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하면서 멋들어진 계획보다 내 마음에 깊이 품었던 다짐이 있다. 실망해도 좋으니 기대하며 살자. 정말 그렇게 하길 원했다.
지난번 글을 쓴 이후로 그 마음을 다시 꺼내보았다.
필름카메라 필름을 살 만한 곳이 있는지, 내가 맛있게 먹을 아이스크림 집이 있는지, 3 년 전 먹었던 고구마튀김을 팔던 식당이 어디있었는지 찾기 시작했다. 유튜버 오원의 베를린 브이로그를 봤고, 잠이 안 올 때면 구글 맵을 탐색하거나 독일 사이트를 찾아봤다.
점점 이 여행에 아무런 기대가 없다거나 내 의지로 가는 여행이 아니라고 말하는 건 스스로를 비겁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이 여행에 대한 나름의 기대를 채워가고 있던 어느 날, 나는 무한한 슬픔의 늪으로 빠져버렸다.
10 년간 우리 가족이었던 강아지 탱자가 하루아침에 떠났다.
누구나 열렬히 좋아하고 사랑하고 기댈 존재가 있을텐데, 나에겐 탱자가 그런 존재였다.
어떤 사람도, 하물며 어떤 영화나 음악도 질리지 않고 오래 좋아해본 적 없는 내가 유일하게 모든 순간 빠짐없이 좋아했던 존재다.
탱자가 떠난 후, 해야 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전부 잊어버렸다.
한동안 공백이 생겼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대로 날이 좋으면 날이 좋은대로,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여전히 생각이 멈추지 않지만 그럼에도 제자리로 돌아올 책임이 내겐 있다.
여행 준비도 그 중 하나였다.
베를린에서 엄마가 원하는 곳이라면 갔던 곳이라도 함께 해줄 수 있지만 나는 나대로 새로운 곳을 탐색하고 있었다. 베를린에서 춤을 배울 수 있는 곳을 검색하다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Berlin Dance Institute를 찾았다. 현대 무용을 배울 수 있는 Open Class가 있었고, 정식 수업 전에 들어보는 느낌이라 내가 여행자의 자격으로도 수업을 한차례 들을 수 있는지 이메일로 문의했다. 그래도 좋다는 이메일을 받았고, 가서 이거 하나만 해봐도 되게 재밌을 것 같았다.
그 답장을 받은 지 이틀이 지난 후 머리를 감을 때 허리-엉덩이-허벅지쪽이 저린 느낌이 계속되어 병원을 가봤더니 허리 디스크의 영향이라고 했다. 난생 처음 도수 치료를 받고 약도 먹고 있지만 나를 놀리듯 통증은 어깨와 목, 골반을 오가고 있다.
슬픔을 모른척 하지 않고 오만하지 않은 어른으로 크길 바랐는데 노력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고 있는듯 하다.
상위 0.1%의 위력을 가진 태풍도 북상한다고 하니 슬픔, 아픔, 걱정 3종 세트를 떠안고 무사 출국을 바랄 뿐이다.
나는 숙련된 여행자도 여행 매니아도 아니라 또 뜻밖의 일이 나타나면 실망이 가장 먼저 나를 찾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입사원 주제에 10일짜리 여행을 떠나는 것만으로 이건 기대할 일이 아닐까.
그 와중에 독일어 학원 수업 네 번도 빠짐없이 다녀왔다.
그러니까, 다시 베를린으로 가보자고. Los!
2022.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