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욱 서울대학교병원 융합의학기술원장
영상의학은 병원에서는 ‘보이지 않는 시공간’이다. 환자를 직접 만나고 책임지는 임상 진료의 이면에서 묵묵히 임상의사의 의사 결정과 환자 치료 과정을 다 양한 영상 판독과 인터벤션(Intervention) 시술로 지원한다. 인터벤션은 혼 히 수술 없는 치료, 칼 없는 치료로 불리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공간만 있다면 어떤 부위도 접근이 가능하다. 영상유도 하에 병변 부위에 색전제, 경화제, 항 암제 등의 약물을 주입하거나, 협착된 부위에 특수관을 장착하는 시술, 농양/ 체액을 배액하는 시술, 고주파 열을 쪼임으로써 종양을 태우고, 혈전을 제거하 거나 녹이는 등 다양한 치료를 시행할 수 있다.
전신 마취 대신 국소 마취로 진행하고, 최소 절개에 의해 출혈도 거의 없다. 이러한 특성상 통증과 합병증을 줄이는 반면, 치료 효과와 회복은 빠른 편이다. 모든 시술 과정은 각종 영상장비(X―ray, MRI, CT, 혈관조형장비, 초음파 등)의 유도 하에 정밀하고 안전하게 수행된다.
“사람 얼굴이나 이름은 잘 못 외워도 영상이나 사진은 한 번 꽂히면 눈썰미가 좋은 편입니다. 어릴 때부터 만들고 고치는 손재주가 좋았고요. 출혈과 쇼크상태로 수술실에 온 환자가 인터벤션을 통해 바로 회복해서 나가는 드라마틱한 경우가 종종 있는데 수술 못지않은 굉장한 보람을 느끼곤 합니다.”
정진욱 원장은 인터벤션 자체가 질환 치료의 새로운 영역을 발굴하는 역사이자, 여정이라고 소개한다. 당초 수술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영역에서 생겨났지만, 새로운 기기와 기술이 점차 발전하면서 과거에는 당연하게 수술로 치료했던 질환들을 점차 인터벤션으로 치료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과와 외과 질환을 아우르며 다학제 진료와 첨단 혁신기술의 한복판에 서 있는 그가 서울대학교병원 융합의학기술원 신임 원장을 맡은 것은 뜻밖의 일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사람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잘 가르치면 기계가 대부분 해낼 수 있다"라고 말하는 정진욱 원장은 기계에 맡길 수 있는 부분은 과감하게 맡기고 사람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사람이 꼭 해야만 하는 분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새로운 치료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인터벤션과 상통하는 지점이다.
혁신기술의 임상 적용에 있어서는 전부터 적극적이었어요. 2000년에 컴퓨터공학과 교수팀과 함께 CT/MR 영상을 PC 기반으로 3차원 재구성하는 소프트웨어 제품을 개발했습니다. 서울대학교병원을 포함한 대학병원에서 사용되는 등 상용화를 성공시켰죠. 그리고 20여 년 전인 그때 영상 분할에 관해 AI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제시했었습니다. 당시는 공학 교수들마저 ‘아직은 안 된다’라 고 하셨지만요. 현재 급속도로 발전하는 빅데이터 기반의 AI 기술에서 가장 큰 수혜를 입을 분야는 ‘의료’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방어적인 태세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산학협력 실용화 연구 위주로 미국 특허 8개를 포함해 30개의 국내외 특허를 낸 정진욱 원장은 지난 2021년 5월 ‘의료기기의 날’ 기념식에서 의료기기 산업 진흥을 통해 국가 산업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수상 하기도 했다.
인터벤션과 융합의학기술원 , 새로움을 향한 이 끊임없는 여정에서 그가 지닌 무기는 '성실함’이다. 국민학교 시절 접한 소설 『큰 바위 얼굴』에 감명하고,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週義自見, 책이나 글을 백 번 읽으면 그 뜻이 저절로 이해된다)’을 정말 믿고 실천했다는 어린 시절의 모습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연구할 때는 시간이 지나면 잊힐 연구보다 오랫동안 남아서 활용될 수 있는 가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근본적인 질문에 가까운 연구들이 그렇죠. 이런 주제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누구나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자들에게 최고가 될 필요는 없지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자고 이야기합니다.
정진욱 원장은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웃음 짓는다. 부산에서 나고 자라 친형을 따라 부산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하려고 했지만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한 것도, 내과를 전공하려 했지만 영상의학과에 오게 된 것도, 영상의학 중에서도 인터벤션을 전문 분야로 삼고, 융합의학기술원의 수장이 된 것도 그가 처음부터 계획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성실함으로 달려온 시간 속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중에 자연스레 이뤄진 것뿐이다.
공평무사(公平無私 공평하여 사사로움이 없음)
마지막으로 융합의학기술원의 신임 원장으로서의 포부와 비전을 묻자 그는 간결하게 답했다.
정진욱 원장은 거창하고 빛나는 목표 대신 "행복해야 멀리 간다"는 믿음으로 오늘도 함께 하는 이들을 배려하고 아끼며 행복하게 생활하기 위한 하루를 쌓는다. 융합의학기술원이 서울대학교병원 구성원으로부터 사랑받고 그 역할을 인정받길 바란다는 그의 바람은 시나브로 이뤄질 것이다. 그의 성실한 삶과 결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융합의학기술원
서울대학교병원은 2021년 8월, 의료지식과 함께 인공지능, 빅데이터, 로봇, 가상·확장 현실 등 미래 핵심역량을 겸비한 융·복합인재양성을 목표로 융합의학기술원을 개소했다. 서울대학교 병원이 축적해 온 의료 빅데이터와 세계 최고 수준의 진료 및 연구역량을 보유한 의료진,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포함한 첨단기술을 융합해 실제 임상에 사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기술을 연구·개발하여 의료의 미래를 선도해나갈 전초기지로 삼는다.
정진욱 서울대학교병원 융합의학기술원장겸 영상의학과교수
간암색전치료, 혈관중재시술, 혈관질환진단 및 삼차원 영상술 등 영상의학 및 인터벤션분야의 새로운 치료 영역을 발굴하고 확장하는 데 힘써 왔다. 2019년부터 2020년까지 대한인터벤션영상의학회 회장 및 대한간암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서울대학교병원 혁신 의료기술 연구기획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2021년 8월 개소한 서울대학교병원 융합의학기술원 초대 원장으로 취임했다. 2021년 5월 의료기기 산업 진흥을 통해 국가산업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제14회 '의료기기의 날' 기념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