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곧 일을 시작합니다

by 달콩쌉쌀


그의 생일, 그를 만나고 돌아오던 길에 왔던 면접 전화,

그곳에 취업이 되었습니다

저는 다시 일을 시작합니다

그가 다시는 하지 말라던 일을 다시 시작합니다

조금은 다르네요

그때는 몸과 마음을 다해서 정말 최선을 다했던 중심의 일이었고

이제 하게 될 일은 중심에서 벗어난 일입니다

전처럼 일할 열정도 에너지도 목표도 의미도 없습니다

그가 있었다면

그와 헤어지지 않았다면

어쩌면 지금쯤은 가게를 시작했을까요

열심히 김밥을 말고 있었을까요

이제 어떤 일이든 상관 없습니다

제게 일은 그저 생활의 수단일 뿐입니다

저는 늘 그랬듯 다시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열심히 일하겠지요

그렇게 하루하루 지내다보면 또 살아지겠지요


나쁜 사람입니다

세상을 떠나다니요

살아서 나를 괴롭히고 벌주고 잘못했다고 화를 냈었어야지

반칙입니다

그런 생각으로 울다가

어느 날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그의 마지막을 알았다면 견딜 수 있었을까

장례와 발인, 묘지까지 제가 오롯이 함께 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못했을 거예요

그런 모습 하나도 안보여주고 그가 떠난지 몇 달이 지나서야 그가 세상에 없다는 걸 알게 했어요

어쩌면 그는 마지막까지 저를 살게 하려던 건지도 모른단 생각이 듭니다

그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러니 저도 잘 살아야겠지요

그가 살려놓았으니.

그런데 운동을 하다가 밥을 먹다가 거리를 걷다가 노래를 듣다가

갑작스럽게 들이치는 죄책감과 슬픔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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