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직업으로서의 대필작가 저자 이재영
202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한 해 출간된 책은 대략 6만 4천여 종에 달한다. 과연 그 중에서 '저자'가 직접 쓴 경우는 얼마나 될까? 여기까지 읽으면 출판계의 생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좀 의아해 할지도 모르겠다. 저자라고 이름 붙으면 당연히 직접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니까.
흔히 생각하는 '작가'만 책을 출간하는 건 아니다. 성공한 기업인도,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연예인도, 누구나 이름을 알고 있는 인플루언서도, 홍보가 필요한 정치인도 책을 낸다. 그런 유명인들이 직접 원고를 쓰는 경우는 많지 않다. 너무 바쁜 경우도 있고, 자신의 분야에서 대단한 업적을 이뤘다고 해서 글까지 잘 쓰란 법이 없기도 하다.
해서 보통은 대필작가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걸 바탕으로 대필작가가 원고를 쓰는 방식으로 세상에 나온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대필작가의 이름은 드러나지 않는다. 출판계 관례상 작가도 의뢰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당연히 6만 4천여 종의 책 중에서 대필작가의 손이 들어간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도 알 수 없다. 그래서 대필작가는 '유령 작가'고, 존재하는데도 그 실체는 잘 드러난 적이 없다.
경기 가평에서 동네책방 북유럽(book you love)을 운영하는 '책방 언니'이자, 6종의 책을 출간한 이재영은 출판계에선 꽤 유명한 대필작가다(좋은 에세이스트이기도 하다). 이재영은 최근 출간한 <직업으로서의 대필작가>를 통해 과거 대필작가라는 자기 직업을 싫어하고, 미워했지만, 결국엔 사랑하고 끌어안게 된 과정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이어 대필작가가 비교적 안온한 직업이자, 글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말한다.
책 <직업으로서의 대필작가>는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글을 놓지 못하며, 누구는 무모하다 말하는 꿈을 붙잡고 있는 어떤 이들에게 새로운 기회이자 또 다른 '비빌 언덕'이 될지도 모른다. 이재영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지난 3월 13일 책방 북유럽에서 저자 이재영을 만났다. 이재영은 이 책에서 대필작가로서의 자신을 숨 쉬는 유령, 마침내 비밀을 누설한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이재영이 누설한 비밀의 일부를 여기에 털어놓고자 한다.
생각보다 장점이 많은 대필작가
- 그간 '책방 언니'나 '에세이스트'라는 직업과는 달리 대필작가라는 사실은 외부에 드러낸 적이 없었다. 책에서도 '좀 부끄럽게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다'고 고백하기도 했고. 어떻게 대필작가와 관련한 책까지 쓰게 되었나?
"돌아보니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인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지 거의 25년 되어 간다. 그중에는 내 글도 있고, 인터뷰도 있었다. 하지만 생계를 유지하는 데 가장 도움을 준 것은 뭐니뭐니 해도 대필일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제일 돈벌이가 되는 일을 가장 부끄럽게 여긴 셈이다.(웃음) 잠깐 일이 끊긴 적이 있었는데 문득 내 일이라는 것이 누가 나를 선택해주지 않으면 아무리 원해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시에 그 슬럼프가, 남이 규정한 내가 아니라 나 스스로 내 업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나는 꽤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고, 내 일이 대필작가인데 이걸 굳이 숨길 필요가 있나 싶었다. 대필작가는 나쁜 일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나는 그저 내가 가진 재주로 잘 먹고 잘 살았다. 생각을 전환하면서 이 일을 더 잘하고 싶어졌고, 자연스레 대필작가 이야기를 풀어 놓아도 괜찮다는 마음이 들었다."
- 그렇게 나온 책이 <직업으로서의 대필작가>다. 어떤 책인지 직접 소개한다면?
"출판에 관심이 있거나, 글을 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직업은 생각보다 장점이 많다.(웃음) 이번 책을 통해 대필작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루고 싶었다. 제목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따왔는데 하루키가 소설가로 살아가기 위해 어떤 마음을 가지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떻게 작업하는지, 좋은 문장을 위해 어떤 고민을 하는지 이야기하는 책이다.
<직업으로서의 대필작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필작가를 하기 위해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떤 루틴으로, 어떤 자세로 이 일을 하는지 등을 두루 다뤘고, 이 일에 도전해 보고 싶어하는 분들을 위해 관련 정보도 담았다."
쓰는 만큼 돈이 된다
- 대필작가는 뭔가 비밀스러운 이미지가 있는 것 같다.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것인가?
"대필작가는 책을 내고 싶어하는 누군가를 대신해서 텍스트를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세상에는 여러 전문가가 있고, 혹은 전문가가 아니라도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정리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 자기 분야에선 대단한 업적을 이뤘다 하더라도 모두가 글을 쓸 수 있는 재주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대필작가가 존재한다.
또 내 경우는 대필 일만 하는 게 아니라 그걸 발판으로 내 책을 출간하기도 하고, 기업체 블로그나 브런치 스토리에 브랜딩과 관련된 글을 연재하기도 한다. 대필을 통해 다양한 기회를 잡을 수도 있는 셈이다. <직업으로서의 대필작가>에는 그런 과정들도 상세하게 풀어 놓았다."
