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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복현 시인 Oct 16. 2024

만화책 만세!

만화책 만세!
 



선생님께서 독서 시간에 읽을 책 한 권씩

가져오라고 하셨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동화책을 가져왔는데

나 혼자 만화책을 가져갔다.
 
선생님께 꾸중을 듣고 손바닥을 맞는

벌을 받았다.
 
조금 창피했지만 나는 동화책보다
만화책이 더 좋은 걸 어떡해!
 

다음부터는 동화책도 같이 가져와
벌을 받지 않도록 해야겠다.     


만화책 만세!   






전철역에서
 
 


누나와 함께 지하철역에서 내렸다.
날도 추운데 조그만 바구니 하나 옆에 두고

차가운 계단 한쪽에 엎드려있는 할머니를 보았다.
 
나는 갑자기 집에 계신 할머니가 생각나서
그 할머니가 너무나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앞서 가는 누나 몰래 가만히 지갑을 꺼내어

엊그제 엄마가  아껴 쓰라고 준 용돈 오천 원 중에
삼천 원을 할머니께 성금으로 드렸는데
웬일인지 조금도 아깝지가 않았다.
 
누나가 저만치서 소리친다.
“빨리 와! 거기서 뭐 해?”
 
막 뛰어가면서 생각했다.
나는 이상하게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 왜

마음이 약해질까?
 
엄마에게 또 용돈 달라고 하면 분명히

벌써 다 썼느냐고 혼날 텐데‥
 
하지만 결심했다.

그래도 끝까지 오늘 일은 말하지 말자!               






팽이는 이상해




팽이를 친다.

채찍으로 호되게 내리친다.      


참 이상하다.

치면 칠수록 자꾸만 더 때려 달라니     

때리면 때릴수록 기운이 펄펄 살아나는 팽이

아픔을 견디며 울음을 참으며 가슴 가득히

무지갯빛 꿈을 품고 신나게 뱅뱅 돌아간다.      


결국엔 내가 지쳐 채찍질을 멈추고 나서

팽이도 쓰러진다.     


팽이는 참 이상하다.     

실컷 얻어맞아야 펄펄 살아나고

때리기를 멈추면 오히려 쓰러져 죽어버리니,






화장실 청소
      



오늘은 우리 반 1조가
남자 화장실 청소 당번이었다.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은
가로막 벽 하나 사이로 붙어있는데
점심시간에  갑자기  남자 화장실 바닥 하수구가 막혀
더러운 청소 물이 점점 차오르더니
아래쪽 뚫려있는 가로막 사이로 흘러

여자 화장실로 밀려가자
 

 여자 화장실 여기저기서 끄악!  끄아악
 여학생들의 비명이 들리더니
 여자 애들이 자반 남학생들에게 따지러 몰려왔다
 남자 화장실 하수구가 막힌 것을 여학생들에게
 다 보여 줬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전쟁이 시작되었다.
소리소리 지르고 열나게 싸우면서도
드디어 수업 시간 전에 하수구도 다 뚫고

청소를 말끔히 해치웠다.
 

치열했던 전쟁도 끝났다.
기적이었다.   



    



잠버릇
 



토요일 밤 내 친구 재용이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가

내 방에서 함께 잠을 잤다.
 
재용이가 밤새도록 온 방을 이리저리 구르며
 드르렁드르렁 코를 고는 바람에
 나는 한 잠도 잘 수 없었다.
 
 으아ㅡ 신경질 나,
 저 코를 그냥 휴지로 막아버려!
 
 나는 잠도 못 자고 코 고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있는데
 재용이가 갑자기 코골이를 뚝 멈추더니
 눈을 번쩍 뜨고 벌떡 일어나는 것이었다.
 

방안을 두리번두리번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나더러 여태도 왜 잠을 안 자느냐는 듯이
 빤히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나는 그냥 하도 어이가 없어

빙긋이 웃으며 생각했다.


 그래, 재용아
 비록 네가 잠버릇은 심해도
 너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야!   






눈사람
 



어제는 토요일, 함박눈이 펑펑 와서
형과 함께 어둑어둑 저물도록
눈사람을 만들었다.
 
밤에 피곤하여 늦잠을 자고

일요일 아침 늦게 일어나 보니
햇살이 눈부셨다.
 
눈사람이 생각나서 창문을 열고 보니

눈사람 머리통이 없어진 것이었다.


형한테 눈사람 머리가 왜 없어졌는지 물어봤더니

햇볕에 녹아서 머리통이 사라지고
몸통만 남은 거란다.
 

나는 눈사람이 너무 불쌍해서

몸통만 남은 눈사람 곁에

한참 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현충일
 



오늘은 현충일, 국경일이라서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된다.  

실컷 늦잠을 자고

아홉 시쯤에 아침 식사를 했다
 
반 친구 동혁이를 불러

레고 놀이를 하며 놀고 있는데

열 시쯤 되어 뿡 뿌우우우웅 ㅡ 하고

사이렌이 길게 울었다.
 
 나는 레고 놀이를 멈추고

무릎을 꿇고 묵념을 했다.
 
나라를 지키다 돌아가신 분들이 없었다면

우리 엄마 아빠도 죽었을지 모르고,

그렇다면 나도 지금

이 세상에 없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데

동만이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뭣 하러 묵념은 하니?” 하는 거다.
 
동혁이는 우리나라를 지켜주신 분들이

고맙지도 않나 보다.    






이사 가는 춘식 형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왔더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우리 동네 춘식 형이

오늘 이사를 간단다.
 
나는 거실에 책가방을 그냥 던져놓고
춘식 형이 떠나기 전에 보고 싶어서
헐레벌떡 뛰어갔다.
 
다행히도 춘식 형은 아직 떠나지는 않고

이삿짐을 챙기고 있었다.
 
나는 춘식 형과 헤어지는 것이

너무 섭섭하여 얼싸안았다.
슬퍼서 눈물이 울컥 나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하필이면 춘식 형이 이사 가다니,

오늘은 참 슬픈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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