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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대학교병원 Jul 05. 2022

유전체 분석으로 미래 의학의 방향을 제시하다

서울대학교병원 임상유전체의학과

writer. 최주연  photo. 황필주(Studio79)


요즘 진료실에서는 “가족 중에 비슷한 증상을 가진 분들이 여러 명 있는데 저도 같은 병을 가지고 있는 걸까요?” 혹은 “아이에게 병이 유전되지는 않을까요?”와 같은 질문이 자주 등장한다. 의료진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 있어 ‘유전체’가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많이 알려진 덕분이다. 이에 세계 유수의 병원에서는 한발 앞서 유전의학과를 개설해 유전 관련 질환 맞춤형 진료를 제공해왔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유전체의학을 통합적으로 다루는 진료과는 서울대학교병원 임상유전체의학과가 유일하다.



서울대학교병원은 뛰어난 역량으로 진단, 치료 분야를 선도해왔습니다. 여기에, 유전체 데이터 분석이 결합되면서 더욱더 ‘신속하고 정밀한 진단’을 할 수 있게 됐어요. 기존 지식으로는 알 수 없었던 다양한 기전들을 밝혀냄으로써 치료 방침 결정, 중증도 완화, 나아가 질병 예방으로 가는 세밀한 지식에 집중하게 된 것입니다.

- 채종희 서울대학교병원 임상유전체의학과 교수·희귀질환센터장



철저한 준비, 의료진의 열정, 환자의 관심으로 만든 첫 걸음

희귀질환을 앓는 아이를 둔 부부는 다음 임신을 망설인다. 둘째 아이 역시 같은 질병을 가지고 태어날 가능성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암이 진행하여 수술 불가 판정을 받거나 기존 항암치료에 실패한 환자는 절망하게 된다. 이처럼 질병과 관련된 수많은 사례에서 ‘불확실성’은 ‘불가능성’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빅데이터에 기반한 정밀의료 및 유전체의학의 발전은 불확실성의 영역에 있던 것들을 가능성의 영역으로 옮겨 놓고 있다.


질병의 원인을 정밀하게 밝혀 치료법을 찾는 것은 물론, 다음 세대를 위한 계획까지 세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환자 및 대조군의 대규모 유전체 데이터, 축적된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관리할 전문가, 분석한 데이터를 환자의 치료에 적용할 임상의사 등 수많은 인력과 자원이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서울대학교병원에 임상유전체의학과가 개설되기까지는 15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실제로 서울대학교병원은 2007년부터 희귀질환, 암 정밀의료, 만성질환 유전체 등에 대한 연구사업단을 운영하며 유전체 데이터를 축적했고, 규제 및 윤리적인 문제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만들었다. 2017년에는 정밀의료센터를 개소해 원내 다양한 진료과에 정밀의료를 접목시키며 치료 프로세스 확립에 집중했다. 때마침 정밀의료를 적용해 치료법을 찾았다는 해외 사례들이 공유되면서 환자들의 관심도 점점 더 커졌다.


이에 서울대학교병원은 기존의 정밀의료센터와 희귀질환센터를 통합해 임상유전체의학과를 신설하기로 결정했다. 철저한 준비와 의료진의 열정, 환자들의 관심이 ‘미래 의학’을 향한 새로운 길을 연 것이다.



의학과 과학의 융복합으로 실현한 ‘빈틈없는 진료’

이후 임상유전체의학과는 임시 외래 운영을 거쳐 2021년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외래 진료를 시작했다. 임상유전체의학과 채종희 교수는 “국내 최초의 시도라 환자들이 많이 찾아 오실까 싶은 걱정이 있었다”라며 당시를 회상한다. 하지만 환자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채종희 교수를 찾는 환자만 해도 10개월 동안 4배 가까이 늘었다. 그 배경으로 채종희 교수는 ‘빈틈없는 진료’를 꼽는다.


