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다페스트 역사 박물관과 오페라 하우스
다섯째 날
- 근대역사 박물관(전쟁박물관)
근대 역사박물관 앞에서 나치 독일 병정의 모습을 익살스럽게 해 보이는 하바스씨
헝가리의 역사는 꽤 긴 편에 속한다. 헝가리 대평원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이미 로마시대 이전부터지만 나라의 형태를 갖춘 것은 대략 10 세기 쯤 이라 한다. 그 이후 이곳은 지리적으로 유럽의 동과 서를 잇는 요충지이기도 하여 항상 유럽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 이름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는데 대제국이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이후 특히 근, 현세사에 있어서 이곳은 역사의 중심점이 되기도 했었기에 많은 역사적 숨결이 이 도시에 남아 있다. 앞서 이야기한 소련의 헝가리 침공과 공산화 과정에서 일어난 비극의 현장뿐만 아니라 두 번의 세계 대전을 지나는 동안 혼란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던 그 시절의 흔적도 이 도시는 고스란히 안고 지내 왔기에 곳곳에 역사의 현장을 볼 수 있다. 특히 그 것들을 모아 놓은 것이 근대역사 박물관이다. 이 날 하바스씨는 미술관이나 다른 박물관 방문을 다음 기회로 미루고 근대역사 박물관으로 나를 안내 하였다.
1956 소련의 침공에 항쟁하다 희생당한 이들을 위한 기념실 벽에 새겨진 그들의 얼굴들과 소련제 탱크, 근대역사박물관은 사실상 그들을 위한 기념관이라 해도 다를 바 없다.
역사에 대한 나의 관심이 큰 것을 잘 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헝가리에서도 특히 이 곳 부다페스트의 역사에 대한 참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이기에 이곳을 적극 권유하였다. 이 박물관에는 특히 2 차 대전 당시 부다페스트 시민들이 겪었던 참상과 유물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었는데 유대인의 박해에 대한 자료도 많이 전시되어 있었으며 전 유럽을 휩쓸고 간 두 번의 세계 대전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는가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좋은 장소였다. 그리고 20 세기 중반 공산화 과정에서 이 곳 사람들이 겪었던 참상에 대한 유물 중에는 소련군이 시민들에게 무차별 난사하였던 탱크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설명에 의하면 분노에 찬 시민들이 장하게도 결국 그 탱크를 맨손으로 빼앗았다고 하며 그 것을 그대로 전시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하바스씨는 사실 유대인이었으며 무고한 유대인들이 2 차 대전 기간 동안 나치독일군 뿐만이 아니라 마쟈르 헝가리인들로부터 겪은 부당한 처우에 진지하게 설명하였는데 그의 부모와 많은 친척들도 그 기간 중에 독일군에게 붙잡혀 강제수용소에 끌려가서 학살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설명에는 마쟈르 헝가리인들에 대한 원망은 없었다. 그들도 살기 위해 서슬이 퍼런 나치의 총칼 앞에서 마지 못 해 그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수 없다 보니 유대인 학살에 동참한 것으로 되었다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입장이 뒤바뀌었으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유대인들도 그렇게 처신하였을 거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 모든 것이 다 나약한 인간이기에 강력한 힘의 압박에 의해 굴복될 수밖에 없는 광기의 시절 벌어진 비극일 뿐이라고 이야기 하였다. 그러면서 오늘날까지 문학이나 영화 혹은 다양한 매체에서 제 2 차 세계대전 기간 홀로코스트를 당한 유대인들의 이야기는 하나 같이 박해받고 핍박받는 유대민족의 슬픈 역사만을 그리고 있는 것에 대해서 오히려 불만스럽다고 이야기하였다. 즉 다시 말해서 그 당시 많은 유대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치 저항 활동에 가담한 예라든지 전쟁 이후 다시 일어나서 재건하면서 과거청산에 노력하며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삶의 의지와 노력을 보여주는 여러 가지 사례는 덮어둔 채 그저 대전 중에 희생당한 처참한 모습만 그리는 것에 대해서 실망을 넘어서 불쾌하기까지 하다는 말을 하였다.
비록 나치에 의해 많은 유대인들이 학살을 당한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유대인들이 다 그렇게 학살당하고 핍박만 받은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그 지옥 같은 현실을 극복해서 잘 헤쳐 나간 사람도 많았다며 게다가 유대인 대학살은 제 2 차 세계 대전 당시의 여러 나라의 어려운 상황과 유대인들에 대한 인식의 상관관계에서 이해해야지 그들의 희생을 전제 조건으로 무조건 동정과 특별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즉 유대인 대학살은 정말 있어서는 안 되는 인종청소라는 비극이지만 유대인만이 위로와 동정을 받아야 오직 하나의 희생자로서 확대 해석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오히려 유대인보다 훨씬 많은 폴란드인들이나 여타 슬라브인들이 학살당한 것에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도 않고 또 잘 모른다고 하며 유대인만이 보호받아야 하는 선민의식에 사로잡히는 것에는 경계한다고 하였다.
