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넓이만큼 살았기를 나는 바란다

by 이창훈
생이 끝나갈 무렵,
나는 내 삶의 길이만큼만 살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내 삶의 넓이만큼 살았기를 나는 바란다.

- - 다이앤 애커먼 --






삶의 시작은 곧 죽음을 향해 가는 여행의 출발이며,

죽음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나아가는 시간은

결코 우회를 모르는 직선이다.


세상 가장 분명한 진리는

'모든 존재는 죽는다.'


그 모든 존재 중에 오직 사람만이

자신이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삶을 살아가는 동안

자신이 죽는 존재라는 걸 잊어버릴 정도로 바쁘게 산다.


너무도 많이, 너무도 바쁘게 살다 맞이하는

'죽음'이라는 실존은 얼마나 달갑지 않은 존재인가.

그 얼마나 낯설고 무서운가.


그러나 죽음은

부조리한 불청객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자리잡고 있던 삶의 반쪽이다.

그리고 삶이란

제 안에 품고 있던 죽음에게 조금씩 자리를 내어주는 과정일 것이다.


길(그래비티).jpg

-- '내 영혼의 넓이만큼 깊이만큼 살아왔다고 쓰고 싶다', Pixabay 무료이미지 --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자신이 죽을 존재라는 걸 각성하는 일은

결코 자신의 삶을 덧없음, 허무의 영토로 이끌지 않는다.

자신이 죽을 존재라는 걸 성찰하는 일은

오히려 생의 순간 순간들을 더 귀하게 느끼도록 만든다.

과학과 의학의 혁명적인 발전은 분명

우리의 수명을 연장하고 또 연장하도록 만들겠지만

결코 우리를 불멸의 존재로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충만한 삶이란

한없이 늘어나는 육체의 수명이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깊고 넓어지는 영혼의 건강이 좌우하는 법

내 생의 끝페이지에

내 삶의 길이만큼이 아니라

내 영혼의 넓이만큼

내 영혼의 깊이만큼 살아왔다고


나는 마지막 문장을 꾹꾹 눌러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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