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사랑한 꽃-11화

달을 사랑한 꽃 - 올 가을에 종이책으로 만나요^^

by 김도화
월하미인 표지.jpg

[책의 이미지와는 다릅니다. 현재 그림 작업 진행중이에요~~]



그때 나의 어린 실체는 금발의 머리에,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는 쉰 살쯤 되어 보이는 아름다운 여자의 손에 잡혔다. 시커먼 괴물원숭이의 손이 아니라는 점에서 안도하며 나의 어린 실체는 그녀의 따뜻한 손에서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 녀석을 어떡하면 좋을까요?”

천방지축으로 달아나려는 나의 몸을 구속한 금발의 여인이 한 남자를 향해 웃었다. 이미 답은 나와 있다는 표정이다.

“철부지군! 겁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몰라. 우리처럼.”

대꾸하는 남자는 여자보다 더 나이가 들어 보였고, 이마에 굵은 주름도 패여 있었다. 얼굴은 하얬으며 도수 높은 안경 대신 짙은 청색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그들의 차량엔 정글을 탐사하기 위한 망원경과 카메라 등과 같은 기계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지프를 몰고 있는 젊은 남자도 연신 웃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웃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 같았다. 웃는 것이 마치 삶의 이유인 것처럼.

그때, 젊은 남자가 동료들을 향해 물었다. 아니, 확인하는 투였다.


“지금쯤 어린 푸른발부비새는 고향에 무사히 도착했겠죠?”

“아, 파란 장화를 신은 어린 새 말이죠? 그렇겠죠?”

여자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생명을 위협하는 건 호기심이지만, 호기심이 우릴 성장시키죠.”

젊은 남자가 얼굴 가득 웃음을 띠고 말했다.

“가치 있는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건 행운이야.”

청색 선글라스를 낀 남자의 수염이 입술 모양을 따라 옆으로 활짝 열렸다.

그들의 감정은 웃음으로 장전된 총과 같았다. 세상 모든 두려움을 막아주는 웃음, 그 웃음은 언제나 그들이 나누는 선물인지도 모른다. 아니, 웃음은 완벽한 선물이라고 나는 확신했다.

나는 그 어린 새의 이름이 푸른발부비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순간, 파란 장화를 신은 새를 떠올리자 스르르 미소가 번졌다.

“에콰도르의 쥐똥나무 숲으로 무사히 돌아갔을 거야. 모든 생물들은 자신이 존재해야 할 곳을 본능적으로 찾는 법이니까.”

청색 선글라스 안에서 남자의 눈이 반달을 그리는 것을 보았다. 그 반달은 그의 이마에 놓인 주름과 많이 닮아 있었다. 그들에게 선물이란 아주 헤픈 평화로 느껴졌다.


파란 장화를 신은 그 어린 새의 이름은 푸른발부비새이며, 그 새는 나의 자아가 아닌, 나의 자아를 닮은 새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그에 걸맞은 이름이 있고, 언제나 우리는 이름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파란 장화를 신은 푸른발부비새가 내가 아니라는 사실에 실망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함께 해 준 것에 감사하며 나를 고립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었던 사랑스러운 친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삶은 가끔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모두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한 부분인 것이다.


세상은 위험이 가득한 곳이지만 사랑이 넘치는 곳이기도 하다. 지천이 사랑이다. 온갖 것들이 손을 내밀고, 안아주려 한다. 설령, 그것이 먹잇감을 유혹하는 몸짓일지언정, 자신을 버리지 않고, 치열하게 살아가려는 본능의 움직임이란 것을 알게 된 나는,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삶에 경의를 표한다. 나는 늑대의 무리를, 하이에나 무리를, 그리고 어린 새끼를 삼키는 표범에게도 삶의 찬사를 보낸다.


산다는 것이 때로는 쓰리고 아프지만 사랑스럽다. 그래서 살아야 한다. 죽어서는 안 된다. 어떻게든 살아야 하고, 살아야만 태양의 사랑의 받을 수 있고, 또한 나는 살기 위해 꿈을 꾸어야 한다. 그것이 삶의 정의다.

이 모든 상황에 대한 확신이 섰을 때, 그제야 나는 호기심 많고, 웃음이 헤픈 그들이 괴물원숭이를 연구하는 탐사팀원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되었다는 사실도!


나는 그 탐사팀원들이 괴물원숭이를 발견했는지, 못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나의 어린 실체의 꿈은 그들에 의해 지속되었고, 나는 우연히 그들 중 한 사람의 아프리카 여행을 따라 태평양을 건너게 된 것이었다.


[달을 사랑한 꽃이 가을에 출판됩니다. 그때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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