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사랑한 꽃-7화

달을 사랑한 꽃

by 김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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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내가 선택되어지기를 바라는 단 하나의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세상의 아픔이 아무리 거대하다 할지라도 그건 온전히 내 것이 될 수 없다. 나의 아픔 앞에서 세상의 모든 아픔은 잠시 보류되고, 나는 내가 가진 아픔이나 소망이 세상 어떤 것보다 크고 이기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부각한다. 그것만이 오직 오늘 하루, 꿈이 아닌 현실을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가 될 것이므로!

나는 여전히 진열대 뒷줄의 구석에서 초라한 꼴로 자리를 잡고 있다. 꽃봉오리도 없고 꽃을 피워본 적도 없는 선인장, 기아에 굶주린 사막의 뱀처럼 시커멓게 말라비틀어진 내 꼴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없다. 사람들은 언제나 아름다움만을 추구하고, 아름답지 못한 것들을 경멸한다.

왜 나는 아름답지 못한, 흉한 꼴로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 잠시 원망의 마음이 든다. 하지만 내 원망은 누굴 향하는 게 아니라 세 살이나 된 나에게 하는 말이다. 꽃의 나이 세 살이면 어른이고, 어른은 자신의 삶에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이다.


능력 없는 부모를 만나 출세하지 못한다고 징징대는 오십 먹은 인간을 본 적이 있다. 그 인간은 아마도 좋은 부모를 만났더라도 그렇게 징징댈 것이 뻔하다. 나는 그렇게 삐딱하고 왜곡된 자아가 아니다. 지금은 비록 꼴이 우스운 선인장에 지나지 않지만 난 언젠가 꼭 아름다운 꽃을 피우리라 확신한다. 확신은 나의 운명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각하고, 무언가를 이루어야 하는 강박관념을 내포하는 말이다. 지금 나는 생존과 불안의 위험한 다리 위에서 한없이 흔들리고 있다. 단 1초라도 한눈을 팔아서는 안 된다. 자칫 절벽에서 추락할 위험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나는 선택되어지기 위해 다리의 난간을 붙잡고 흔들리는 위험을 감수한다. 이유는 단 하나, 살기 위해서다!


봄바람이 시원하다. 모처럼 검은 비닐하우스 안으로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온다. 그건 문이 열렸다는 의미이며 선택의 기회를 갖는다는 의미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고개를 쳐든다. 역시 나의 촉은 적중한다. 그때 뚱뚱하고 인심 좋게 생긴 중년의 남자가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온다. 가끔 이곳 도매상을 찾는 지방의 꽃집 주인이다. 오늘은 커다란 밀짚모자를 쓰고 선글라스까지 껴서 한눈에 그를 알아보지 못했으나 뒤뚱거리는 그의 걸음걸이를 보고 나는 금세 그를 알아본다.


자신이 선택되어지길 바라는 모든 꽃들이 일제히 그를 향해 웃는다. 꽃은 늘 누군가에게 웃음을 주는 선물이고, 최선을 다하는 충성심을 보인다. 그래야 주인도, 손님도 기뻐한다는 것을 꽃들은 본능적으로 이해한다.

그는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꽃을 찾느라 여념이 없다. 그런 잠시, 그의 눈과 가슴과 머리가 지목한 아이는 비화옥 철화이다. 탁월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아이는 소리 없이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선인장이다. 진달래보다 짙은 색의 꽃잎을 지닌 비화옥은 태양의 사랑을 독차지하여 자주 비닐하우스 밖에서의 일조를 맞는 기쁨을 누리기도 한다. 가진 것이 많아 평화를 지향하는 아이, 내가 몹시도 부러워하는 아이다.

그 아이는 골치 아픈 토론 따위에 가담하여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이 없다. 내가 그 아이를 부러워하는 이유는 태양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신을 사랑하는 그 아이가 부럽지만 그렇다고 질투를 하거나 미워할 수 없다. 그 아이야 말로 자신의 가시로 스스로 상처를 내며 말없이 견디어 꽃을 피웠기 때문이다. 태양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아이다. 나는 그를 존경하고 동시에 소망한다. 나에게도 태양의 사랑이 가득 하기를…[수요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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