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를 맞는중
비가 온다.
그냥 보슬보슬 내리는 비가 아니라, 빗살에 두상이반으로 쪼개져버릴거같은, 하늘이 화가 나서 사람들에게 호통치는 듯한 비다.
네이후(內湖)의 산위에 집을 짓고 시내에는 어쩔 수 없을때만 내려오는 은둔가 친구네 집에 등산겸 놀러 간적이 있다. 정원 한켠의 키 큰 나무가 죽어가길래 어찌된 일이냐고 물어 보니 작년여름 태풍때 벼락을 맞아서 그렇다고했다.
벼락맞아 죽을 년이라는 말이 갑자기 생각나서 웃음이 났다. 진짜 그렇게 죽을 수 도 있구나. 며칠전 태국의 코팡안에 갔을때 부동산 아저씨가 일년에 나무에서 떨어지는 코코넛에 맞아서 죽는 사람이 80명정도라는 소리를 듣고 그 수가 너무 많아서 웃고 말았는데, 나도 공항버스에 깔려서 죽을 뻔한적이 있으니 누군가도 나의 이야기에 웃어도 상처받지않으리라.
비도 내리고 요가연습도 끝났고 커피도 다 마셔가니 집에 가고싶지만 여기서 이렇게 죽치고 있는 이유는 차가 서 버렸기 때문이다. 남친과 차를 그냥 버리고 갈 수 도 없는 일이므로 같이 기다려주기로 했다. 이 상황을 유창하게 설명할 자신이 없는 나와, 중국어는 120엔과 니하오밖에 모르는 이 남자. 외국에 살면서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언어의 장벽. 이럴땐 불쌍한 목소리로 현지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야된다. 그러면 언제나 짠하고 수퍼맨같이 나타나거나, 원격으로 우리를 도와준다. 그냥 앉아서 기다리면 견인차가 온다니 배고픔을 참으며 나보다 훨씬 속이 쓰릴 남자친구와 비를 구경하며 토요일 오후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