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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대학교병원 Jul 05. 2022

진단의 기예에서 진단의 과학으로

김옥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의학교실 주임교수

MRI, PET-CT, 차세대염기서열분석기 등 다양한 진단 기기를 탄생시킨 것은 과학기술만이 아니다. 환자의 몸을 보다 정확하게 관찰하려는 의사의 마음이 더해진 결과다.


두 귀를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양귀형 청진기. 소리를 모으는 벨과 귀에 꼽는 플러그는 상아로, 소리를 전달하는 관은 유연한 고무로 만들었다. 1800년대 후반에 등장했다.


환자의 이야기와 의사의 오감에 의존한 초기 진단법

의사의 진단이란 환자를 다양한 방법으로 관찰하여 정보를 얻어내 질병의 유무를 판단하고 병의 원인과 치료 방법을 찾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의사는 진단을 위해 오감(五感)을 동원하여 환자의 상처를 확인하고 얼굴색을 살피며, 맥박을 재고, 환자의 말을 청취한다. 이러한 행위는 가장 기본적이면서 오래된 진단법이라 할 수 있다.


진단의 역사에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진단법은 소변 검사이다. 소변 검사에 대한 기록은 고대 바빌론을 시작으로 기원전 4세기 경의 그리스 기록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로마시대의 유명한 의사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는 소변을 체액 또는 혈액에서 걸러져 나온 것으로 이해했다. 때문에 소변의 상태를 보고 그 사람의 건강을 파악해 나갔다. 중세 유럽의 의사들은 환자의 소변을 투명한 병에 담아서 소변색에 따른 질병을 알려주는 소변 색깔표(그림2)와 비교하는 한편, 소변의 온도와 농도, 불순물의 여부를 살펴서 환자의 질병을 판단했다.


한편 동양의학에서는 환자의 목소리, 숨소리 등을 들어보는 문진(聞診), 심장박동의 빠르기와 강약을 파악하는 진맥(診脈) 등 널리 알려진 특유의 진단법을 적용해왔다.


16세기경 유럽에서 쓰인 소변색깔표. 소변 색깔에 따른 질병이 정리되어 있다. 중세 유럽의 의사는 환자의 소변 색깔을 이 표와 비교하면서 질병을 진단했다.


청진기 개발부터 소리의 원인 분석까지

보다 전문화된 진단법의 발전은 18세기 이후 유럽에서 이루어진다. 오스트리아 의사 아우엔브루거(Joseph Auenbrugger, 1722~ 1809)는 1761년에 출판한 책을 통해 폐를 진단하는 타진법을 제안했다. 환자의 가슴을 두드려보아서 맑은 소리가 들린다면 건강한 폐이며, 탁한 소리가 들리면 폐 안에 액체가 들어있는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의사 라에넥(René Laënnec, 1781~1826)은 청진기를 개발하고 그 사용법을 세상에 알렸다. 이전까지 그는 환자의 심장 소리나 숨 쉬는 소리를 들어보려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느꼈다. 환자의 몸에 자신의 귀를 가져다 대는 것은 예의에도 어긋나고, 위생상으로도 문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에 라에넥은 나무를 원통 모양으로 깎아서 만든 도구를 개발했다.


이것이 최초의 청진기이다. 단단한 매질(나무)을 통하니 맨 귀로 들을 때보다 소리도 더 잘 들렸다. 라에넥은 수년간 청진기로 청취한 심장과 폐 등 몸 안에서 나는 여러 소리들을 정리하고 해부학적 지식을 통해 각 소리의 원인을 해석했다. 1819년에는 그 결과물을 정리하여 책으로 출판했고 의사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청진기의 사용이 확산되었다.


나무를 깎아 만든 외귀형 청진기. 1800년대에서 1900년대 전반까지 널리 쓰였다. 특히 산부인과에서 태아의 심장박동을 들을 때 선호되었다.


외귀형 청진기. 케이스에 넣기 쉽도록 환자의 몸에 대어지는 나팔과 소리를 전달하는 관리 분리되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19세기 영국에서 쓰인 타진망치와 타진판. 타진판은 타진 중 발생하는 진동을 흡수하고 두드리는 지점의 거리를 재는 역할을 한다.


몸 안을 진단할 수 있는 기기들의 등장

이렇게 청진기는 도구를 통해 환자의 몸을 진단하는 최초의 진단 기구라 할 수 있다. 보고, 듣고, 만져보는 등 오감으로 알 수 있는 너머의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점이 진단의 역사에서 청진기가 가지는 의의라 할 수 있다.


청진기 이후 19세기에는 다양한 진단 기기들이 등장한다. 체온계, 혈압계, 심전도계 등 생체정보를 측정하는 기기들이 그러하다. 한편으로는 후두경, 요도경처럼 내시경과 엑스선처럼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몸 안을 진단할 수 있는 기기들도 등장했다. 환자의 몸을 보다 정확하게 관찰하려는 의사의 마음과 과학기술이 더해져서 이루어낸 진단 기술의 발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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