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의학교실 주임교수
MRI, PET-CT, 차세대염기서열분석기 등 다양한 진단 기기를 탄생시킨 것은 과학기술만이 아니다. 환자의 몸을 보다 정확하게 관찰하려는 의사의 마음이 더해진 결과다.
의사의 진단이란 환자를 다양한 방법으로 관찰하여 정보를 얻어내 질병의 유무를 판단하고 병의 원인과 치료 방법을 찾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의사는 진단을 위해 오감(五感)을 동원하여 환자의 상처를 확인하고 얼굴색을 살피며, 맥박을 재고, 환자의 말을 청취한다. 이러한 행위는 가장 기본적이면서 오래된 진단법이라 할 수 있다.
진단의 역사에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진단법은 소변 검사이다. 소변 검사에 대한 기록은 고대 바빌론을 시작으로 기원전 4세기 경의 그리스 기록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로마시대의 유명한 의사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는 소변을 체액 또는 혈액에서 걸러져 나온 것으로 이해했다. 때문에 소변의 상태를 보고 그 사람의 건강을 파악해 나갔다. 중세 유럽의 의사들은 환자의 소변을 투명한 병에 담아서 소변색에 따른 질병을 알려주는 소변 색깔표(그림2)와 비교하는 한편, 소변의 온도와 농도, 불순물의 여부를 살펴서 환자의 질병을 판단했다.
한편 동양의학에서는 환자의 목소리, 숨소리 등을 들어보는 문진(聞診), 심장박동의 빠르기와 강약을 파악하는 진맥(診脈) 등 널리 알려진 특유의 진단법을 적용해왔다.
보다 전문화된 진단법의 발전은 18세기 이후 유럽에서 이루어진다. 오스트리아 의사 아우엔브루거(Joseph Auenbrugger, 1722~ 1809)는 1761년에 출판한 책을 통해 폐를 진단하는 타진법을 제안했다. 환자의 가슴을 두드려보아서 맑은 소리가 들린다면 건강한 폐이며, 탁한 소리가 들리면 폐 안에 액체가 들어있는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의사 라에넥(René Laënnec, 1781~1826)은 청진기를 개발하고 그 사용법을 세상에 알렸다. 이전까지 그는 환자의 심장 소리나 숨 쉬는 소리를 들어보려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느꼈다. 환자의 몸에 자신의 귀를 가져다 대는 것은 예의에도 어긋나고, 위생상으로도 문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에 라에넥은 나무를 원통 모양으로 깎아서 만든 도구를 개발했다.
이것이 최초의 청진기이다. 단단한 매질(나무)을 통하니 맨 귀로 들을 때보다 소리도 더 잘 들렸다. 라에넥은 수년간 청진기로 청취한 심장과 폐 등 몸 안에서 나는 여러 소리들을 정리하고 해부학적 지식을 통해 각 소리의 원인을 해석했다. 1819년에는 그 결과물을 정리하여 책으로 출판했고 의사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청진기의 사용이 확산되었다.
이렇게 청진기는 도구를 통해 환자의 몸을 진단하는 최초의 진단 기구라 할 수 있다. 보고, 듣고, 만져보는 등 오감으로 알 수 있는 너머의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점이 진단의 역사에서 청진기가 가지는 의의라 할 수 있다.
청진기 이후 19세기에는 다양한 진단 기기들이 등장한다. 체온계, 혈압계, 심전도계 등 생체정보를 측정하는 기기들이 그러하다. 한편으로는 후두경, 요도경처럼 내시경과 엑스선처럼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몸 안을 진단할 수 있는 기기들도 등장했다. 환자의 몸을 보다 정확하게 관찰하려는 의사의 마음과 과학기술이 더해져서 이루어낸 진단 기술의 발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