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직장인이고 역시나 우울합니다.
시궁창 같고 오물같이 정말 더럽고 진절머리 나는 기분이 들 때면 생리 기록 어플을 연다. 정확히 생리 시작일로부터 일주일 전에 가까워지고 있다.
우울증 약을 꾸준히 먹기 시작하고 몇 달 뒤, 뜬금없이 PMS증상(생리 전 증후군)이 더욱 심해졌다.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 강제로 탑승하다.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할 때 맞닥뜨리게 되는 PMS는 괴롭다. 생리 전 시기에 아무 탈 없이 지나가는 여성도 있지만, 이로 인한 우울함이 극도로 발현하여 '자살충동'이 들거나 이를 실행하는 사례도 실제 존재한다. 회사와 개인적으로 어려운 일들이 휘몰아쳐서 내 정신을 쏙 빼놓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는 그 일을 해결한다. 하지만 온몸에 힘이 빠지고 무기력해진다. 보통이었으면 감당 가능했을 멘탈이 PMS라는 엘리베이터 강제 탑승으로 회복되지 않는다. 익숙하지만 몸서리치게 싫은 그 기분이다. 지하 1층, 지하 2층, 지하 3층... 엘리베이터는 지하로 끝도 없이 내려간다. 지하로 내려갈수록 숨은 답답해진다. 언제 다시 올라갈 수 있을까 하는 막막함마저 든다.
우울증을 잘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다. 완치라는 것이 어렵고 재발하는 것도 쉽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회사와 개인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경험하고 지나가는 것이 이 봉우리를 지나 다시 저 봉우리로 가는 산악길처럼 느껴진다. PMS는 쉽지 않은 산악길행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잘 내딛으며 가다 생각지도 못하게 맞닥뜨리는 거센 물이 흐르는 계곡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
막상 생리를 시작하면 그 시궁창같이 더럽게 우울한 기분이 사라진다. 안도하고 다시 일상을 살아간다. PMS가 심해진 초반 몇 달은, 생리를 시작하면 그전의 괴로움에서 벗어났다는 홀가분함에 모든 것을 망각해버렸다. 힘들었던 나날들은 잊어버리고 해결책을 강구하지 않았다. 그렇게 3주 뒤 똑같은 시궁창 같은 기분을 마주했다. 몇 달의 학습을 통해 나는 망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해
내가 나아지는 것을 방해하려고 매월 방문하는 불청객에 더 이상은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한 달이 4주인데 1주일 정도 생리를 하고 1주일 정도 PMS에 시달린다. 한 달의 절반 정도를 생리 때문에 컨디션 저하로 날려먹게 된다는 것이 미친 듯이 괴로웠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참 아까웠다.
약국의 PMS 약은 주로 신체적 증상을 완화시키는데 주력을 해서 그런지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매 월 가는 곳이 정신과인데 정신과에서는 답을 알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PMS인데 약 좀 처방해달라고 말했다. 의사는 지금 복용하고 있는 항우울제가 PMS완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추가적인 처방은 없었다. PMS라는 것이 사실상 호르몬 불균형에 의한 것이니 의사 선생님 말씀이 맞겠거니 생각하고 꾸준히 약을 복용했다. 그래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분명 내가 유일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PMS는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호르몬의 불균형으로 인해 일어나는 일련의 증상이다. 생리 직전에는 에스트로겐 수치가 과다 분비되어 둘 사이의 균형이 깨진다. 또한 일정하던 호르몬의 분비가 짧은 시간 내에 배로 늘어나면 몸에 무언가 증상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며칠의 웹서핑을 통해 내가 찾은 영양제는 '바이텍스'이다. 바이텍스는 보라색 꽃을 피우는 허브과 식물로 2,500년 전부터 여성의 생리문제와 호르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히포크라테스가 여성 환자들에게 자주 처방했던 약재로도 유명하다.
마지막 동아줄이라고 생각하고, 바이텍스를 하루에 한 알 복용하기 시작했다. 효과는 생각보다 빠르게 나타났다. 바이텍스를 먹고 그다음 생리주기에서 PMS증상은 훨씬 완화되었다. 내가 PMS였는지도 모르고, 그 주기를 지나갔으니 실로 큰 성과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 같은 불안
특히 회사일로 압박을 받으면, '특정 업무'때문에 너무 힘들었던 우울의 경험이 오아시스처럼 내 머리에 아른거린다. 늪에 빠진 것 같던 우울감이 생각난다. 생각만 나면 다행이지만 나를 과부하시킬 정도의 압박은 습관처럼 나를 그 늪에 끌고가려고 한다. 그럴 때 PMS를 맞닥뜨리릴 때가 가장 겁이 난다. 영양제(바이텍스)의 효과는 다시 무용지물이 된다.
결국은 환경과 나의 회복탄력성의 문제이다. 영양제와 항우울제가 어느정도 호르몬의 균형을 맞춰줄 수 있지만, 환경에 대응하는 회복탄력성은 영양제가 모두 해결해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있다.
경험과 시간이 해결해주는 학습의 과정안에서 매월 마주하는 PMS는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가오나시처럼 조용하지만 무서운 존재이다. 유통기한을 말한다면 25년정도 남은 PMS. 평생을 함께 서로를 잘 조절하며 갈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끔은
삶에게 지는 날들도 있겠지
또다시 헤매일지라도 돌아오는 길을 알아
(아이유- 아이와 나의 바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