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필작가’라고 하면 어둠 속에서만 활동하는, 결코 정체를 드러내서는 안되는 비밀스러운 존재처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대필작가는 출판계에서 한 축을 담당하는, 그 비중을 무시할 수 없는 직업이다.
『직업으로서의 대필작가』는 대필작가가 직접 밝히는 ‘대필작가’라는 일의 세계에 대한 책이다. 15년차 대필작가이자 자신의 이름으로 6권의 책을 낸 에세이스트이며 서점을 운영하는 책방언니이기도 한 『직업으로서의 대필작가』 이재영 작가와의 서면 인터뷰.
직업으로서의 대필작가
Q. 대필작가의 활동 영역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시겠어요?
요즘 논문 대필에 대한 이슈가 뜨겁지만 그런 것과는 관계가 없고, 제가 하는 작업은 대중서의 원고 작성입니다. 대중서는 기본적으로 원고 분량이 채워져야 하고, 주제에 맞는 구성이 되어야 완성할 수 있습니다. 할 말이 있다, 경험이 많다고 해서 원고가 만들어지는 건 아니거든요. 실제로 모 의대 교수님의 경우 그 동안의 경험을 A4로 매우 두툼하게 정리해서 가지고 있었는데 그걸 바로 책으로 낼 수 없었어요. 평생 일기를 썼다고 해서 그게 책이 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면 됩니다. 독자들에게 전달하려는 주제가 있어야 하고 그 주제에 맞는 구성이 되어야 하고 구성에 맞춰 원고가 잘 정리되어야 하죠.
저는 (자신의 인생이야기를 책으로 내고 싶은 분, 자신의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정리해 책으로 내고 싶은 분 등) 다양한 이유와 주제로 대중서를 내려 하나 글을 쓸 시간이 없거나 글 쓰기에 대한 부담감으로 시작을 못하는 분들을 대신해 원고를 만드는 작업을 합니다.
Q. 대필작가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나 과정이 궁금합니다.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첫 직장이 기아자동차와 삼성전자의 사외보를 만드는 회사였어요. 기업 정기간행물을 만들다가 그만두고 인터뷰 전문 프리랜서로 일했습니다. 그러던 중 제 첫 책 『아이와 함께하는 서울 나들이』를 출간하면서 출판사와 연이 닿았고, 출판사에서 당대 유명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옴니버스 도서를 기획하면서 작가로 합류했습니다. 직접 글을 작성해주는 분들도 계셨지만 바쁘거나 글솜씨가 없는 분들은 제가 인터뷰해서 대신 원고를 썼어요. 그 책을 계기로 다음 대필 의뢰를 받게 됐고,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어요.
Q. 대필작가로 일을 하시면서 '이재영'이라는 이름으로 작가님의 책을 쓰기도 하는데요. 작가 이재영으로서 『직업으로서의 대필작가』라는 책을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직업으로서의 대필작가』가 저의 일곱 번째 책인데요. 지난 6권의 면면을 보면 육아, 여행, 독서, 감상 등 좀 제각각입니다. 모두 저에게서 나왔고 제게 영향을 준 주제지만 깊이 있게 가져가기엔 조금 부족했어요. 왜냐면 저의 업은 대필작가이고 이 한우물을 파는 중이라 다른 주제들은 파편적일 수밖에 없었거든요. 여행을 하지만 여행가는 아니었고, 육아를 했지만 육아전문가도 아니었죠. 독서를 열심히 하고 아이에게 책을 읽히며 키웠지만 독서전문가도 아니었고요. 박물관의 유물을 감상한 글을 썼는데 그 또한 제 전문분야가 아니잖아요. 대필작가라는 업이 드러내놓을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하고 그걸 숨기느라 자꾸 다른 것들을 앞에 내세웠는데 그러다보니 깊이있게 나아갈 수 없더라고요. 이제는 내 전문분야를 전면에 내세우고 그걸 깊이 있게 다룰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해서 쓰게 됐습니다. 이 일을 양지로 끌어 내고 싶었고요. 자신의 기술을 이용하는 정당한 노동인데 왠지 부정적인 이미지의 업이라는 게 늘 안타까웠고, 제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부끄러웠어요. 당당하게, 내 노동을 알려보자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이전까지 출간한 6종의 책들
Q. 보통 대필작가의 이름은 드러나지 않는데요. 예전에는 대필작가를 써서 책을 내는 일을 부정적으로 보기도 했지만 요즘은 독자들도 유명인이 책을 내면 어느 정도는 대필작가를 쓴다는 걸 인지를 하고 계신 것 같고요. 대필작가의 존재를 꼭 숨겨야 할까요? 오랫동안 이 일을 해오신 작가님의 생각도 궁금해요.