더욱이 신에 선택된 존재로서 뭔가 특별한 인종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과 양차 대전 이후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들, 특히 무력으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강제 점령과 같은 일들은 비록 유대인의 한 사람인 그로서는 결코 동조할 수 없다고 하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서로간의 성의 있는 대화가 필요한데도 오히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더불어 살아야 할 이웃으로 보지 않고 정복하고 지배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보고 압박하며 무력을 일삼는 것에서 매우 화가 난다고 하였다. 그는 2 차 대전 후에 생긴 이스라엘 건국을 위해 팔레스타인으로 무력으로 쳐들어 간 동족 이스라엘인에 대해서도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즉 이스라엘의 재건이 절실하긴 하지만 방법이 틀렸다는 것이었다.
근대역사 박물관으로 가면서 나눈 여러 가지 대화 속에서 하바스씨는 지금까지 보편적으로 각인되어 온 선민사상에 사로잡힌 유대인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사실 많은 유대인들이 하바스씨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즉 어디에서건 또 어느 집단이건 간에 눈에 띄게 행동하는 사람들 때문에 대다수의 선량한 사람들이 곡해를 받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진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즉 신은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오직 한 사람 혹은 집단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오로지 모든 사람이 똑 같기에 함께 서로 이해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았나. 그 점에서 이 유대인과의 대화는 기존에 알고 있었던 오해 즉, 모든 유대인들은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매우 독선적이다 하는 부정적인 인식을 깨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오페라하우스의 외관 - 전면
오페라하우스의 외관 - 후면
- 오페라하우스
하바스씨는 헝가리가 낳은 격조 높은 음악가들의 작품에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프란츠 리스트"는 물론이며 "벨라 바르톡"과 "졸탄 코다이"의 민속음악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장르의 현대 음악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해 주려 애썼다. 특히 헝가리뿐만 아니라 루마니아를 비롯한 동구권 전체의 민속음악에 관심을 가지며 열정적으로 작곡 활동을 한 바르톡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헝가리 출신 작곡가들의 작품만 즐기는 것이 아님은 그가 말하는 많은 음악가들의 음악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알 수 있었고 부다페스트 오페라 하우스 정기회원으로서 언제나 그 곳을 찾아서 다양한 음악 연주와 공연을 즐기는 것을 인생에 있어서 큰 낙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마침 공연 중인 무용극도 놓치지 않았다. 마침 방문했던 기 기간 동안 그 곳에서 요일별로 각기 다른 연주회와 무용극 공연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셰익스피어 원작인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한창 공연 중이었다. 하바스씨는 공연 티켓 2 장을 가지고 있다며 나를 초대하였다. 사실 그 관람권 한 장은 그의 부인 몫이었기에 뜻밖의 공연 초대에 부담스러워 사양했지만 부인은 이미 두어 번 그 공연을 즐겼다며 기꺼이 나더러 구경을 가라며 양보하는 것이었다.
오페라하우스 내부의 발코니석
오페라 하우스는 부다페스트 중심대로인 안드라시 거리에 있으며 고대 그리스부터 근대로 이어지는 모든 시대의 건축 양식을 모두 활용하여 지어진 멋진 건물이었다. 서양의 모든 큰 도시에는 나름대로의 크고 멋진 공공건물들이 있으며 그 곳 사람들의 자부심에 일조하며 랜드마크 혹은 상징물로 자리 잡고 있는데 비록 부다페스트에는 이 오페라 하우스 말고도 많은 훌륭하고 역사적인 이름난 건축물들이 워낙 많아서 도시의 상징물까지는 아니라 할지 몰라도 이 건축물이 지닌 그 자체의 예술적인 아름다움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예술품이었다. 트램을 타고 안드라시 거리 중간쯤에 내려서 그 곳까지 걸어갔는데 이 도시의 중심가답게 거리 양쪽으로 즐비한 많은 아름답고 특색 있는 건물들로 하여서 그 거리 자체가 바로 예술작품이었다.
우리는 공연 시작 30 분 전에 도착하였고 하바스씨는 건물의 이모저모를 구경시켜 주면서 설명을 해 주었다. 입구의 화려한 장식도 멋지지만 계단을 따라 발코니 좌석으로 가면서 보게 되는 여러 음악가들의 흉상을 감상하는 재미도 좋았다. 물론 헝가리가 낳은 음악가들의 조각상만 있는 것은 아니었고 국적을 뛰어 넘어 음악사에 길이 남는 여러 음악가들의 흉상이 있었는데 음악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존경하는 뜻이 담겨 있는 뜻이리라.
오페라하우스 내부 천정의 샹들리에
공연은 경쾌한 음악으로 시작하였는데 그 시작이 이 무용극의 성격이 어떤 것임을 잘 알려 주는 상징적인 음률이었다. 내용은 잘 알려져 있듯 부모는 물론이요 누구도 못 말리는 괄괄한 성격의 말괄량이 카테리나를 우아하고 멋진 여인으로 만드는 그녀의 남편 페트루키아가 엮는 희극이다. 이 내용을 연극이 아닌 무용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것이 대단히 흥미로웠는데 주역을 맡은 주연배우들의 발레 실력뿐만 아니라 모든 출연진들의 춤 실력이 아주 뛰어 나서 시작부터 끝까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그들의 공연을 감상하였는데 모든 관객들의 기립박수가 이어질 때에야 비로소 공연이 끝났음을 알게 될 정도로 아주 행복한 마음으로 공연을 즐겼다. 이런 즐거운 시간을 베풀어 준 하바스씨 부부에게 새삼 큰 고마움을 느끼는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