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달일 필요 있나
언제였지. 퇴근길에 문득 들었던 생각이 있다. 나는 달인 줄 착각하고 사는 가로등이 아닐까. 나이를 먹는다는 건 별로 반갑지 않은 순간들을 인정하는 과정이 아닐까. 그러니까 이런 순간들. 태어나 보니 온 세상이 환해지길래 아하 나는 엄청나게 특별한 존재구나 자신만만하게 살아가다가 어느 날 길에 똑같이 늘어선 똑같은 모양의 가로등들을 발견하는 순간, 나는 하늘에 하나뿐인 달이 아니라 수많은 가로등 중 하나구나 깨닫는 순간. 대단히 특별한 일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매일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일을 하다가 그마저도 제대로 못하고 어느 날 소등될 수도 있겠구나, 두려워지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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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또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도 나 하나로 빛을 찾고 길을 찾는 한 명쯤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꼭 달일 필요 있나, 가로등 불빛 하나 보고 걷는 누구 하나의 달이면 뭐 그걸로 됐다 하는 생각. 나이를 먹는다는 건 어떤 순간을 맞든 스스로 잘 다독여 주는 법을 알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할 때쯤 엄마한테 전화가 왔던 것 같다. 어디니 같이 저녁 먹자고. (Dec20,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