대중들이 긍정적으로 인식해주신다니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아직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아요. 대필이라는 게 책에 쓰일 원고를 만드는 전문적인 기술이라고 생각한다면 문제될 게 없는데요. 우리나라는 특히 글쓰기를 어떤 고결한 행위로 보는 경향이 있잖아요. 지식인들의 전유물이라고도 생각하기도 하고. 저는 글은 표현의 도구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기술의 영역이라고도 생각하고요. 강연하시는 분들 보면 말 기가 막히게 하시는데, 그것도 청중 앞에서 말하는 기술이 있어서거든요. 친구들과 수다 잘 떤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사회 분위기가 이렇다보니 저를 고용하는 의뢰인들도 괜한 말을 듣기 싫어서 알려지길 원치 않으시죠. 그는 그의 이야기를 했고, 그 이야기를 글로 푸는 걸 기술자에게 맡긴 건데 거짓말을 했다고 질타를 받을 수도 있으니 조심스러운 거죠.
건축가는 집을 설계하잖아요. 자신의 경험과 고민을 녹여서 아름다운 디자인을 완성합니다. 그리고 그 집을 짓는 건 건설기술자들이 해요. 그것과 같거든요. 간혹 솜씨가 좋아서 자기가 디자인한 집을 스스로 짓는 분들도 계신 거고, 또 누군가는 디자인을 기가 막히게 하고 그 디자인을 잘 살려줄 전문가에게 건축을 맡기는 거고요. 이렇게 좀 분리해서 생각하면 좋겠는데, 글을 기술의 영역으로 보지 않는 사회라 조심스러운 것 같아요. 앞으로 이 업이 업으로서 존중받아서 글을 쓰는 분들에게 새로운 대안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Q. 대필 작업의 일반적인 과정에 대해서 설명해주세요. 대필작가가 쓴 원고를 유명인이 아무 노력 없이 가져가서 자신의 이름으로 출간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 책을 읽어보면 서로 다른 영역에서의 '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의 주인은 저자라고 항상 말합니다. 그의 경험, 그의 생각, 그의 주장이 담겨 있으니까요. 아무 노력이 없다는 건 말이 안되죠. 저자의 경험과 생각과 주장이 재료가 되어 책이 탄생합니다. 제 생각을 그들의 이름으로 내는 게 아니잖아요. 대필은 그들의 생각을 제가 가진 글 기술로 정리해주는 것이에요.
대필작업은 저 혼자 하는 일이 아닙니다. 책을 내고 싶어하는 저자와 만나서 그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제가 그의 말을 글로 옮기는 작업이죠. 제가 생각하기에 그 저자와 어울리는 표현을 추가하고 다듬기는 합니다만 그건 기술자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죠.
Q. '대필은 사람을, 그 사람의 인생을 만나는 일이다'라고 쓰셨는데요. 어떤 의미인가요?
대필은 한사람의 생을 온전히 체화하는 일이거든요. 그 인생이 제 안으로 들어와야 글로 배출할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한 말입니다.
Q. '의뢰인에게서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것'도 대필 작가의 중요한 일인데요. 이 과정에서의 어려움이나 그 어려움을 타개하는 작가님만의 노하우가 있다면요?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는 책을 보면 감추고 가리는 것보다 솔직하게 자기자신을 드러내는 것들이에요. 그런데 그게 정말 어려워요. 솔직하게 나를 드러낸다는 것, 사실 자기자신에게 하기도 힘든 일이잖아요. 저도 책을 쓸 때마다 이 얘기를 쓸까말까 고민하는 지점이 있어요. 멋지고 잘난 이야기만 하고 싶은데 구질구질한 인생사를 다 이야기하는 게 과연 좋은 선택일까 싶지만, 독자들이 그걸 귀신같이 알아차리더라고요. 이 작가가 젠체하고 숨기는지 다 드러내는지.
