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은 글이 아니라 문.

글들이 사는 세상

by 김틈

글들을 읽으려고 돈을 지불하는 것이 어색한 시대가 되었다.

글이 돈이 되는 것에는 혈안이 되어있는 시대지만

혈안이 되어 글을 읽으려는 사람들이 돈을 쓰려고는 안 한다.

글은 숨겨진 가시처럼 일상의 살 속에서 날카롭게 혈관을 찌르며 삶의 모양을 잡아가는데

숨겨진 이유로 글은 삼켜지고 제멋대로 읽고 씹어 다른 이름으로 산다.


판사는 글로 된 판결문을 말로 읽는다.

피고인의 눈을 바라보지 않고

흰 종이 위의 검은 활자를 바라본다.

자신이 토해놓은 글의 가시를 보며 재판정 밖의 삶의 살점들을 하나둘 상상한다.


그가 글의 형태로 완성한 판결문은

도무지 이해도, 합의도, 용서도 구할 수 없는 시대의 사람들 사이를 여는 문이 된다.

이제 이런 방식으로 이 문을 나서면 된다.

이 문을 나서서 곰을 만날지 문을 또 만날지는 알 수 없어

판결문을 이리저리 돌리며 애써 눈을 피하는 판사와 피고인과 법정 안의 사람들


저 글이 얼마일까. 저 글이 쓰일 때까지의 시간과 돈은 얼마일까

세속적이고 속물적인 궁금증이 활자마다 저울을 가져간다.


글을 쓰고 글의 소리를 돼 붙일 때마다

새로운 글들에 갇혀서 도무지 십원도 쓰고 싶지 않다가도

가진 것 모두를 쏟아붓고도 두고두고 반복해서 읽고 싶은 고전들 앞에서

그 글의 가시에 말라붙은 위대한 작가들의 질기고 마른 피와 살을 맡아본다.

죽어버린 이미 죽어있는 판결문의 글들과 그 글들과 분리된 살들과

그걸 측은하게 바라보는 문호들의 깡마른 고행의 흰자위와 검은 눈동자를 본다.

그 글이 걸어와 말을 걸어준다.


너의 너저분한 글과 생각들이

거름이라도 되려면

저 판결문을 찢고 그 문을 열고 나가서

싱싱한 살내음을 맡고

비릿한 피내음을 맡으라.


말라버린 수면으로 맞이한 오후에 멈춰버린 손끝이

빈혈에 걸린듯한 창백한 흰 화면 위로

검은 눈동자들을 잘게 썰어 뿌리고 있다.


저 판결문에는 단 돈 일원도 줄 수가 없다.

까뮈의 뫼르소에게 블릭센의 바베트에게 전 재산을 던지더라도

혹은 제 살을 하나씩 잘라 붙여 가시를 품은 생각의 바다를 헤엄치는 선한 물고기와 같은 자들의

손끝에서 나오는 활자들을 제외하고서는

그 어떤 판결문 같은 말과 글들에게는

물 한 방울도 줄 수 없다.


글들이 사는 세상에

죽어버린 좀비 같은 글들은 두 발로 서게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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