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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ghan KIM Jun 10. 2019

언덕과 평원 3

- 부다페스트 (영웅광장과 세체니 온천)


넷째 날

 

              

영웅 광장과 헝가리 건국 기념상               


영웅광장과 시민공원      


하바스씨의 누나 수잔과 그의 남편 스티븐은 내가 도착하기 두 주 전 이미 부다페스트에 와서

머물고 있었다이제는 미국의 시민권을 가진 미국인이 된 두 사람이지만 은퇴 이후 줄곧 해마다 봄이면 한 두 달 동안 고국 헝가리에 와서 작은 아파트 한 채를 세내어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며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겪는 향수를 달래는 것이 그들의 가장 큰 여생의 즐거움이었다수잔은 전직 교사로서 현재 살고 있는 미국 동부의 소도시에서 어느 정도 명성을 얻은 화가로 여생을 보내고 있었고 스티븐은 대학교 교수로 정년을 한 뒤 건강상 이유로 쉬고 있는 노인이었는데 그들의 평화롭고 인자한 모습은 자식 농사를 끝내고 여생을 즐기는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과 다름없었다이 날 하바스씨는 시내 구경을 하기 전 수잔과 스티븐을 방문하기 위해 나서면서 나를 그들에게 소개시켜 주고 싶다고 하면서 함께 가자고 권하였다     


그들이 머물고 있는 아파트는 페스트 지역에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서민 아파트와 마찬가지로 두 개의 방과 한 쪽이 부엌인 거실이 있는 작은 아파트였지만 아파트 주변이 공원이어서 우선 눈이 시원하고 쾌적한 환경이었다. 사실 우리나라와 달리 이 나라에는 높은 층수를 자랑하는 아파트가 없었다아무리 높아 봐야 층을 넘지 않았으며 아주 드물게 10 층이 넘는 아파트로 보이는 건물이 시내 중심가에 몇 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그만큼 평원 위에 자리한 나라답게 널찍한 공간을 충분히 활용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여유 있게 보였다

     

수잔과 스티븐은 동생을 통해 이미 나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며 나의 방문을 무척 반가워 했다게다가 그들이 살고 있는 미국의 집 이웃에도 한국에서 이민 온 가족이 있어서 그들을 통해 한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며 한국인의 근면하고 검소한 삶의 모습에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며 마치 오랜 친구처럼 다정하게 나를 맞아 주었다     


우리는 안주인(수잔)이 준비한 커피와 헝가리식 과자를 들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는데 스티븐의 주된 관심사는 한국과 북한의 정치와 경제에 대한 것이었다사실 유럽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남북한의 문제점과 정치적 상황에 대한 유럽인들의 관심이 크다조금 아쉬운 것이기도 하지만 한국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북한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상세하게 알고 있는데 그 이유는 방송과 신문에서 북한의 실상을 다루는 보도를 많이 하기 때문이다사실 그들에게도 북한의 이질적인 정치 문화적 행태가 큰 관심거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쨌든 현재 지구상 유일의 분단국인 남북한에 대한 이들의 큰 관심은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의 통일에 관한 질문을 가장 먼저 던지는데서 느낄 수 있었다     


커피와 함께 담소를 마치고 수잔은 우리와 함께 산책을 나섰다안타깝게도 스티븐은 심장병을 앓고 있어서 많이 걷기 힘들어 집에서 TV 를 보면서 쉬기로 하고 하바스씨 남매와 함께 시민공원으로 향했다가는 길에 먼저 들른 곳은 부다페스트의 가장 중심 도로인 안드라시 거리 끝에 자리한 영웅광장이었다천사 가브리엘이 날개를 펼치고 서있는 36미터의 코린트식 기둥 형태인 기념비가 광장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은 활짝 펼쳐진 부채꼴의 드넓은 마당이 인상적이었는데 기념비 아래에는 말을 탄 헝가리의 건국영웅 마쟈르족의 족장 아르파드와 명의 부족장들 동상이 장식되어 있다각 동상마다 다른 모습을 하고 미세한 부분까지도 잘 묘사되어 있어서 이들의 조각술의 뛰어남을 새삼 다시 한 번 느끼게 할 뿐만 아니라 동상들이 가지는 위풍당당한 모습을 잘 감상할 수 있었다기념비 뒤편으로는 이오니아식 기둥들이 반원형의 모습으로 늘어서 있는데 기둥들 사이로 헝가리의 영웅 14 명을 기리는 조각들이 서 있다그리고 이 기둥들이 떠받친 지붕 위로는 개의 동상이 서 있는데 이 나라의 역사와 민중들이 염원하는 것을 상징하는 동상들이었다그 의미는 일과 번영전쟁평화학문과 영광이었다.       


