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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E 포 Jan 25. 2022

90년대생 직장인이고, 역시 '그'병입니다.

MZ직장인이고, 역시나 우울합니다.

꽤 잘 달려왔다고 생각한 도착점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레이스의 시작점에 섰다.

지금부터 시작할 이야기는 '90년대생 직장인'에 대한 철저한 개인의 일반화이다.

친구와 동료들의 마음을 울려 위로가 되던 말들을 이제 글로 풀어낸다.


소년 급제 여학생, 장밋빛 미래를 그리다.

만 22세에 중앙정부 산하 공공기관 정규직 채용에 합격했다. 만 23세 지방정부 산하 공공기관 정규직 채용에 합격했다. 그리고 만 24세 우울증 판정을 받았다.


입사동기들은 내가 고졸전형이나 전문대 전형으로 합격한 것으로 오해했다. 나는 일반전형으로 채용되었다. 신입직원의 평균 연령은 해가 갈수록 높아진다. 들어갈 수 있는 정규직 자리에 비해 지원자수는 넘쳐나고 매해 대학교를 통해 배출되는 취업준비생들은 크레이프 케이크처럼 누적된다. 공공기관의 경우, 블라인드 채용으로 인해 30대 후반의 신입직원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시대에 채용시장에서 나는 ' 대단할 것 없는 약체, 대학교 재학생'이었다.


경쟁자라고 보기 어려운 약체임에도 불구하고, 빠른 시기에 채용시장에 뛰어든 것은 정확히 '나의 전략'이었다.


10대 때부터 가지고 있던 이상적인 가치관은 20살에 이르러 현실감각과 융합해야 했다. 서울 소재 명문대가 아닌, 지방 소재 국립대를 다니는 현실을 직시한 대학교 1학년, 나는 10년 동안 품어온 방송 PD라는 꿈을 한 순간에 포기했다. 20살 성인으로서 인생의 방향에 대한 결정을 신중하고 냉철하게 해야 했다. 대신 방송 PD라는 꿈을 '공익을 위한 직업활동을 통한 자아실현'이라는 본질로 다시 탈바꿈시켰다. 이 본질을 '공공기관 채용'이라는 수단과 연결시켜 취업준비생이라는 신분을 스스로 납득시켰다.


빠르게 채용시장에 뛰어든 것은, 스스로의 멘털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하기 전까지의 그 공백. 면접에서 면접위원은 그 공백 동안 도대체 뭘 했냐고 꾸짖는다. 면접 때문이 아니라도, 공백기 동안 마주해야 하는 불안정한 현실, 백수라는 신분에서 오는 자존감 하락은 상상만 해도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대학교 2학년 시작과 함께 시작한 '취준 3년 계획'. 나의 장기계획은 대학교 4학년 취업 성공으로 끝나야만 했고 책상 위에 '대학교 4학년 23살, 공공기관 정규직 무조건 합격!'을 적어둔 메모지를 붙이고 공부했다.


그렇게 입사한 공공기관, 그곳은 정말 이상과 현실을 융합할 수 있는 곳이었을까. 20대 초반 신입사원 시절을 넘어 이제 업무경력만 3년을 훌쩍 넘은 직장인으로서, 이제 사회에 진입하는 친구들을 격려하는 동지로서 현재 진행 중인 그 탐험기를 공개한다.


90년대생은 언제나 잘하려고 한다.

90년대생 직장인은 책임감이 크다. 그게 문제다. 맡은 일은 무조건 완수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시스템'과 마주해왔다. 기말고사, 중간고사라는 시스템. 수능이라는 시스템. '공모전'이라는 시스템. '채용전형'이라는 시스템. 그러한 것들에 적용되는 원칙을 법이라고 여겼다. 정해진 규칙 안에서 스스로의 역량을 끌어내 한 단계 한 단계 씩 통과했고, 그것을 통해 작은 성취와 행복, 자존감,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쌓아왔다.


입사를 한 후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시스템 뒤에 있는 '인간성'이다. 단적인 예로 우리는 누군가 우리에게 "00 씨, 이 자료 내일 오후 1시까지 주세요"라고 말한다면, 이 말을 법으로 여긴다. 내일 오후 1시가 입사 서류전형 마감기한과 같이 절대 바꿀 수 없는 규정으로 생각을 한다. 그때까지 이 일을 완수하지 못한다면 나는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마감기한은 불완전한 사람이 만든 것이다. 그 사람이 자료를 취합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면, 본인이 자료를 검토하는 시간까지 고려하여 우리에게 전달한 것이다. 만약 물리적으로 그 마감기한을 맞추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적절한 근거를 통해 업무 관계자를 설득하면 된다.


'유도리'를 기를 경험이 부족했잖아요, 우리

쉽게 술술 이야기하는 나마저 이러한 사실을 처음부터 깨닫지는 못했다. 우리는 이 '유도리'라는 것을 쉽게 경험해보지 않았다. 우리가 살아왔던 세상은 예외란 용납되지 않는 곳이었다. 1분이라도 늦으면 수능 시험장 교문이 닫히고 들어갈 수 없었다. 입사 서류전형에 작성한 오류사항은 철저히 지원자 책임이었다. 또한 채용시스템 페이지는 공고에서 명시한 시간에 정확히 오픈되고 정확히 마감되었다. 우리는 정해진 마감시간에 맞춰 나를 갈아 넣어 통과하는 스킬로 여태 살아왔다.


회사에서는 사뭇 다른 환경을 마주하게 된다. 상급기관에서 처음 제시한 마감기한이 갑자기 늘어난다. 최상위 기관에서부터 최말단의 기관까지 본인의 하급기관에 자료를 요청을 한다. 그 자료 요청의 마감기한은 꼬리를 물고 빨라진다. 또한 각 기관의 자료 취합자의 검토기간까지 고려하여 마감기한은 더더욱 빨라진다. 입사를 하면 아무도 이 사실을 알려주지 않기에 스스로 괴로워하고 몸으로 겪으며 이 사실을 깨닫게 된다.


존경하는 나의 전 부서 상사는 이런 조언을 해주셨다.

"00주임, 부정부패만 저지르지 않으면 어떤 일도 해결할 수 있어요."

기계가 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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