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대로다. 다시 베를린을 간다면 여행 때문은 아니었으면 했다. 일이나 학업 같이 특별한 이유없이 여행을 간다면 더는 새로운 마음으로 볼 자신이 없었다.
아직 익숙하고 편안한 여행을 하기엔 가보지 못한 나라가 더 많기 때문에 돈을 들여 갔던 곳을 또 간다고? 그것도 세 번에 걸쳐 적어도 3주는 넘게 있었던 베를린에 다시?
“엄마는 총 무서워서 미국은 못 가. 동남아도 싫어.”
“베를린 가서 뭐하려고?”
“벼룩시장 가야지. 그리고 익숙하고 다 아니까 좋지.”
익숙함에 기댄 여행을 하고자 하는 엄마를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늘 좋은 딸과 못된 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난 그러자고 했다.
그래, 가자라고 하고 어렵사리 비행기 티켓과 숙소까지 다 예약을 했지만 여전히 나는 이 여행에서 무엇을 할지 아무 생각이 안 났다. 그냥 따라가서 놀다 와도 문제 될 건 없지만 반복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겐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다.
가서 뭘 해야 하나, 뭘 사야 스스로가 뿌듯해질까 하고 구글링을 시작했다. 클라이밍화라도 사오면 합리적인 여행이 되려나? 죄다 독일어로 된 사이트를 보다 갑자기 생각이 났다. “아!”
그 길로 독일어 학원에 전화를 했다. 독일어가 그렇게 인기 있는 언어도 아니고 사실 베를린 여행을 해봐서 알지만 독일어를 모른다고 손해 볼 일은 전혀 없는 도시다. 그럼에도 독일어를 알면 좀 다를까 싶었다.
가서도 독일어를 쓸 일은 거의 없겠지만 베를린 어딘가에 가만히 앉아있을 때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하나라도 아는 단어를 듣는다면 그 곳이 반가운 도시가 될 것 같았다.
토요일 낮 12시, 독일어 학원에서 ‘회화 첫 걸음’ 수업을 들었다. 출근하는 걸 생각하면 무진장 늦은 시간이건만 몸이 먼저 주말을 눈치챘나보다. 11시가 넘어서야 겨우 눈을 떴다. 부랴부랴 도착한 교실에는 나까지 4명이 앉아있었다.
“독일어를 왜 배우시나요?”
“베를린 여행을 이미 세 번 정도 다녀왔는데… 또 베를린 여행을 가게 됐어요. 다시 베를린을 갈 때는 독일어를 조금이라도 알면 다를까 해서요.”
“그럼요, 정말 다를 거예요. 잘 생각하셨어요.”
선생님의 대답은 힘이 됐다. 150분 동안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독일어 발음은 더 쉽지가 않았다. 프랑스어를 배울 때 가래를 끌어올리듯 “에흐"라고 발음을 하는 것보다 더 머리아픈 발음 투성이였다. 안 쓰던 머리를 어찌 잘 굴려보았다. 첫 날부터 수십 개의 표현과 단어를 머릿속에 욱여넣어야 했는데 다음날인 지금 기억나는 건 딱 한 문장이다. kein Problem! No Problem이라는 뜻이다.
독일어 학원까지 가는 유난을 떨고도 이 여행에 어떤 말도 안되는 변수가 생기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된다. 당장 코로나가 심해져서 못 갈 수도 있는 거니까. 부디 문제가 아닌 것을 문제로 만들지 말고, 문제인 것도 문제가 아닌 것처럼 해결해버릴 수 있기를 바라는 바다.
2022.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