시민공원 입구이자 바이다후냐드 (Vajdahunyad) 성의 정문과 해자    


호수에서 뱃놀이를 즐기며 평온한 시간을 보내는 시민공원 안의 부다페스트 시민들          


영웅광장을 뒤로 하고 바로 들어선 곳은 시민공원이곳은 공원이 많은 이 도시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멋진 공원으로서 비록 작은 건물이지만 카톨릭 교단에서 성인으로 추앙받는 한 여인에게 봉헌된 유서 깊은 예배당도 함께 있다비록 작은 예배당이지만 원하는 소원 한 가지를 꼭 이루어 준다는 명성 때문에 언제나 많은 신자들로 북적거리는 곳이었다그 곳을 나와 공원 안으로 들어가니 좁고 긴 연못이 나타났고 그 위로 다리가 얹혀 있었는데 바이다드 성으로 이어지는 다리였다자세히 보니 이 작고 길게 이어진 연못은 성을 에워싸고 보호하는 해자였다.  그리고 이 해자는 뒤로 이어지는 제법 큰 호수와 연결되는데 일요일이라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소풍을 나와 호수에서 뱃놀이를 하며 즐기고 있었다웃고 즐기는 평화로운 그 모습에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행복할 때의 모습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세체니 온천의 본관 건물과 입구     


우리는 호수를 한 바퀴 돌면서 시민공원의 이모저모를 구경하였는데 그 중 인상 깊은 것은 부다페스트 시민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세체니 온천이었다그 건물이 아주 훌륭하고 멋있어서 처음에는 이 공원의 호수 위에 떠 있는 듯 지어진 바이다후냐드성처럼 어떤 역사적인 기념물로 알았는데 바로 누구나 이용하는 온천장이었다하긴 온천의 역사와 함께 이 건물도 이제는 역사적인 유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르네상스 스타일이면서도 돔 형태의 지붕을 즐겨 쓰는  동구권 특유의 디자인이 가미된 궁궐처럼 멋있는 건물인데 사실 이 나라 모든 사람이 나라의 주인인 만큼 그들을 위한 궁전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지나가면서 본 울타리 너머의 안쪽에는 많은 사람들

이 노천온천과 함께 일광욕을 한가롭게 즐기고 있었다그 여유 있는 모습이 너무도 평화로워 민주화 이후 많은 사람이 이렇게 여유 있게 된 것인가 하고 물어 보니 개방 이전 공산치하에서도 이렇게 살아 왔다고 대답했다우리가 그 동안 익히 들어 온 공산정권의 인민에 대해 억압해 온 것과는 다른 것 같아 선뜻 믿기지 않았다하지만 아무리 엄격한 공산당일지라도 사람들의 기본적인 삶의 즐거움까지 사사건건 개입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체니 온천의 야외 풀장        

     

게르바우드 (Gerbaud) 레스토랑에서 커피 한 잔을 대접하다     


시민공원의 관광을 마친 뒤 나의 관광을 위해 애쓰신 수잔과 하바스씨를 위해 차 한 잔을 대접하겠다고 하니 인근의 중심가에 있는 찻집으로 안내한다.  게르바우드라는 이름의 이곳은 사실 유명한 레스토랑이다하바스종종겨찾는 이 식당의 기원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며 역사가 오래된 만큼 실내 분위기도 무척 고풍스러우면서도 화려한 것이 마치 왕궁의 귀빈용 응접실 같았다아마도 왕족과 귀족이 아니면 누릴 수 없는 멋진 분위기를 일반인들 누구나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만든 곳이 아닌가 한다이 레스토랑과 카페는 공산치하에도 많은 대중들이 애용을 한 것에 대해서 또 한 번 우리가 들어 왔던 공산국가의 이미지와 어긋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물론 인민의 나라라 해도 모든 사람이 이용하기는 쉽지 않았을 테지만 적어도 일반인들도 이용할 수 있었던 곳이라는 점에서는 적어도 공산치하의 특권층만 이용하던 장소는 아니라는 것이 새롭게 들렸다실내의 분위기는 대제국이었던 과거의 화려한 영광에 대한 향한 향수를 더욱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으로 이곳을 찾는 것 자체가 하나의 관광거리가 될 만한 곳이었다실내의 분위기도 좋았지만 하바스씨가 귀띔한 대로 헝가리 제일의 커피숍이어서 그런지 달콤한 케이크와 곁들인 커피 맛이 한층 더 맛있게 느껴졌다.     


