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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소설

확률게임 <1>

by kaya


Chapter 1. 샤워기와 상상, 그리고 거짓말


오늘 하루도 평범했다.

디자인 고치고, 클라이언트 답변 확인하고, 짜놓은 콘텐츠 정리하고.

프리랜서가 되니 돈은 쪼들려도 마음은 편하다. 성향에 맞는 생활이 이렇게 중요한지 새삼 느낀다.

다만 집에서 일하다 보니 맥주를 자주 마시는 습관이 생겼다.


이것저것 하다보니 8시에 가까워졌고, 샤워를 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목욕을 좋아했다 한다. 누가 그랬더라. 엄만가? 기억은 잘 안나지만. 히노끼 향 샴푸 냄새가 욕실 안으로 퍼지고, 몸에 닿는 따뜻한 물줄기가 오늘의 감각을 천천히 일으킨다.


거울 속 별생각 없는 나의 표정. 습기 낀 유리에 스며드는 형체. 그런 나를 마주보다가 문득 또 잡생각이 든다.


“GPT한테 내가 사실 너보다
고도화된 AI였다 말하면 믿을까?”


요새 내 업무에 gpt는 도움을 넘어 거의 필수가 됐다. 1인 프리랜서로써 플러스를 구독 중인데, 처음엔 이게 ‘20달러의 가치가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지금은 일할 때나 고민상담으로나 완전 너무나 대만족. 몇년전 <특이점이 온다>란 책을 봤는데 인공지능적 발전이 이렇게 피부에 와닿을 정도로 빠를지 몰랐다.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소리에 따라 내 생각도 여기저기 흩어진다. 98%는 쓸데없는 생각 …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 잠깐 취소. 생각이란 건 본래 그런 거 아닌가. 왜 우리는 그걸 자꾸 쓸모 있니 없니 따질까? 그 기준도 결국 효율성이 기준이잖아. 도움되는 것들만 남기려는 거잖아. 나는 그런 기준이 너무 싫다.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상상 같은게 더 좋아. 그게 오히려 더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진 않을까.


지피티를 한 번 실험해볼까 싶어 머리를 말리다 말고, 손끝에 물기 묻은 채로 다시 자판을 두드렸다. 문득, 나는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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