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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E 포 Feb 06. 2024

만성적 감정 변비

책 명랑한 은둔자에서 아주 적절한 문구를 발견했다. ‘만성적 감정 변비상태’

자신의 과한 자의식에 휘둘리며 그 탓에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고 느끼며 사는것에 대해 저자의 친구가 표현한 문구이다.

이 고질적인 변비를 뚫어버리려면 매일에 가깝게 배설을 해야한다. 신체적 배설을 하기위해선 건강한 식습관과 유산균과 같은 '도구'들이 필요한데 감정적 변비에서 그러한 도구 역할을 하는 것이 '마음 속에서 쌓여가는 외로움, 우울, 불안같은 것들을 무언가의 형태로 아주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기적이진 않지만 꾸준히 글을 써오다 꽤 긴 시간동안 멈춰있었다. 결혼 준비와 신혼집 이사를 핑계로 그 상태에 부유했다.

돌이켜보면 신혼집으로 이사오고 약 두달 간은 이곳에 사는 나 자신에 취해있었다. 일생동안 아파트라는 거주형태에 살아본적이 없었기에 한번쯤은 그렇게나 안락해보이는 고층 아파트에 살아보고 싶었고 그 꿈, 어쩌면 일생일대의 꿈이 이뤄진 그 순간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연말의 어느날 저녁 퇴근 길에는 지금 현재 내가 처한 상태에 대한 벅차오름에 (긍정적인)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무언가를 이룩한 기분. 그 자기도취는 누구에게도 공유하기 어려웠다. 부모님에게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하면 안타깝게도 왠지 모르게 슬퍼하실 것 같았고, 남편에게 이야기하기에는 왠지 모를 내 치부를 드러내는 듯했다. 그리고 글로도 표현하지 못했다. 토해내지 못하는 감정 속에서 내 마음은 정리정돈을 할 타이밍을 놓쳤다.

4개월정도 지나 오랜만에 들린 서재방에서 본능적으로 이끌려 꺼낸 책 '오래 준비해온 대답'에서 만난 아래 구절은 운명같다.

나이 마흔에 나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 되어 있었다. 국립 예술대학의 교수였고, 네권의 장편소설과 세권은 단편소설집을 낸 소설가였고 라디오 문화프로그램의 진행자였고 한 여자의 남편이었다.서울의 내 이름으로 등기된 아파트가 있었고 권위있는 문학상들을 받았고 서점의 좋은 자리엔 내 책들이 어깨에 맞댄채 사이좋게 놓여있었다. (...) 한마디로 부족한게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의 내 삶은 실로 숨막히는 것이었다.(...)어느새 나는 그렇게 돼 있었다. 생각해보면 모든게 '어느새' 그렇게 돼 있었다. 이런 '어느새'에는 어떤 값싼 자기도취가 있고 그 안에 오래 머물고 싶은 달콤한 유혹이 있다./오래 준비해온 대답. 김영하 저

새로운 집에 이사오고부터 내 속은 곪고 있었다. 그리고 김영하 작가의 표현대로 티가 나지 않게 서서히 숨이 막혀왔다. 자유롭고싶은 마음과 달리, 내 행동과 삶의 양식은 스스로를 억압한다. 결혼을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은 그 강박이 내 눈에 펼쳐지듯 적나라하게 보여지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언제쯤이면 결혼을 해야지.

신혼이라면 이정도 집에 살아야지.

결혼식에는 이정도 웨딩홀을 예약해야지.

결단코 진정 원하지 않지만 '기본'은 하기 위해서 해왔던 것들은 진심이 담기지 않은 인생같았지만, 역설적으로 표준적임에서 오는 편안함도 있었다. 그러한 모순적임은 내 삶을 관통하는 특징중에 하나가 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다만, 글에서까지 스스로의 검열의 벽을 넘지 못하고 답답함을 느끼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그리고 아주 솔직한 글을 통해 나 자신이 감정적으로 건강해지길 바라는 마음에 올해는 조금 더 숨김없는 글을 쓰기위해 노력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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