iodin-131, 요오드 131)를 투여한 이래 1960년 동위원소진료실을 개설하며 핵의학 성장을 주도했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핵의학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최홍윤 교수가 이토록 낯선 핵의학 분야에 끌린 까닭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조지 헤베시(George Hevesy)와 프릿츠 판네스(Fritz Paneth)의 방사성 추적자(Radioactive Tracer) 실험법은 실패로 끝났으나 이를 통해 방사성 납을 화학적, 생물학적 성질의 추적자로 사용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오늘날 핵의학적 검사는 ‘방사성 원소는 그 원소의 생화학적 성질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라는 조지 헤베시의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의대생 시절 핵의학 강의에서 접한 ‘분자영상기술’이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당시 분자영상기술은 질병 세포를 추적해 보여주고 선택적으로 치료하는 단계였는데요. 언젠가는 아주 미세한 로봇을 인체에 넣어 질병 세포만을 파괴할 수 있게 되겠다는 상상을 하게 됐습니다. 최근 PRRT, 일명 ‘방사선 미사일 치료’가 활발히 쓰이고 있으니 상상이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저는 ‘핵의학은 의학 분야의 얼리어답터(Early-adopter)’라고 말하곤 합니다.”


진로 결정에는 다양한 질병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는 점과 꾸준히 변화할 수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이후 10여 년, 임상진료에 더해 핵의학영상검사 결과를 판독하고, 변화하는 핵의학 동향에 발맞추느라 집에 가기조차 어려웠던 날들도 많았지만 최홍윤 교수는 이 모든 것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다. 핵의학은 의학 전반에 걸쳐 보다 나은 진료방향을 제시하는 플랫폼 역할을 해야 한다는 신념 덕분이다. 그리고 2019년 국내 표적치료제 주사로 국내 첫 환자를 치료한 데 이어, 2021년에는 MIT 테크놀로지 리뷰의 ‘35세 미만 최고 혁신가’에 선정됐다. 핵의학 및 뇌영상 분야에서 인공지능(AI)을 접목한 최초의 사례에 힘입은 결과다.


의대생 시절 핵의학 강의에서 접한 ‘분자영상기술’이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언젠가는 아주 미세한 로봇을 인체에 넣어 질병 세포만을 파괴할 수 있게 되겠다는 상상을 했는데,  ‘방사선 미사일 치료’가 활발히 쓰이는 걸 보며 상상이 현실로 이루어진 듯합니다. 그래서 저는 ‘핵의학은 의학 분야의 얼리어답터(Early-adopter)’라고 말하곤 합니다.


핵의학과 뇌영상에 인공지능 접목하며 미래의학에 다가서다

“2015년 경에 딥러닝 기술을 처음으로 접하면서 이를 핵의학과 연결하면 폭발적인 결과가 나올 것 같아 발 빠르게 공부하고 적용해 봤습니다. 치매 진단에 활용하는 뇌 PET에 딥러닝을 접목해 알츠하이머 치매 감별에 활용한 것인데요. 요즘은 일반화됐지만 당시로서는 새로운 접근법으로 주목받아 2017년, MIT 테크놀로지 리뷰 Top Story로 소개되었습니다. 이런 성과 덕분에 최고 혁신가로 선정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대단한 것을 이루지 못했으니 더욱 책임감을 갖고 정진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실제로 최홍윤 교수는 고등학교 때 ‘국제물리올림피아드’에서 수상을 할 정도로 물리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학문의 기본 원리에 접근해 새로운 것을 만들려는 의욕이 의학과 맞물리자, 말 그대로 ‘폭발적인’ 효과가 발생했다. 의학과 첨단 기술 융합을 향한 그의 도전은 2021년 7월, 바이오 스타트업인 포트래이(Portai) 공동 창업으로 이어졌다. 신기술을 통한 신약 개발의 과정 자체를 바꾸기 위해서다. 포트래이에서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고 있는 최홍윤 교수는 “획기적인 치료법과 신약을 찾으려면 가설을 하나씩 검증하는 기존 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대규모의 데이터를 생산할 수 있는 오믹스(Omics) 기술의 발달로, 세포 수준에서 모든 유전자 정보를 얻고 지도처럼 펼쳐내는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포트래이가 공간전사체에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간전사체는 질병 조직을 기반으로 전체 유전자 발현을 고해상의 지도처럼 만들어내는 최신 기술로, 2~3만 가지 유전자를 한꺼번에 관찰해 어떤 유전자가 어떤 질병에 관여하는지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최홍윤 교수의 목표는 공간전사체를 통해 얻은 대규모 데이터를 인공지능으로 해석해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 특히 핵의학 분야에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드는 것이다. 창업 첫 해, 포트래이가 신약 타깃 분석 약물 분포 추적 약물기전 검증 동반진단 등 4개의 솔루션을 구축해 첫 매출을 낸 것도 괄목할 만한 성과다. 포트래이를 설립하며 그가 세운 목표가 이루어질 날이 한층 가까워질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진료의 맥락을 파악하는 의사, 인류 건강을 위해 혁신하는 의학자

포트래이에 집중하는 사이, 의사 역할의 비중은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최홍윤 교수는 “연구는 더 의미 있는 의사가 되기 위한 과정”이라고 답했다. 여기에서 의미 있는 의사는 진료의 전체 맥락에서 검사하고 결과를 도출하며 진료에 참여하는 의사다. 사실 핵의학과 의사는 검사를 할 때 간접적으로 환자를 만나거나 핵의학 치료가 꼭 필요한 경우에만 환자를 마주한다. 최홍윤 교수가 가장 경계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검사 결과지에만 집중하다 보면 우리가 검사하는 대상이 ‘사람’이라는 것을 놓치기 쉽습니다. 환자에게 핵의학 검사나 치료가 필요한 결정적인 이유도 망각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제가 하는 판단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저는 ‘내 가족의 검사라면 더 열심히 보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놓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특히 서울대학교병원에는 흔치 않은 문제를 가진 환자가 많은 만큼, 환자에게 최적화된 체계를 고안해 검사하고 그 결과에 근거해 환자를 위한 최선의 치료가 무엇인지도 생각해봅니다.”


의사인 동시에 의사과학자로서 힘차게 나아가고 있지만, 최홍윤 교수는 둘 사이의 선을 넘지 않기 위해 힘쓴다. ‘혁신하는 창의적인 의학자’가 되겠다는 의욕이 임상현장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묻자 한결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진료실에서 환자를 마주하는 의사는 선대에서 수십 년간 쌓아온 경험에 따라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창의와 혁신은 의사와는 상관없는 덕목이고 윤리적으로도 옳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가지는 의학자에게 꼭 필요합니다. ‘의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항상 새로움을 추구해야 인류를 위협하는 질병에 대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친절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의학자로서 하고 싶은 일과 의사로서 해야 하는 일 사이의 경계를 지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명확한 경계를 넘나들며 최홍윤 교수가 만들어낼 것이 미래의학의 최첨단, 인류 건강을 위한 큰 그림의 일부가 되리라는 것은 틀림 없다.




최홍윤 핵의학과 교수

핵의학이 다양한 질환의 검사와 치료에 쓰임으로써 의학 분야의 플랫폼 역할을 확대해가는 데 기여하고 싶은 의사이자 의학자. 지치고 힘들 때면 ‘과연 오늘 내가 한 행동이 환자들을 위해, 인류의 건강이라는 더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 옳은가’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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