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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E 포 Feb 06. 2022

엄마도 직장인의 엄마는 처음이라서

MZ직장인이고 역시나 우울합니다.

엄마 : 난 네가 가능한 한 최고의 모습이길 바래

딸 : 이게 내 최고의 모습이면?'

영화 '레이디 버드' 中


시보를 떼고 일을 시작한 친구가 회사일로 엄마에게 하소연을 했다. 그런데 그 대화가 새로운 스트레스를 만들었던 것일까. 친구는 나에게 엄마의 대화방식에 대하여 한풀이를 했다. 어쩐지 데자뷰가 느껴졌다. 친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나도 똑같은 경험을 한 적 있어!'


우울로 적셔진 일기를 긁어서, 친구와의 카카오톡 채팅방에 냅다붙여버렸다. 나는 이제 안다. 상대방이 지쳐있을 때, 먼저 해야할 말은 해결책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 나에게 풀이 죽은 모양새로 한쪽 팔이 부러졌다고 말할 때, 나도 오른쪽 다리가 부러져서 걷지도 못한다고 다리를 내미는 것이 그의 맘을 다독이는 일이라는 것을.


친구는 나에게 말했다.

 '너가 나보다 일찍 회사를 다니고 있어서 다행이야.'

공감의 힘은 참으로 무섭다. '너도 절절히 힘들었구나' 라는 생각에 역설적이게도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2년 전 나는 '회사에서의 어려움, 그리고 그로 인해 시작한 이직공부'라는 고통 속에 있었다. 위로받기 위해 시작한 부모와의 소통에서 되려 서러움을 느꼈다. 엄마에게도 이리도 고통스러워하는 딸은 처음이었다. 엄마는 보통의 엄마처럼 '이해'없이 '해결책'을 주었다. 아래는 일기 중 한 부분이다


(2020.7.12.)

내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했을때 엄마는 '너가 퇴근하고 공부를 쭉 하는것도 아니잖아','넌 슬픈걸 즐기는 것 같아', '넌 슬픈 코스프레를 하는 것 같아'라고 이야기했다.


내가 최근 가장 힘들었던 것은 퇴근 후,주말 이직공부를 원하는 만큼하지 못하고, 이로 인한 죄책감이 반복됐던 것이다. 반복된 실패감은 스스로를 힘들게 만들었고 기본 감정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내가 지금 공부하는 것이 아무 쓸모가 없으면 어떡하지.' '나는 사실 그 기관을 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닌데 억지를 쓰고 있는걸까'라는 마음이 엄습할때면 공부에 대한 집중력은 자연히 떨어졌다.


내가 내마음대로 되지않는 부분에 대해서 너가 문제라고 이야기하니 할말이 없어졌다. 사실 나는 엄마에게 위로를 받기 위해 전화를 한 것이었기때문이다.'맘처럼 되지않으니 참 힘들겠네', '고생이야, 힘들겠다'라는 얘기를 듣고싶었다. 그런데 내가 가장 아끼고 가깝다고 생각하는 엄마에게 이해받지못했다는 생각이 드니 더 힘들었다.


엄마가 줄곧이야기 했듯이 누구도 자신을 백퍼센트 이해할 순 없다. 그래도 엄마는 이해를 많이 해주었고 힘들때 전화하면 들어주고 위로를 해주겠다고 했다.


엄마도 직장인의 엄마는 처음이라서

내가 직장에 들어간 것이 처음이듯, 엄마도 직장인의 엄마가  처음이다. 인생은 두번 사는 것이 아니라 리허설도 없이 한번 살지 않는가. 회사에서 겪는 종류의 일은 학생때와는 다르다. 이전 글들에서 말했듯이, 지금까진 '시험'스타일의 것들이 인생의 주된 난관이었다. 내가 잘하기만 하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사실을 기반으로  팩트폭력스타일의 대화방식이 오히려 상쾌했기도 했다.


그러나 회사라는 단체에 소속되고 나서 겪게 되는 일들은 마음을 달리먹어보거나, 특정 행동을 위한 노력을 한다고 공부처럼 바로 해결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세상에서 공부가 제일 쉽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엄마의 오은영 선생님이 되어주자

일본 정신과의사  니시카와 슌지는 그의 책 '예민한 사람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습관' 에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상담의 목적' 명확하게 하자.
1. 들어주기만 해도 좋다.
2. 조언해주었으면 좋겠다.
어느쪽인지 정하고 먼저 밝히면 상대도 마음의 준비를   있어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갈  있다.

인간은 생각보다 누군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기뻐하는 존재다. 이는 자신이 신뢰할  있는 존재라는 표시이며, 기댈  있는 사람이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1인지 2인지 선별해서 상대에게 고민을 털어놓아 보자.

하소연의 유형은 다양하지만 반이상의 하소연은, 화자 스스로가 문제에 대한 답을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말하는  만으로도 마음이 풀리기도 하고, 생각만 했던 잡념을 말로 정리하다 사고과정이 정리가 되면서 스스로 결론에 도달하기도 한다. 수학문제를 물어보려 선생님을 찾아갔다가, 문제를 설명하며 스스로 답을 찾던 때처럼.


위의 일기의 상황에서 나는 위로해달라는 말을 하는 것이 왠지모르게 부끄럽고 자존심상했다. 그래서 결국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상처주는 대화를 지속할 수 밖에 없었다. 엄마에게 대화하기 전에 분명 불협화음이 날 것이 예상된다면, 미리 우리쪽에서 입장을 정리해서 밝히자.


오랜만에 2년 전 일기 내용에 대해서 엄마와 대화를 나눴다. 2년 사이 우리 모녀는 성장했다. 둘다 공통적으로 배운 것은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것의 힘과 중요성' 이다. 우리는 그렇게 또 배워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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