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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E 포 Jan 29. 2022

상사 曰 : 힘들면 말을 하지 그랬어

MZ직장인이고 역시나 우울합니다.

연인사이에 '서운해'라는 말 없이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란다는건 어리석다. 부모와 자식 간에 '사랑해'라는 말 없이 그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것도 옳지않다. 누군가 죽고나서 그 말을 뱉지 않았던 과거의 나날들이 후회로 남을 것이다. 그렇다면, 회사에선 그런 말들을 뱉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내가 힘듦을 참았던 이유

난이도가 높은 업무를 맡아, 그 일의 난이도에 압도되어 압박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돈'과 연결되어있었기에 완벽주의강박을 가지고 있던 나의 성향은 더 강조되었고,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고 나날이 예민해졌다. 상사는 이 일을 몇년동안 해낸다면, 분명 직장인으로서 무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특정업무와의 유착 및 부정부패 방지를 위하여 '지역순환, 부서순환'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공공기관에서 기관 전체 결산을 포함한 회계 업무에 대한 깊은 이해가 수반되다면 어떤 부서를 가던, 설령 다른 기관을 가더라도 모든 일들을 이해하기 편할 것이며 다른 직원들에게도 신뢰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상사의 합리적인 말씀은 나를 설득시켰다. 솔직히 그 직장인으로서의 '무기'를 한번 가져보자는 맘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버텨보자는 맘을 가지고 업무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몇번의 질문과 전임자의 결재문서로 사업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가 가능한 사업 부서의 업무와 달리 회계업무는 단시간에 업무를 모두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오랜 시간동안 축척된 회계적 센스로 정부회계와 기업회계의 결산보고서를 만들어야한다. 업무를 가르쳐줄 수 있는 상사가 있지만, 그분도 그분만의 업무가 있기에 계속 물어볼 순 없다. 몇번의 고민을 쌓아 한번의 질문으로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산처럼 쌓인 업무적 의문은 해결된 질문보다 배로 쌓일 뿐이었다.


이젠 말해야할수 밖에 없는 시간이 왔다.

1년이라는 시간을 버티며 내 마음속에선 깐깐한 상사가 태어났다.그 상사는 '이제 이정도 지났으면 업무를 물 흐르듯 해야하지 않을까?'라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나를 감시하고 평가하기 시작했다. 사실, 어떤 상사도 팀원도 나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1년하고도 반년이 더 지났을 때, 더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주말엔 회사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기전, 자고 나서도 눈물로 하루를 지새웠고, 오아이스에서 만난 신기루처럼 '죽음'이라는 것이 다시 내 눈에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업무를 하는 것이 평범한 일일까라는 의문이 생기면서, 나는 상사에게 면담을 요청하기로 결심했다.


상대방을 설득시킬 무기: 객관적 증거와 나의 감정을 담백하게 전달하기

상사에게 담백하고 차분하게 나의 의견을 전달했다. '저는 상사님께서 이 일을 저에게 시키신 그 의중을 이해합니다. 열심히 이 일을 습득하려고 노력해보았습니다.','하지만 몸은 버티지 못하고, 우울과 불안지수가 너무 높아졌습니다. 그래도 약을 먹으며 버텨보려고 해보았습니다. 약을 복용한지 1년이 넘었습니다.', '제가 그래도 업무를 많이 습득했다고 느끼고 있던 요즘, 이 업무의 순환주기를 맞닥뜨리면서, 공든탑이 무너지듯 제일 일이 힘들었던 시기의 힘듦이 다시 저를 찾아왔습니다.','객관적으로 난이도가 있는 일이기에 최대한 버텨보려고 했으나, 이 일의 성향이 저와 맞지 않은것인지 더이상은 이 업무를 수행하기엔 몸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업무변경을 요청드립니다.'

상사는 나에게 말했다.

"이렇게 힘들어지기 전에 나에게 말하지 그랬니."

업무의 난이도가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처음 이 일을 배정할 때 내가 못하겠다고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힘들어하고 있는 줄은 몰랐단다. 이렇게 약을 먹으면서 업무를 하는 것은 상사도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업무와 부서변경을 진행해보겠다고 말씀하셨다.


