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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E 포 Feb 04. 2022

눈을 감고 나와 대화하는 직장인

MZ직장인이고 역시나 우울합니다.

내가 어떤 마음인지, 껍질이 아닌 알맹이의 마음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일은 참 쉽지 않습니다. 해본 적이 없으니 당연하지요. 그럼에도 그 알아차림 앞에 시작이 있으니, 해야 할 수밖에요


채찍질당하는 말이 사는 교실

7차 교육과정을 거친 우리는 '감정'보단 '사실'에, '생각'보단 '행동'에 무게를 두고 살아왔다.

'그냥 해!'정신으로 꾸역꾸역 버텨 결과를 내는 것이 10대의 미덕이었다. 7,80년대 고도성장을 위해 '다독임, 보듬어줌, 사람답게 살기'를 위한 부문의 부족함은 뒤로하고 경제 지표 실적 달성만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온 부모님 세대의 무조건적 성실함은 교실 속 우리에게 대물림되었다. 미리 챙겨 온 단어장을 급식실에서 훔쳐보며 밥을 먹는다. 모의고사를 망쳐서 기분이 나빠도 어제와 같이 페이스를 유지하며 정해진 양의 공부를 해냈다는 합격자의 수기는 학생들의 귀감이 된다. 과정에서 '감정'은 철저히 무시된다.


포기한 적 없는 삶의 경고

회사에서의 어려움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MZ세대들에 대한 기사에는 매번 이런 댓글이 달린다.

'그렇게 힘들면 회사를 그만두지 바보같이 왜 극단적인 선택을 하나.'


평생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살아온 아이가 마라톤 같은 회사생활을 견딜 회복탄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모순이다. 철로에서 벗어난 적 없이 꾸역꾸역 살아온 아이가 성인이 되었다고 바로 그런 문제들을 현명하게 풀어갈 수 있는가. 우린 이제껏 해왔던 대로 스스로를 궁지에 내몰며 수험생의 마인드로 회사생활에 임한다. 마인드와 환경의 차이. 그 불균형으로 인한 균열은 어쩌면 당연하다.


어른처럼 행동해야 하는데, 이제껏 이 사회에서 버텨온 그들처럼 행동해야 하는데. 우리가 취학 전 아동 때부터 배워온 교육의 모토는 '차별과 불공평에 대한 행동'이다. '비참히 굽혀야 함'과 '행동해야 한다는 자각' 사이의 불균형은 스스로를 지독히도 혐오하게 만든다. 지속하라는 '현실'과 생각하라는 '교육' 사이의 간격은 그만큼 잔인하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어른들의 말처럼 올바른 결정이 쉽게 안 내려지는 게 당연해요. 맘처럼 안되니까 참 힘들죠. 우리도 어른인데 말이죠. 일단, 일단, 작은 한 걸음부터 시작해봅시다. ' 

 

감정을 돌보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스스로의 감정을 돌보는 일은 '난이도'가 있는 일이다.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긴 말을 시작하기 앞서 일단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직장인으로서 자기 계발을 하고 투자를 하는 것을 중요한 일로 여기는데, 그만큼 중요한 것이 '나의 알맹이 마음 알아차리기'이다.

이 일이 어려운 이유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한데, 감정을 돌보는 일은 매우 귀찮다. 평일에는 일을 하느라 쉬기 바쁘고, 주말엔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어서 마음을 잘 돌보지 않게 된다. 아무 생각 없이 쉰다는 것과 마음을 돌보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내 마음을 꺼내서 돌보고 이해하는 과정은 꽤 귀찮고 성가신 일이다. 집안일이나 청소처럼 말이다. 그러나 청소를 하지 않으면 집이 더러워지듯이 내 마음도 제때 돌보지 않으면 작은 감정들이 쌓이고 쌓여 큰 먼지 덩어리가 된다.

둘째, 우리는 감정과 사실을 분리하여 감정을 돌보는 것이 아직 습관화되지 않았다. '내 마음이 어떠하구나'라고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 마음은 열등감, 부끄러움, 우울함처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종류의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의 주위를 맴돌며 생각은 스스로에 대한 조언으로 끝난다. 예를 들면, '그래도 열심히 해봐야지.', '그래도 하고 나면 남는 게 있을 거야.'처럼. 하지만 이건 '사실'이지 '감정'이 아니다.

만약 친구가 나에게 고민상담을 할 때, 감정을 공감해주지도 않고 '그래도 열심히 해봐야지.', '그래도 하면 될 거야.'라고 말한다면 어렵게 이야기를 꺼낸 친구의 마음은 어떨까. 

셋째, 감정을 돌보는 일의 성과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운동이나 투자는 몸 또는 자산의 변화라는 외적인 형태로 결과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 감정을 받아들임에 따른 내 안의 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아 쉽게 간과하게 된다.


어렵지만 해야 합니다.

스스로를 인정해야, 보다 정확한 감정을 인식할 수 있다. 정확한 감정을 인식해야 보다 정확한 해결책을 낼 수 있다. 내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겉핥기의 감정을 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나의 사례를 하나 말해본다.


나의 일이 내부 직원으로부터 지적을 받았다. 정당히 할 수 있는 지적이었음에도 그 직원이 밉고 어리석다고 생각을 했다. 계속 그 생각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직원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가 아니라, 내가 어떤 상황에 처했고,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되었는를 기준으로 생각해보았다. 파고 파서 결국 내가 발견한 감정은 '내가 공익을 실현할 마음으로 행한 행위에 대해 타인에게 공감받지 못한 것에 서운하고 속상하고 슬프다.'라는 감정이었다. 


만약 내 안의 깊은 감정인 '속상하고 서운하다'가 아닌 '기분 나쁘고 짜증 난다.'에서 감정인 식이 끝났다면, 내 행동은 어땠을까? 아마 업무를 지적한 상대방이 밉고, 그래서 동료가 꼴도 보기 싫어지도, 감정이 제어가 안되면 동료를 험담 할 수 도 있다. 마음의 본질을 알아냈기에,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었다. ' 참 속상했지. 잘해보려고 한 건데, 함께 잘되기 위해 한 건데 칭찬해주기는 망정 비난의 눈초리를 보이니 서러웠겠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위로의 한마디는 내 마음을 가라앉혔고 절차적으로 행할 다음 행동을 생각해 낼 여유를 제공했다.


'알맹이 감정 들여다보기'에 대한 중요성을 깨달았다는 것 자체가 큰 한 걸음이다. 매일 할 필요는 없다. 형식적인 감정일기를 쓰는 것 때문에 정작 중요한 순간에 그 행동이 귀찮아진다면 정말 안타깝다. 대신 평소와 다른 강도의 감정이 치밀어 오를 때, 마음의 경고를 알아채고 그 마음의 껍질을 까고 본질을 알아보고 보듬어준다면 분명 그 이후의 행동은 정말 나를 위한 행동으로 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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