  저녁은 한식으로      

하바스씨와 그의 가족 모두는 아직까지 한국에 대해서 잘 몰랐는데 특히 한국 음식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그래서 이 날만은 그들에게 한국 음식을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몇 가지의 재료를 구해서 나름대로 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 대접하기로 했다부다페스트에도 어딘가에 한국음식점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었지만 하바스씨와 가족 모두가 한국 식당을 본적이 없을 뿐 아니라 찾는 것도 쉽지 않고 찾는데 시간을 보내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 비록 솜씨가 없어도 어깨너머로 배운 한식을 만들어 보기로 하였다


하지만 손님에게 식사 준비를 하게 할 수 없다는 하바스씨 부인의 따뜻한 거절을 받았지만 언제 한국을 한 번이라도 방문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사정과 그 동안 대접 받은 것에 대한 나름대로의 보답을 하고 싶은 마음에 한식을 만들고자 한다고 설득을 하니 마지못해 응했다비록 한국 음식점을 찾기가 어려우면 흔한 중국음식점이나 일본음식점을 찾아 갈 수도 있겠지만 다른 나라의 음식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기에 없는 실력이나마 최선을 다해서 한식을 맛보게 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하바스씨와 함께 나선 몇 곳의 식료품 가게에도 우리나라의 가게와 꼭 같지는 않아도 웬만한 한국 음식 재료는 다 구할 수 있었는데 내가 할 줄 아는 불고기 재료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소고기와 상추는 물론이며 이 나라 사람들도 즐겨 먹는 마늘은 기본적으로 팔고 있었고 쌀은 우리 쌀과 꼭 같은 것은 아니지만 이들도 간혹 밥을 즐겨 먹기에 구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더욱이 캐시의 찬장에는 여러 가지 양념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는 꼭 필요한 간장도 있었다비록 우리나라에서 온 것은 아니고 일본산 진간장이었지만 불고기를 만들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처음으로 맛 보는 한국 음식 


비록 불고기와 밥 등 몇 가지 안 되는 음식을 장만하는 것이지만 하바스씨 누이 내외를 포함한 이 집의 모든 식구들의 음식을 낯선 부엌에서 혼자서 만드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을 잘 아는 하바스 부인이 도와 주셨는데 오히려 입장이 바뀌어서 그녀가 거의 다 하다시피 하여서 음식 장만은 아주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드디어 어쭙잖은 솜씨로 만든 계란찜과 상추를 곁들인 흉내만 낸 불고기와 함께 밥상을 차리며 그들의 입맛에 잘 맞지 않을 것을 염려했는데 오히려 그들은 나의 음식에 대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처음에는 예의상 하는 인사말인 줄 알았는데 겉치레의 인사가 아님을 곧 알 수 있었다특히 양념에 절인 소고기가 구워지면서 내는 풍미에 모두들 탄성을 지르는 것이었다결국 하바스씨 부인은 불고기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도 하며 식사 도중에 볼펜과 종이를 가져왔다이 때 난감한 것은 대충 짐작으로 간장과 다진 마늘과 후추를 뿌려서 불고기를 절인 탓에 재료의 정확한 양을 설명하기 어려웠다사실 제대로 된 요리라 하면 계량을 해서 모든 재료의 양을 정하는 것이 맞지만 아쉽게도 그런 지식이 없어서 대충 적당하게 일러 주기만 하였지만 그래도 이다음 그들이 직접 만들어서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상상해 보며 이렇게나마 우리 음식의 맛을 보여 준 것이 하지 않은 것보다 잘 된 일이라는 평을 스스로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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