왜 미리 말하지 않았냐고 하셨지만, 상사는 나를 괴롭히려고 한 것이 아니었고 충분히 팀원을 지도하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업무를 시키셨다. 그 말씀이 설득력 있었고 나도 그 업무가 참 어렵긴 하지만 습득하고 나면 도움이 될 것이라 스스로 생각했었다. 업무를 변경하고싶어도 1년은 버티고 말씀드리는 것이 한마디로, 상사를 설득하기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아무 노력도 하지않고 내가 제일 원하는 것만 상사에게 요청한다면, 내가 상사라도 '그래도 한번 시도는 해보고 말해야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 이다. 객관적으로 상사를 설득할 수 있을만한 노력과 주관적인 의견을 함께 전달한다면 회사 내 의사결정을 최대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 첫 글에서 부터 말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은 '기계'가 하는게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다.


참지말고 바로 말해야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선 경험과 달리 제때 나의 의견을 전달해야할 때가 있다. 바로 업무적인 일이 아닌 '인간관계'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다. 나 또는 나의 회사를 무시하는 외부 업무 관계자로 인해 상처를 받았거나, 회사 내 동료와의 감정이 상하는 일이 발생했을 땐 바로 해결하려고 한다.


이러한 경우, 바로 그 감정들에 대한 나의 의견을 말하지 않으면 두가지 현상이 발생한다. 첫째, 나의 상처는 더 고조된다. 내가 말하지 않았기에 누구도 돌봐주지 않는다. 해결되지 않은 감정은 계속해서 속으로 되새겨진다. 훌훌털지 못하고 상처는 깊어지기만 한다. 둘째, 상대방을 왜곡하며 점점 '꼬인 사람'이 되어간다. 이제 상처받은 사람과의 모든 대화가 괴롭고 스트레스만 된다. 그 사람의 말이 그 자체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상처에 덧대여져 한번의 필터링을 거친 후 들리기 때문에 자연스레 내 입에서 나가는 문장도 곱지많은 않아진다. 악순환이다. 다들 상처받은 맘을 숨기고, 그 상처를 계속해서 되새기며 셀프로 다시 상처받는다. 상대방의 말을 왜곡하며 분노한 감정을 다시 다른 사람과 나누며 소위 '뒷말'을 한다. 이런 과정을 나열해보면, 회사생활을 하게 사람들이 뒷말을 하게 되는 것은 참, 당연하다고 느껴진다. 문제의 본질이 해결되지 않았기에 겉핥기로 상대방의 험담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상대방의 어떠한 행동과 말투가 내 감정이 상했는지 정확하게 전달한다. 상대방과 나는 '친구관계'가 아니라 '업무를 원활하게 행하기 위해 만난 업무 관계자'이다. 나는 당신과 충돌없이 이 문제를 잘 해결하고 싶은 의지가 있다는 것을 전달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당신의 어떠한 말과 행동때문에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나는 당신과 이 일을 잘 해결하고 싶다. 조금만 나를 존중해졌으면 한다.'는 문장들을 담백하고 따뜻하게 전달한다. 만약 말을 하다 꼬일 것 같다면 전날 메모장에 문장을 메모해두자. 나는 메모를 하고 입으로 혼자 뱉어보며 리허설을 해보기도 했다.


담백하게 나의 감정을 전달했을 때, 업무관계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대부분, 본인의 그 행동이 나를 상처줬다는 것을 인지도 못하고 있다 알게되니 당황한다. 당연하다. 나 또한 누군가를 상처줬을 때, 그 행동이나 말이 상대방을 상처줬는지 몰랐으니 말이다. 사실 우리가 서로에게 상처주고 받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감정이 상했다는 것에 미안함을 느낀다. '함께 잘하고 싶은데 당신의 말과 행동에 상처를 받았다.'는 말을 상대방에게 들으면, 그렇게 반응할 수 밖에없다. (기본적으로 정상인이라면 말이다.) 그 후로 상대방은 내 감정을 어느정도 살피고 말과 행동을 하게 된다. 한마디로 내가 만만해지지 않는다. 갑질과 직장내 괴롭힘이 법적 처벌이 가능한 시대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스스로의 행동을 한번 되돌아 보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상대방에게 나의 감정을 전달했기에 내 안에 남아있는 응어리가 없다. 다음부터 상대방과 나누는 대화에서 상대방의 의미를 왜곡하지 않게된다.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 속에 업무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대화를 하다보면, '나의 그 말이 너를 상처준지 몰랐다. 말해줘서 고맙다.'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듣기 싫은 말을 하는 것과 누군가에게 듣기 싫은 말을 듣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말하는 사람에게도 듣는 사람에게도 큰 용기와 배려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존재하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나'이다. 나를 존중하기 위해 업무적으로, 인간관계적으로 나를 해하는 상황에서는 적절한 시기에 말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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