“건강한 자녀 출산을 희망하는 유전성 희귀질환 환자가 내원하면, 임상유전체의학과의 의료진이 유전체 분석의 필요성부터 유전체와 질병 사이의 연관성, 예후, 자녀에게 유전될 확률 등을 자세하게 환자에게 설명합니다. 임신의 위험성이나 임신 중 확인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는 산부인과 의료진이, 그리고 매우 다양한 증상을 보이는 희귀질환은 어린이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각 질환의 경험 있는 전문 의료진들의 협력하며 환자를 진료합니다. 이렇게 각 분야의 의료진들이 생애 전체를 확인하며 빈틈을 채워 나가니 환자들은 한결 안심하시더군요.”


이렇듯 ‘빈틈없는 진료’를 하려면 정확한 유전체 분석을 통한 정확한 진단이 뒷받침돼야 한다. 임상유전체의학과 구성원 중 3명의 데이터 전문가가 포함된 이유다. 컴퓨터과학과 생물정보학 등을 전공한 세 사람은 유전체 분석을 위한 알고리즘과 이에 기반한 시스템 (소프트웨어와 분석 서버 플랫폼) 개발 및 구축, 그리고 실제 데이터 분석을 담당하고 있다. 그중 이성영 교수가 유전체 데이터 분석 과정과 의의를 설명했다.


“임상에 적용될 환자의 데이터를 다루는 저희들은 우선 환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오류를 발견하고 제거합니다. 그 후, 방대한 환자 데이터로부터 진단, 치료, 예후와 관계된 의미 있는 정보 즉, 유전자 돌연변이들을 검출하고, 의료진들이 쉽고 빠르게 검토할 수 있도록 정제된 보고서를 만듭니다.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의료진들이 모여 임상적 관점에서 활발히 회의와 토론을 진행하여 최적의 환자 치료를 결정할 수 있도록 여러 도움을 드리고 있습니다.”



의학 데이터를 다루며 병원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서울대학교병원에 저와 같은 데이터 전문가가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아쉽습니다. 각 진료과를 비롯해 원내에 계신 모든 분들과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 유전체 데이터 분석과 관련해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임상유전체의학과와 정밀의료센터의 문을 두드려 주세요.

- 이성영 서울대학교병원 임상유전체의학과 교수



‘병원을 위한 병원’을 위한 꿈

임상유전체의학과에서는 암과 희귀질환, 만성질환을 주로 다룬다. 해당 질병들이 위중하기도 하지만 유전체 데이터가 가장 많이 쌓인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단과 치료는 물론 예방까지 아우르는 진정한 의미의 정밀의료를 실현하려면 더 많은 진료과와 협업해야 한다. 채종희 교수가 “서울대학교병원 내 모든 진료과의 파트너가 되겠다”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기존 진단법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특이한 현상이 나타날 때, 기존의 일반적인 치료 방침으로도 해결이 안 될 때 ‘유전체 분석’을 떠올려 달라는 당부다. 그 과정에서 각 분야의 의료진들이 유전체 의학의 효용성을 경험하며 치료 방식을 고도화한다면 병원 전체의 진료 역량 또한 높아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올 연말 오픈 예정인 ‘SNUH 바이오포털’의 역할은 더 광범위하다. SNUH 바이오포털은 임상 정보와 연계된 유전체 데이터를 한데 모으는 ‘정밀의료 지식은행’이다. 1차적으로는 서울대학교병원 본원을 시작으로 서울대학교병원 네트워크 병원들의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쌓는 것이 목표다. 여기에 더해 국내 의료기관이나 연구자들 나아가 환자들의 정보까지 통합할 경우, 그 영향력은 상상이상으로 막강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그 지점에 도달하기까지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임상 데이터와 함께 유전체 데이터를 방대하게 쌓고 분석하고 통합하여 지식화하려면 분야별 전문가와 안정된 시스템 등 많은 인적・물적 자원이 투입돼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진 정보가 많아지고 이를 바탕으로 도출한 의미 있는 연구결과들을 임상에 적용해 의학의 패러다임을 바꾼다면 서울대학교병원은 ‘병원 중의 병원’에서 ‘병원을 위한 병원’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국내는 물론 세계 유수의 의료기관들이 우리의 데이터와 성과를 공유하고 싶어 할 테니까요. 서울대학교병원 임상유전체의학과는 넓고 깊은 시야로 미래를 바라보며 전 세계의 환자를 위해 앞으로 걸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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