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사랑한 꽃-8화

달을 사랑한 꽃

by 김도화

그러나 기회는 균등하지 않다. 나는 꽃들이, 아름다움에 대한 토론보다는 왜 기회가 균등하게 제공되지 않는지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길 바란다. 그러면 나도 기어이 그 토론에 참여할 의사가 있다.

하지만 내가 아는 대부분의 꽃들은 비닐하우스의 형광등 빛과, 온기와 안전에 만족한다. 때문에 처우개선이나 상황개선에 대해 토론을 하지 않는다. 오로지 아름다움에 대해서만 격렬하게 토론하고 싸울 뿐이다. 물론 꽃들이 무엇을 해야 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온실안의 화초처럼 살아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그들은 나를 비난할지 모르지만 나는 오늘도 비닐하우스에 갇혀 안식하는 수천 포트의 꽃들을 능멸한다. 나는 기어이 태양을 향해 나아가리라고 다짐한다. 또다시 버림받는 일이 있더라도!

그때, 놀라운 일이 생긴다. 주인의 손가락이 드디어 나를 지목한다.

“저 아이 어때요? 가져가실래요? 공짜로 드릴게요.”

헉, 나는 놀라서 기절하는 순간이다. 한 푼어치의 값어치도 없는 생명이 어디 있을까만, 공짜라니! 차라리 나를 버리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건 나의 진실이 아니다.

그때, “저 아이, 이름이 뭐죠?” 남자의 굵고 따뜻한 목소리가 나의 기절을 해제한다. 나도 몰랐던 나의 이름을 그가 묻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전율을 느낀다. 그토록 알고 싶었던 나의 이름을 듣는 순간이라니!


“어디가 예뻐서 미인이란 이름이 붙여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멕시코산 월하미인이라고 합니다. 공작선인장의 일종이라고 보시면 돼요.”

“아, 그렇군요. 그런데 왜…….”

꼴이 엉망이냐고 묻는 것을 나는 알아차린다. 잎에 생기라곤 하나도 없고, 진녹색이어야 할 잎은 거무칙칙한 다시마처럼 늘어져, 천하궁 옥황상제 시녀들이 금방이라도 호명을 할 것 같은 형상이니 거름이나 되어라, 혹은 꽃을 피우기 글렀다는 말이 하고 싶은 것이다.

남자는 나를 외면하고 비화옥 철화와 프리티, 홍옥 그리고 뾰족뾰족하니 매력이 넘치는 비스트와 그린마일 모종을 일흔 포트나 구입하고 가격을 흥정한다.

“안 가져 갈 거예요? 공짜라는데!”

주인의 말에 나는 상기된 얼굴로 남자를 본다. 공짜라도 좋으니 나를 이 비닐하우스 밖으로 꺼내 달라고, 제발!

“아, 엉터리 미인요?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매력이 없는데요.”

자신이 건넨 한 마디가 누군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된다는 것을 읽지 못한 채, 남자는 호탕하게 웃는다.

‘흥, 아무것도 모르면서, 멍청하기는!’

속으로 그를 매도하는 순간, 나는 모든 이들에게 웃음거리가 된다.

“하하, 엉터리 미인이래. 엉터리!”

“꽃의 수치야. 나라면 바닥에 코를 처박고 죽을 텐데. 쟤는 죽을 용기도 없어.”

꽃들은 입이 따갑도록 수군대고, 나는 귀가 따갑도록 시끄러운 소리를 듣는다. 꽃들의 포악질에 나는 눈을 감는다. 그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나는 또다시 생채기를 낸다.

수치를 잊기엔 통증만큼 효과가 좋은 것이 없다. 나는 지진이 일어나 내 뿌리가 갈기갈기 찢어지는 아픔을 느낀다. 그런데 소리가 고통을 집어 삼킨다.

여전히 소리가 문제다!

떠드는 소리, 나불거리는 소리!

나는 분명, 그들의 아주 쉬운 공격 대상 라인이 있고, 비닐하우스 안의 그들의 삶은 단조롭고 권태롭다. 그렇다면 나는 충분히 그들에게 조롱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이 비닐하우스의 구조적 모순이 만들어낸 거대한 산물이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서는 남자의 등을 본다. 내가 따뜻하게 느꼈던 등이 외롭게 보인다. 저 남자는 사랑을 알고 있을까?

‘당신이 외로운 건 내 탓이 아니야!’

나는 슬픈 마음으로 내 고향이 멕시코를 생각한다!

나의 부모 형제들은 안녕한 것일까, 그들도 내가 그립고 보고 싶을까. 버려졌다고 해서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죽음의 순간까지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기억 속에 떠올리는 것은 사는 동안의 숙제다. 그제야 나는 내가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움에 지배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토록 궁금했던 나의 실체에 대해, 몇 개의 궁금증을 해소한 것으로도 하루를 살 가치는 충분하다. 조금만 나에게 관심을 가져 준다면 ‘나의 근원’에 대한 궁금증을 이렇게 해결할 수 있을 텐데, 내 나이가 세 살이나 되는 동안 왜 사람들은 한 번도 나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았는지 그것이 의심스럽다. 그 의심의 마음은 내게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만큼 가슴을 아리게 만든다. 그러나 나는 내 고향이 멕시코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가 얼마나 먼 곳을 여행하여 이곳까지 왔는지 어림짐작해 보는 것으로 위로가 된다. 그리고 태평양을 건넜던 꿈의 꼬리를 기억하려 애쓴다. 그럼에도 내가 어떻게 태평양을 건너, 또 어떻게 아프리카 초원의 바오바브 나뭇가지의 이끼에 안착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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