그런데 내 책이면 나를 설득하면 되는데 대필은 또 다르죠. 그 기로에서 고민하는 의뢰인이 솔직해지도록 설득해야 하는데 쉽지 않아요. 저는 일단 잘 들어드리고요, 어떻게보면 제가 첫 독자잖아요. 솔직한 이야기에 공감을 많이 하면서 마음을 좀 안정시키죠. 그리고 저의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한다든가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해요.
Q. 책을 읽다보니 대필작가는 여러가지 매력이 있는 '일'이더라고요. 직업으로서의 대필작가의 장점이라면 어떤 것일까요?
글 쓰는 기술이 돈이 된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고요.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도 장점이죠. 글쓰는 사람으로 간접경험을 많이 하게 된달까요.
Q. 대필작가에게 필요한 능력이나 적성은 어떤 것인가요?
글 쓰는 기술이 있어야 하고요. 어느 직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책임감과 성실함이 기본이 되어야 하죠. 마감 잘 지켜야 하고, 의뢰인과 약속한 시간도 잘 지켜야 하고요. 글 쓰는 일이라고 혼자 내킬 때 쓰고 영감이 떠올라야 쓰고 이럴 수는 없어요.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지 않아야 해요. 사람 만나는 거 재밌고, 호기심 많은 분들에게 잘 맞을 거예요.
Q. 지금까지 대필 작업 중에서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다면요?
전부 기억에 남아요. 그 중 죽산 조봉암 선생님의 따님인 조호정 여사님 회고록 『바위에 새긴 눈물』 작업을 했는데요. 여사님 93세에 작업을 해서 책이 나올 즈음 여사님께서 돌아가셨죠. 조금만 빨리 뵈었어도 좋았겠다 싶지만 그래도 돌아가시기 전에 뵙고 책을 완성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여사님 책을 하면서 한국 현대사를 관통한 한 아프고 슬프고 아름다운 개인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어요. 아버지가 정치적으로 살해되고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 평생을 보냈지만, 그 사이사이 결혼생활을 하며 딸도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도 잘 하셨거든요. 슬픔이 바탕이 된 캔버스에 화사한 꽃이 군데 군데 있는 그림 같은 인생을 사셨어요. 여사님의 회고록을 쓰면서 인간의 삶이라는 게 다 좋을 수 없고 온통 슬플 수만도 없는 거라는 걸 깨달았죠.
책방 북유럽(book you love
Q. 대필작가, 작가 이재영, 책방언니, 또 기획자로 지금 관심을 가지는 일 또는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요?
이제 제가 깊이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로 책을 냈으니 앞으로 대필작가라는 전문 분야를 좀 더 소개하고 싶고요. 기획자로 브랜드를 만들었으니 말은 있으나 글은 없는 분들의 이야기도 많이 만들고 싶습니다.
Q. 『직업으로서의 대필작가』를 읽은 독자들에게, 그리고 대필작가에 도전해보고 싶은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려요.
사람을 가장 움츠러들게 하는 게 업을 인정받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어떤 일을 하든 내 업은 내가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평가도 대우도 달라진다고 보거든요. 스스로 부끄러워하면 부끄러운 일이 되고 스스로 당당하면 남들이 보기에도 멋지고요. 어떤 업이든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나를 먹여살리고 있다면 그 자체로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독자분들이 제 책을 읽고 자신의 일을 좀 더 사랑했으면 하고요.
대필작가라는 업이 직업으로서 꽤 괜찮다는 것도 알아주셨으면 좋겠고, 누군가를 속이는 일에 가담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누군가를 돕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대필작가에 도전해보고 싶으신 분들 제 책 많이 읽어주시고, 도전하시게 되면 무엇보다 누군가의 말을 글로 만들기 위해 수고를 다하는 자기자신을 사랑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