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하고 차분한 겁니다
나는 많은 게 느렸다
돌이 지나도록 걷기는 커녕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바닥에 손을 짚어 탁 쓰윽 탁 쓰윽 밀며 다녔단다
엄마는 내가 걱정스러워 어디 몸에 이상이 있는 건가 병원도 데리고 갔지만 의사는 내겐 아무 이상 없다 했다고 한다
국민학교 2학년 때 구구단을 다 못외워 나머지 공부를 했다
나머지 공부에 당첨된 아이들은 길게 한 줄을 서서 지금의 예능 게임처럼
선생님이 8x9는? 7x6은? 하고 물으면 3초 전에 답을 말해야 했다
그걸 해내지 못하면 맨 뒤로 가서 다음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
나는 여러 번 뒤로 가서 줄을 서야 했다 그 순간의 감정은 지금도 남아 있다
부끄럽고 창피하고 속상했다
나는 지금도 연예인들이 구구단 게임을 하면 그리 달갑지 않다 저게 뭐가 재밌다고.
한 번에 해내지 못하면 멍청하다느니 바보라느니 놀려대는게 속상하다 순발력 없음 못할 수도 있지
나는 친구들이 대번에 이해하고 푸는 산수문제도 여러 번 들여다봐도 모르겠어서 대체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답답했다
대학은 어찌어찌 갔으나 대학도 두 번 갔고 (물론 다른 과라서 이건 자발적이지만)
작가교육원 수업도 같은 과정을 여러 번 들었다 (이것도 더 배우고 싶어서 자발적이지만)
느린 아이, 이해력이 떨어지는, 머리 회전이 느린, 잘하는 것 없는 아이
그랬다 위의 조건들은 '순발력 없음' 옵션도 늘 따라다닌다
나는 나를 멍청하고 또 이해력 떨어지는 사람으로 인정하며 소심한 어른이 되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숫자는 영 안친해져서 단순 계산도 곧잘 틀려서 원장님께 혼나기도 하고 하다 못해 저녁을 시킬 때 인원수를 잘못 세기도 했다 (사람들이 자꾸 돌아다녀서 헷갈릴 수 밖에 없었다고 변명하고 싶다 이건 진짜다)
당시 남자친구도 내가 머리 회전이 느리다고 자주 놀리곤 했었다
맞다고 인정하면서도 슬펐다
사람 다 다른 거지 그게 그리 나쁜 건가 혼나거나 놀림 받을 일인가
그 누구도 내게 괜찮다 하는 사람은 없었다
유치원에 근무할 때 국가근로 학생들이 자주 근로를 왔었다
그중 조용하고 성실하지만 손이 느린 학생이 있었는데
나는 왠지 그가 자꾸 신경이 쓰였다
지켜보자니 그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차분하고 진중했다
선생님들은 그 학생에게 일을 시키면 몇 시간이 걸려도 못한다고,
진짜 열심히 하는데 진도가 안나간다고 관리자인 내게 곧잘 투덜거렸다
결국 보다 못해 그 일을 멈추고 다른 일을 주기도 했었는데
사실 그럴 때마다 상처를 받진 않을까 내심 고민했었다
그런데 그 학생이 그만두기 전날 10여명이 넘는 교사에게 손편지를 써온 것이다
그 세심함과 다정함이라니.
내게 쓴 그 편지의 내용은 대략 이랬다.
자신이 이해가 늦고 손이 더여 원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 같다고 죄송하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차분하게 잘 알려주어 고맙다고 감사했다고.
부끄러웠다 미안했다 내가 자라며 느꼈던 그 초라함 무안함 박탈감을 학생도 느꼈으리라
누구보다 그 마음을 잘 아는 내가 또 다른 이에게 그런 상처를 준 거다
누구보다 느리고 더딘 내가 무슨 자격으로...
나는 꽤 많은 고심 끝에 답장을 썼다
선생님의 차분함과 성실함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것이라고
이해가 더디고 손이 느린 게 아니라
진중하고 신중한 거라고
신중함을 가진 선생님의 성품이 빛을 발할 날이 올 거라고
응원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