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병스런 열병. 8

수면안대를 찬 불면

잠들 때마다 암흑 속에서도 안대로 눈을 가리죠. 가리지 않는다면 귀신처럼 서성이는 영혼을 본다고 믿어요


지난달보다 전기세는 또 줄었군요. 손을 뻗어 불을 켠다는 게 두렵네요. 불을 켜지 않아도 당신의 세계에서 나의 세계로 넘어오는 것들이 선명한 각인을 남기죠.


오래토록 자리 잡은 것들을 치우기가 무서워요. 치울 때마다 이면에 도사린 것들은 불쑥 찾아드는 외판원 같죠. 이것을 치우면 오래묵은 곰팡이가 당신의 형상으로 달려들고, 저것을 치우면 당신 닮은 머리카락이 저 혼자 빗질을 하고


불면의 밤


당신은 잠도 자지도 않고 손가락으로 내 눈두덩이를 만지죠. 나는 신경질적으로 뒤척이며 수면안대를 바짝 조여요. 선잠에 들면 들리는 조용한 노래 소리. 잠을 밀치고 일어나면


다소곳이 앉아있는 당신, 보여도 보여 지지 않는 무명의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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