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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E 포 Jan 27. 2022

내가 퇴사 대신 우울증을 선택한 이유

MZ직장인이고 역시나 우울합니다.

첫 직장 입사 후 찾아온 깊은 번아웃. 만 1년도 채우지 못하고 퇴사했다.

1년 미만 신입사원 퇴사율이 30.6%라는데, 그 비율을 차지하는 한 사람이  되었다.


우리 회사를 1년은 다녀봅시다.

1년도 버티지 못하고 퇴사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큰 영향을 주었다. 물론 부정적인 영향으로. 버티라는 말이 무책임하고 꼰대같이 느껴질 수 있지만 스스로 생체실험을 해본 결과 '사실'이었다. 1년은 다녀보라고 말할 때 왜 하필 '1년'인지 사람들은 말해주지 않았다. 만 9개월을 다녔던 첫 번째 회사와 현 직장의 만 12개월째 재직 당시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한다. 내가 말하는 1년 버티기의 기본 조건은 상식적으로 버틸만한 사람과 업무일 때의 경우이니, 유연하게 받아주길 바란다.


반도체, 선박 등과 같은 제조업의 경우 맡고 있는 프로젝트가 1년이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공공기관을 포함한 여타 사무직의 업무 주기는 크게 1년을 기준으로 돌아간다. 연초 계획을 세우고 연말에 결과보고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제조업의 경우, 프로젝트는 1년이 넘어가더라도 일반적인 기업회계연도의 주기는 1년이다. 그래서 1년을 주기로 업무의 전체적인 사이클을 파악할 수 있다. 결혼 같은 중대사를 결정할 때도 4계절은 겪어보고 결정하라는 말을 하지 않는가.  '내가 이곳을 떠날 것인가, 말 것인가?'를 파악하기 위해선 '내가 이 일과 맞나'를 파악해야 한다. 이 결정은 신중해야한다. 객관적으로 후회 없이 증빙할 수 있는 기간이 1년이다. 반년으론 부족하다. 1년 안에 인사발령이 날 수 도 있다. 그리고 1년 동안 배를 탄 선원이 된 듯 맡고 있는 업무의 흐름의 변화를 넘실넘실 느낄 수 있다. 그 경험을 하고 난 후 결정하는 것이 낫다.


힘들죠, 우리 리스크 없는 액션부터 취해봐요.

첫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취준생이 되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후회'라는 것을 했다. 이전까지 살면서 후회라는 것을 잘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람은 실수를 할 수밖에 없고 그 실수를 보완해서 '앞으로' 잘하면 된다는 마음가짐이 합리적이고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원하는 대학을 가지 못했을 때도, 원하는 직업을 포기했을 때도 다른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나 100: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서류-필기-면접 전형을 모두 뚫고 입사한 회사를 1년도 되지 않아 퇴사했다는 사실은 나의 자존감을 계속해서 떨어뜨렸다. 그 이후 취준을 하면서 실패를 맛볼 때마다 재학생일 때와 달리, '그때 그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그때 그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때 모든 것이 번아웃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퇴사 전 정신과 상담을 미리 받았더라면...'이라는 의미 없는 과거형 가정형 문장들이 내 머리를 뒤덮고 숨 쉴 수 없이 마음이 답답해졌다. 과거의 후회라는 것이 뒤에서 내 옷을 붙잡아 도저히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들었다. '초심자의 운이었나, 내 인생의 괜찮은 직장은 이제 끝인 건가.. 이렇게 나는 백수 인생인 걸까.'라는 생각이 내 머리속을 지배했다. 마치 초심자의 행운을 스스로 던져버린 죄인으로서 평생 속죄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자존감과 의지력은 급속도로 하락했다.


그 경험이 너무나 생생해서 그런지, 두 번째 직장에서 힘든 일이 생길 때도 퇴사는 쉽게 생각하지 않았다. 회사 내에서 최대한 해결하자는 결심했다. 업무에 대한 압박감으로 주말 아침 공황이 찾아와서 내과를 찾아가는 일이 생기고, 우울의 바다에 빠져 24시간 죽음이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괴로울 때도 퇴사를 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명분 있는 의견을 낼 수 있게 명분 있는 버티는 시간을 마련하고, 그 시간 동안 정신과 치료를 병행하여 최대한 버틸 수 있는 멘털을 유지할 수 있게 노력했다. 


그 결과, 나는 힘들고 괴로웠던 일을 마무리짓진 못했지만, 객관적으로 난도가 높은 업무임을 인정받았다. 팀 이동에 대한 의견을 낼 수 있었고, 힘든 일이었지만 분명 배울 수 있는 부분이 있었기에 나의 업무적 능력은 한층 더 성숙해졌다. 그리고 그 버팀의 시간은 '논리'를 좋아하는 나에게 '감정'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주었고 '나를 보살피는 일'과 '나의 동료를 보살피는 일'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했다.


회사와 병행할 수 있어요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회사를 다니면서 사업을 준비한 사업가와 무직상태에서 사업을 준비한 사업가 중 전자가 훨씬 사업의 성공확률이 높았다고 한다. 이러한 사례는 비단 사업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이나 작사가의 경우, 작사로 인한 수입이 월급을 상회하고 그것이 일정 연도 지속됨을 확인하고 나서야 퇴사를 했다고 한다. 베스트셀러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을 낸 장류진 작가는 회사를 다니며 책을 썼다. 그녀의 생생한 회사의 경험은 책의 내용에 녹아들어 독자들을 울고 웃겼다. 요즘 회사에서 신입사원의 절반정도는 이직러(회사를 다니면서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준비하려는 목표에 전념하기 위해 잘 다니고 있던 회사를 그만둔 적이 있다. 회사가 내가 하는 일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사는 방해가 아니라 나의 삶의 터전이었고, 내게 사회생활을 하며 일정수입을 제공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는 기회였다. '회사와 병행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퇴사가 고민될 때, 회사를 그만두지않고 병행하여 꿋꿋이 그 일을 해낸 사람들의 경험들은 나에게 회사를 계속 다니게 하는 힘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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