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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E 포 Jan 31. 2022

우울한데 더 우울해지고 싶을 때

MZ직장인이고 역시나 우울합니다.

너무 괴로울 땐, 행복해'보이는' 사람의 위로는 잘 들리지 않는다.(대부분의 사람은 나보다 나아 보인다.) 처절하게 무너지는 사람들로부터 희망을 본다. 그 사람보다 내가 나은 것 같다거나 하는 비교의 문제가 아니다. 이 괴로움을 이해하는 사람이 뱉는 말만이 '진실'로 들리기 때문이다.


영화감상이 취미임에도, 대학생 시절 한 해동안 본 영화가 5편도 되지 않았다. 바빠서, 영화관 갈 돈이 없어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 이유를 파고 파면, 나는 나의 감정도 돌아보지 못하고 휴식도 취하지 못한채 달리기만 했기 때문이다. 2021년에는 총 39편의 영화를 봤다. 두 가지의 이유로 영화를 많이 보게 됐다.


첫 번째,  '죽음'에 대한 생각을 멈춰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우울증이 심했던 시기, 숨 쉬듯이 죽고 싶었다. 비유적 표현처럼 보이지만 이 것은 사실적 표현이다. 정말 들숨에 죽고 싶다, 날숨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극단적인 시도를 구원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새벽은 잠이 완전히 깬 오전과 오후보다 배로 힘들었다. 예민해진 감정 때문인지, 약 때문인지 새벽에 자다가 깨면 아무도 없는 원룸 모서리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고개를 숙이고 죽고 싶다는 번민에서 달아나고 싶어서 발버둥 쳤다. 도저히 생각의 전환이 일어나지 않았다.  


두 번째, 우울함과 괴로움을 느끼는 영화 주인공들만이 나에게 친구가 되어주었다. 우울한 감정에 대해 위로를 해줄 주변 사람들은 있지만, 그 감정을 같이 느끼며 공감해줄 사람은 찾기 쉽지 않다. 나는 영화 주인공들에게 공감을 하고, 영화 주인공들로부터 공감을 받았다.


그런 이유로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와 같은 정신적 고통을 겪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들을 많이 찾아보았다. 아래 영화들은 실화이거나 실화를 각색하여 제작되었다. 그러한 사실은 더더욱 위로가 된다. 이렇게 힘든 사람이 나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수십 편의 영화 중 소개하고 싶은 몇 편의 영화를 추려보았다.

영화 와일드(2014)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 마약과 난잡한 성생활 등으로 스스로를 파괴하고 살던 그녀는 예기치 못하게 생긴 아이를 낙태하며 파멸의 끝을 다다른다. 더 내려갈 곳이 없는 곳까지 내려가면 다시 원점에 서는 것일까. 그녀는 참회라도 하듯 5,000km에 달하는 긴 종주길을 나선다.


PCT는 멕시코 국경부터 캐나다 국경까지 미국 서해안 능선 총 4,270km을 잇는 트레일이다. 발톱이 빠지고, 신발은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밤에는 무서운 야생동물의 울음소리가 들리나 내일 걷기위해 잠을 청해야 한다. 영화는 그녀가 걸어가는 길의 중간중간 그녀가 '엄마와 함께 행복한 나날을 꿈꾸던 순간', '스스로를 학대하며 상처주던 순간' 들을 배치하여 극을 구성했다. 현재의 하이킹 걸음들 사이사이 배치된 과거 장면들에 공감이 되었다. 힘든 길을 걷다 보면,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과거를 하나씩 정리하게 된다. 결국 완주 끝 무언가 마음속에서 정리가 되곤 한다. 젊고 능숙한 남성들 사이에서 초대받지 못한 손님처럼 산 속에 존재하던 그녀였다. 하지만 이 길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음에도 그녀는 결국 눈물을 흘리고 포효하며 이 종주길을 완주한다. 119분 내내 멕시코와 미국, 그리고 캐나다의 광활한 산들을 외로이 걷는 듯한 기분이 든다.


고통으로 또 다른 고통을 승화시키는 과정으로 삶의 무게를 짊어진 채 나를 찾는 여정,
그 속의 어머니라는 이름의 나침반

니체가 책을 읽지 않은 기간에 혼자 생각하는 법을 깨달았듯이,
우리는 혼자 있을 때, 사람과 같이 사는 법을 깨닫고,
꾸미지 않을 때 비로소 자신의 아름다움을 내뿜는다.
- 왓챠 감상평 中 -


영화 디 아워스(2002)

1923년 책 <댈러웨이 부인>을 집필하는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 1951년 미국 LA 단란한 가정에서 둘째를 임신한 주부 로라(줄리안 무어), 2001년 버지니아 울프라는 별명을 가진 출판 편집자 클라리사(메릴 스트립)가 등장하는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이다. 20세기 가장 혁신적인 소설가로 평가받는 버지니아 울프의 무언가로 엮인 각 시대의 여성들의 삶을 보여준다. 각자의 시대상황은 다르지만 세 여성은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괴로움과 우울로 힘들어한다.


