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독감
독한 감기를 앓고 난 후에야
언제나 세상이 보인다
며칠 밤을 뜨거운 고열로 지새우며
거친 가래와 함께 쏟아낸 핏덩이는
소중한 시간들을 잔인하게 삼켰고
급기야
한참 오래 전 떠난 어머니를 부르기도 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고통의 시간이
항생제 속에 점점 녹아들어 잠이 들 때면
따뜻한 손으로 아픔을 어루만지며
아프지 마라
울지 마라
무엇이 신의 뜻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토닥토닥 상처를 보듬는 일.
내일이면 검은 유리창엔
찬란한 태양이 뜨고
빨간 장미가 피고
회색빛 낙엽조차 아름다울 것이니
나는 잠시 꿈을 꾸었고
세상도 잠시 꿈을 꾸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