- 이 직업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가장 큰 장점은 쓰는 만큼 돈이 된다는 것이다.(웃음) 여담인데 남편도 글 쓰는 일을 한다. 기업사를 쓰면서 본인 에세이도 쓰는데, 간혹 이런저런 이유로 누군가가 아이에게 부모님 직업을 물어보면 아이는 '엄마 아빠 모두 작가'라고 대답한다.
그 대답을 듣고 조심스레 가정형편은 괜찮냐고 걱정을 해주는 사람들도 있다.(웃음) 그게 작가라는 직업에 대한 사람들의 이미지다. 글을 쓴다고 하면 경제적으로 힘들거라고 생각하는데, 일정 부분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직업은 글이 돈이 된다.
또 이 일은 자기 글을 쓰는 분들에게 좋은 직업이다. 자기 글을 쓰려고 해도 일단 생활이 되어야 한다. 내가 종종 하는 말인데 일이 많을 때 오히려 내 글도 잘 써진다. 여기엔 분명 경제적인 풍요가 주는 안정감이 있다. 결론적으로 자기 글을 쓰고 싶은 분들이라면 이 직업은 충분히 내 글을 계속해서 쓰게 만들어 줄 수 있다."
- 보통 책 한 권 대필을 완성하면 얼마 정도 받는지, 연 수입은 대략 어느 정도인지 공개해 줄 수 있나?
"사실 책에 대략적인 원고료를 밝히긴 했는데, 여러 경우의 수가 있고, 경력에 따라 달라지는 만큼 짧은 인터뷰에서 거칠게 얼마라고 말하기엔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다.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자면 일 년에 버는 금액은 40대 중후반 내 또래 분들이 기업에 취직해서 벌 수 있는 연봉 정도는 충분히 된다고 말하겠다. 다만 여기서 선택이 좀 작용하는데 일 년 동안 정말 쉬지 않고 열심히 일만 하면 대기업 정도고, 좀 슬렁슬렁하면 중소기업 연봉 정도다.
이것도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어떤 해에 나는 아이랑 같이 하와이나 스페인에서 한 달 살기를 했는데, 대필 일을 한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고 아이와 많은 추억을 나눌 수 있었다. 같은 맥락으로 남자든, 여자든 육아하는 분들에게도 좋은 직업이다. 스스로 시간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주말에도 일할 때가 있고, 밤새 일할 때도 있지만."
- 사실 이 대필작가라는 게, 무슨 학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배울 수 있는 일도 아닌 것 같다. 경력이 전혀 없는데 대필작가를 하고 싶다면?
"우선 책 한 권을 만들어 내는 연습을 해보길 권한다. 어쨌든 대필 일을 하려면 최소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500매의 긴 글을 끌어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자기 이야기도 좋고, 부모님 등 주변에 탐구해보고 싶은 사람, 덕질을 한다면 좋아하는 가수나 배우의 이야기를 써보는 연습도 좋겠다. 그런 내용을 브런치 같은 곳에 연재하거나, 독립출판을 통해 책으로 만들어 보시라. 그게 결국은 자기 포트폴리오가 되는 동시에 출판사에는 책 한 권을 끝내 본 사람이라는 신뢰를 줄 수 있다.
그걸 바탕으로 출판 관련 구직 사이트에 대필작가 관련 글이 올라오면 지원하거나, 출판 커뮤니티에 대필작가 일을 구한다고 올려볼 수도 있다. 출판사 행사 같은 곳에서 관계자들에게 명함과 자신이 만든 책을 주면서 대필 일을 구한다고 어필하는 방법도 있다. 경제 경영서나 정치인 책을 많이 내는 출판사라면 수요는 분명히 있다. 나도 수첩을 가장한 내 글 모음집을 명함처럼 만들어 출판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건네곤 했는데, 그것이 나의 첫 번째 책을 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 자기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내 글과 대필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즉각 돈이 되는 일에 너무 매몰되어서 자기 글을 포기하게 된다거나... 그런 경우는 없었나?
"대필이 누군가의 집을 지어주는 일이라면 내 글을 쓰는 건 내 집을 짓는 일이다. 남의 집을 짓느라 내 집을 짓지 않을 순 없지 않나. 남의 집을 짓느라 내 집을 짓는 일이 더뎌질 순 있지만 결국은 짓는다. 살아야 하니까. 대필 일을 한다고 해서, 또 이게 생각보다 돈이 된다고 해서 자기 글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거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마디 건넨다면.
"나는 이 책을 통해 일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남과 비교해 별로라고 생각하더라도 내 일이 나를 먹여 살리고, 세상에 해를 끼치지 않으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이 책이 누군가에게 자신의 업에 대해 한 번쯤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또 대필작가가 되고 싶은 분께 좀 직접적인 도움이 되고 싶다. 글로 먹고살고 싶지만 어려움이 있는 분이라면, 이 책이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데 어떤 실마리를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