<의식의 흐름>이라는 새로운 서술기법으로 당시 문학계에 반향을 일으킨 버지니아 울프. 그녀는 경제학자 케인즈 등 저명한 지식인들과 모임을 하며 토론 등을 나누었다고도 한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것과 달리 스스로를 끝없이 끌어내리는 우울함은 그녀가 주머니에 돌을 넣고 강에 몸을 내던지기 전 남편에게 남긴 유서의 내용에서 알 수 있다. 그녀의 유서 속 문장 한 줄 한 줄은 내 마음 같았다.


나는 다시 정신을 놓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나는 이런 끔찍한 시간을 또다시 겪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고 집중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나는 내게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일을 하려 합니다.
- 버지니아 울프 유서 전문 中-

극 중 1950년대 주부를 연기한 줄리안 무어의 연기는 우울함에 찌든 극치를 표현해주어 도리어 큰 위로를 받는다. 너무나 자상한 남편, 귀여운 아들과 함께지만 무언가 권태로운 일상과 답답함은 그녀에게 삶의 존재 이유를 잔인하게도 한 가지도 주지 못한 듯하다. 우울함은 그렇다. 겉으로 보이는 환경과 감정이 정반대이다. 가끔은 그 아이러니가 지독하게 답답해서 숨이 갑갑해진다. 수면제를 과다 복용하여 자살을 하려고 호텔 체크인을 하지만, 결국 실패하는 모습에 죽고 싶지만 죽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투영하여 보기도 하였다. 죽기를 포기하고 호텔방에 누운 로라의 침대에 바닷물처럼 보이는 엄청난 양의 물이 그녀의 몸을 잠겨버리는 듯한 연출은 내가 겪었던 수많은 밤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영화 츠레가 우울증에 걸려서(2011)

전화기 너머로 인간적 모독성 발언을 서슴지 않는 고객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던 회사원 미키오. 그 스트레스는 그를 서서히 삼키기 시작한다. 점심시간 젓가락으로 도시락을 뒤적거리기만 하고 도저히 음식을 먹지 못한다. 아내와 함께하는 저녁식사에서도 그는 잘 먹지 못한다. 그의 식욕은 나날이 감소해간다. 허리가 아파오는 등 몸의 이상 증상은 늘어가고, 도저히 처음 느껴보는 우울감에 그는 생애 첫 정신과를 방문하게 된다. 처음 우울증 약이 들었을 때 행복감도 잠시, 다시 아래로 떨어지는 감정의 기복에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 감당하기 힘든 감정적 고통를 그녀의 아내는 정성껏 함께 버텨내 준다.


주인공의 직업이 회사원이고, 넥타이와 매일 도시락에 싸가는 치즈가 요일별로 정해져 있을 정도로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다 보니 더욱 공감이 되었다. 몸의 이상 증상을 느껴, 스스로 병원을 가고 항우울제를 먹으며 극복의 과정을 겪는 모습을 제삼자로서 바라보며, 스스로가 더 안쓰럽게 느껴졌다. 특히 식욕이 심각하게 떨어지고 잠이 늘어나는 모습은 너무나도 당시 내 모습 같아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상하게 하나도 배가 고프지 않아 점심을 거르고, 잠을 자도 자도 잠이 와서 점심시간에도 몸을 웅크리고 잠을 자던 나의 모습은 분명 비정상이다. 매거진을 발행하며 '약'에 대한 내용도 자세하게 설명하게 되겠지만, 영화의 미키오가 보여주는 모습처럼 항우울제를 통해 느끼는 나아졌다는 희망에서 찰나의 빛을 보고, 다시 우울감의 하강곡선을 그릴 땐 오히려 희망을 봤던지라 더 괴롭다. 처음부터 이런 기복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최소 1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고 투병생활을 하기를 바란다.


위 영화들을 보면서, 우울해질 때로 우울해지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올 힘도 없이 허우적 거리고 있을 때, '나도 네가 힘든 그 감정이 뭔지 알아'라고 말하며 물 속에서 내 손을 꽉 잡아주는 친구가 필요하다. 만약 당신이 내가 겪었던 그 우울함으로 힘들어하고 있다면 위 친구들을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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